경망스런 연기는 주제 해칠 우려

  부조리연극(The theater of Absurd)은 양차대전 이후 상실한 自我(자아)를 되찾고 本來(본래)의 自己(자기)에게로 돌아감으로써 疎外(소외)와 喪失(상실)의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人間回復(인간회복)을 기도하자는 실존주의적 무드에서 파생되어 오늘날 現代劇(현대극)의 근간이 되었다.
  으젠느 이오네스코의 대머리여가수는 이러한 부조리연극의 기초이다. 여기에서 그는 근본적으로 언어가 진실은 물론 의사전달의 수단으로도 부적당하다는 것을 기교적인 횡설수설, 위선적인 말투, 또는 모순적인 언어와 어린애와 같은 말투 등을 통해 표현한다.
  연극이 시작되면 스미드 부부는 일상적인 대화를 시작한다. 그러다가 스미드씨는 ‘왜 신문의 사회면에서는 사망자의 나이는 밝히면서 출생자의 나이는 밝히지 않을까?’하고 부인에게 말한다. 여기에서 현대인의 활자에 대한 저항감의 상실을 교묘한 언어조작으로 날카롭게 지적한다.
  또 이들을 방문한 도널드 부부사이의 대화와 행동(이들은 서로가 절대 마주보고 이야기하지 않는다)에서 심각한 인간의 단절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관객은 묘하게 조작된 언어의 혼란 속에 휩싸이게 되는데 네 명의 배우들은 세련된 연기로써 이것을 리드해 나간다.
  즉, 앙상블을 이루면서 각기 자신의 인물들은 무리하거나 어색함 없이 무난히 연기한다.
  그리고 연극이 끝날 때쯤 네 명의 배우(스미드·도넌드부부)들이 갖가지 선전문구, 포스터, 현수막들에 쓰여져 있는 말들을 외치게 되는데 광고의 무차별 폭격 속에서 표류하고 혼란된 현대인의 참모습을 나타는데 무척 공감이 가고 훌륭하였다.
  그러나 막상 공연이 끝나고 난 뒤 떨떠름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것은 아마도 극에 재미를 두기 위해서랄지, 아니면 관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였는지 모르지만 눈에 거슬리는 의미 없는 대사의 삽입, TV코미디언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의 모방, 그리고 여배우들의 선정스런 옷차림과 경망스러운 연기 등은 작품의 주제를 덮어버리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물론 너무 작품을 무겁게 끌고나가서 관객을 졸게 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꼭 이러한 동작들을 취해야 했을까하는 의문이 극장을 나오면서 줄곧 머릿속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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