分析哲學(분석철학)의 난해성 극복

◆ 崔世和(최세화) <師大(사대)교수·國語文法論(국어문법론)>

  韓龍雲(한용운)의 ‘님의 沈黙(침묵)’은 많은 사람의 연구대상이 되어 왔고, 그 성과도 큰 바 있다. 따라서 이를 대상으로 하여 斬新(참신)한 연구 수확을 얻기도 그만큼 쉽지 않다.
  李慶敎(이경교)의 ‘韓國(한국) 象徵文學(상징문학) 特性考(특성고)’는 萬海詩(만해시)에 나타난 상징을 흔히 하듯이, 西歐(서구) 文藝思潮(문예사조)의 受容(수용)에 의한 것으로 보지 않고, 韓國(한국)의 傳統的(전통적) ‘自然象徵(자연상징)’으로 把握(파악)하고, 그것이 儒(유)·佛(불) 兩敎(양교)의 東洋的(동양적)인 觀念(관념), 나아가 韓國的(한국적) 傳紀意識(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요. 특히 萬海(만해)에 있어서는 佛敎(불교)의 輪廻思想(윤회사상)과 禪(선)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지적함으로써 萬海詩(만해시)에 대한 새로운 照明(조명)을 하였다. 이는 韓國文學(한국문학)의 傳紀(전기)의 脈(맥)을 찾고, 이를 계승한다는 관점에서 意義(의의)있는 일로, 이러한 새로운 視角(시각)을 잡은 데 好感(호감)을 준다. 또한, 論述(논술)도 條理(조리)가 있고, 文章力(문장력)도 살 만하다.
  다만 韓國文學(한국문학)에 있어서 그 象徵(상징)을 ‘自然象徵(자연상징)’으로 규정한 근거 설명과, 전체 서술에 密度(밀도)와 깊이를 좀 더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金鍾益(김종익)의 ‘開化期(개화기) 국어교육 연구’는 우리나라 개화기의 여러 國文敎材(국문교재)를 내용 분석하여, 어느 정도 당시의 국어교육의 경향 내지는 특성을 제시하고는 있으나 主題(주제)를 벗어난 개화기 이전의 국어교육에 대하여 過多(과다)한 紙面(지면)을 할애함으로써 論究(논구)의 초점이 흐려졌으며, 論者(논자)도 부분적으로 지적은 하고 있으나, 資料(자료)로서 다룬 교재들이 거의 국어교육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개화기의 敎育思潮(교육사조)-開化(개화)를 위한 교육내용 다변화의 반영임이 분명한 만큼 그런 점이 더욱 명쾌하게 지적되고 또 강조돼야 했다. 전체적으로 勞多功少(노다공소)에 그쳤다고 하겠다.


◆ 李丙疇(이병주) <문리대교수·국문학>

  學生(학생)의 수준으로는 中上(중상)에 속한다. 그러나 實錄(실록)을 비롯한 文獻(문헌)의 섭렵이 專攻(전공)에 가까울 만큼 깊기는 해도 자기의 주장이 아닌 남의 引說(인설)이라서 아쉽다. 모름지기 論說(논설)이라면 自言(자언)이라야 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타에 의지했음이 큰 탈이다. 다소 모자라도 공부한 흔적이 있었으면 오죽 좋을까 생각할 때 오히려 안타깝기 그지없다.
  李昌植(이창식)(국교·3)의 ‘줄다리기를 통해본 部落慣習(부락관습)과 民衆意識(민중의식)’은 着眼(착안)부터가 공부하는 태도로 일관돼 있어 우선 진실스러워 좋다. 그러나 논문이란 부지런 한다 해도 여물지는 못한다. 더구나 실태조사나 그에 따른 口述(구술)만으로는 辨證(변증)이 부실하다. 道誌(도지)나 邑誌(읍지)를 통한 조사를 토대로 ‘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승람)’을 직접 보고 그 그루턱을 찾고 그 본밑을 캤더라면 좋았다. 특히 圖式(도식)을 통한 설명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그보다는 口話者(구화자)와 實演者(실연자)의 정체를 파악했더라면 더욱 좋았다. 특히 민속의 조사라면 반드시 문헌을 토대로 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현재가 문제가 아니라 源流(원류)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기줄다리기의 원시를 찾아 그 발전이 가져온 오늘을 좀 더 자세히 캤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요는 조사와 踏査(답사)에 앞선 論證(논증)의 자료가 곁따라야 한다는 苦心(고심)을 명심하기 바란다.


◆ 金鎔貞(김용정) <문리대교수·과학철학>

  金碩煥(김석환)의 ‘言語(언어), 世界(세계), 意味(의미)에의 論理的(논리적) 定立(정립)’은 현대 分析哲學(분석철학)의 기초가 되는 Wittgenstein의 思想(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論理實證主義(논리실증주의)에서부터 Carnap, Quine 등 후기 分析哲學者(분석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언어에 대한 철학적 내지 논리적 분석에 의한 변화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Wittgenstein의 초기 論理的(논리적) 原子論(원자론)에서 부정되었던 形而上學的(형이상학적) 命題(명제)가 그의 후기 사상에서 새로운 形而上學(형이상학)의 형태를 띠고 재등장하게 되었고 뒤에 Carnap에 있어서 形而上學(형이상학)의 命題(명제)도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명제라는 주장이 나오게 되기까지 그 分析過程(분석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다.
  오늘의 分析哲學(분석철학)의 난해성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으로 잘 전개하고 있다. Hempel의 인용이 빠져 있는데 Hempel의 言語分析(언어분석)이 뒤따랐으면 더욱 좋은 論文(논문)이 되었을 것이다.
  金永材(김영재)의 ‘海印圖(해인도)’는 주로 義湘(의상)의 華嚴法界圖(화엄법계도)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義湘(의상)의 華嚴法界圖(화엄법계도)는 한마디로 華嚴思想(화엄사상)의 集約圖(집약도)로서 理無礙(이무애) 事無礙(사무애) 理事無礙(이사무애) 事久無礙(사구무애)의 道理(도리)를 밝히는 要石(요석)이다.
  金(김)군은 海印圖(해인도)와 法界圖(법계도)가 이루어지게 된 根據(근거) 내지 사상적 배경을 비교적 조리 있게 典據(전거)를 들어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華嚴法界圖(화엄법계도)의 7言(언)30句(구)210字(자)의 사상내용의 해석과 설명이 충분치 않다. 金(김)군은 海印圖(해인도)가 華嚴經(화엄경)을 所依經典(소의경전)으로 하는 圖印(도인)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밝히고 또한 그것의 이해를 위한 이론적 바탕을 副題(부제)로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法界圖內(법계도내)의 言句(언구)들의 해석과 설명을 구체화시키지 않고 있다. 그것은 물론 華嚴思想(화엄사상)의 난해성에 연유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海印圖(해인도)의 方角(방각)이나 그 구조의 설명을 중심으로 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이론적 설명이 부족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美術科(미술과) 학생으로서 海印圖(해인도)의 圖型(도형)이나 그 目的(목적)에 관한 설명을 이만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퍽 노력한 흔적이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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