演劇學(연극학) 硏究發表會(연구발표회) 논문 요지

◎  韓國演劇學硏究院(한국연극학연구원)(이사장=張漢基(장한기)교수)에서는 지난 13일 본교 소극장에서 제1회 연극학 연구발표회를 가졌다. 한국연극의 근원을 찾아내고 그 실체를 탐구하여 민족연극사관의 새로운 정립을 목적으로 하는 위 연구원은 이번 발표회를 통하여 연극자료를 보관·활용하고 한국연극박물관적 구실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本紙(본지)에서는 이번에 발표된 張漢基(장한기)교수의 ‘연극학연구의 실제와 방법’ 金泰坤(김태곤)교수의 ‘굿과 연극’ 金孝經(김효경)교수의 ‘연극에 있어서의 감정이입’을 전재하여 싣는다. ◎


◆ 演劇學硏究(연극학연구)의 실제와 方法(방법)

-張漢基(장한기)교수 <文理大(문리대)교수‧演劇史(연극사)>

  演劇學(연극학)은 20세기에 들어와 비로소 그 존재의의를 확인하게 된다. 그 이전의 연극은 독자적인 문화체계를 가지고 있지 못했으며, 美學(미학), 藝術學(예술학), 文藝學(문예학)의 일부대상에 지나지 아니했다. 때문에 이 방면의 연구는 대부분 미학·예술학·人類學(인류학)·社會學(사회학)·民俗學(민속학)·國文學者(국문학자)들에 의하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측면과학으로 밖에는 더 이상 발전해 오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연극은 이들 諸學問(제학문)의 보조학으로서의 의미를 떠나 독자적인 문화형태로서의 그 연구가 무엇보다 절실하게 요청된다. 현재 몇 개 대학에는 연극학과가 있고 이들의 커리큐럼은 요란하나 그 실지 무대인과 연기자의 교육으로 오인되어 가고 있다.
  韓國演劇學(한국연극학)은 그 이론과 체계화의 작업이며 주체성 확립에 그 목표를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 연극화의 기초작업이 무엇이며, 그 범위와 대상을 어디에 둘 것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 연극사의 연구-①문헌의 정리와 정돈, 하나의 연극현상이란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망각된다. 우리나라 70여년에 걸친 新劇史(신극사)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 경과와 자료(문헌)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며, 고전적이며 고전극일수록 그 오랜 세월을 두고 발달해온 과정에 대해서는 문헌적 자료에 의하여 再認識(재인식) 될 도리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연극사의 수용방법으로는 그 내용의 인식과 해석, 그 原本形式(원본형식)의 진위·當否(당부)의 가치판단이 중요하다. 가령 ‘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등에 散見(산견)되는 ‘山台(산태)’의 기록은 우리 무대사에 어떤 양식의 어떤 무대에 적용될 수 있는지 우리나라 연극사적 문헌으로는 아직 신극을 제외하고는 외국과 같은 흥행기록·연극대본·대장·극평·배우전·작가전·극장내외의 평판기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외국에서는 연극문헌학이라고 하여 연극사 연구의 대상으로 이를 증명하고 확인하는 과학으로 대두하고 있다.
  거기에는 연출대장·프로그램·팜프렛, 신문광고·공개장·무대스케치(장치도면·의상·가면·소도구)·무대사진·무대조각·소형상·녹음영화·전기·일화·議定書(의정서)·연대기·연감·극평기 등 과거의 書誌(서지) 및 일반적인 문헌적 자료가 이에 속한다.
  ②地誌(지지)의 연구=우리의 경우 사료와 문헌에서 제외된 민간행사와 口碑傳承(구비전승)된 우리나라의 세시오락과 무속·풍류·가요·민속극회 등을 하나하나 탐방·기술·채집하여 비교연구에 공헌하고 사료와 문헌에서 얻지 못한 생동감을 얻고 실증적인 인과관계에서 때와 장소를 통해서 변화되어가는 연극의 본질이 구명될 수 있다.

  둘째, 演劇原論(연극원론)의 연구-연극원론이란 먼저 이론적 인식에 의한 추상적인 연극의 본질과 원리를 구하는데 있다.
  ①무엇이 연극적이며 연극은 또 무엇이냐 하는 문제로서 그 이면에는 당연히 연극발생론 및 연극진화론이 부수된다. ②연극의 구성요소로서 연극구조의 기본인 배우론, 희곡론, 관객론이 제기된다. ③연극의 기능론으로서 그 주체로서의 극장론 ④연극적 표현의 특색인 양식론과 형태론 ⑤가치규범론과 연극정책 및 운영론이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셋째, 實踐的技術論(실천적기술론)의 연구-전술한 연극사연구와 연극원론의 연구에 앞서 취해야할 제1단계적 작업이다. 연극을 형상화하는 제반요소로서의 각본·장치·조명·무대효과·분장 등, 그리고 연출과 연기의 實修(실수)를 거치고 극장 및 무대기구 등속을 익히는 일이다. 연극은 하나의 실천예술이며, 따라서 극장은 하나의 유기적인 조직체이므로 실제 극장체험은 연극문화연구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리라는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다.
  문헌적 자료나 思辯(사변)만으로 연극학 연구는 불가능하며 그 지식을 결여한 작업이 얼마나 空疎(공소)한지는 우리가 이미 많은 경험에서 알고 있다.

 

◆ 굿과 演劇(연극)

-金泰坤(김태곤)교수 <경희대교수‧民俗學硏究(민속학연구)소장>

  巫俗祭儀(무속제의)인 굿과 演劇(연극)이 종교적 神聖(신성)과 世俗(세속)이라는 별개의 차원에 있으면서도 이 양자가 한 자리에서 논의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본다. 연극적 측면에서 보면, 祭儀(제의)인 굿을 무당이 神話(신화)내용을 연기하는 演劇物(연극물)로 보고, 이 연기과정에 내포된 신성모방과 도취를 중심으로 하여 논의하게 된다.
  연극학계에서 굿에 대한 연극성은 개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각도를 달리하여 굿에서 연극적 요소로 지적되어온 모방과 도취에 대한 제의적 원래의 뜻을 밝혀 굿이 무엇에 대한 모방이고 또 무엇에 대한 도취인가 살펴보고자 한다.
  굿은 신성의 상징적 모방과 도취의 연속으로 진행된다. 굿은 신성공간의 祭場(제장)을 설정하여 여기에 각 굿거리마다 해당 神(신)을 초청해서 歌舞(가무)로 즐겁게 놀리고 그 신의 뜻을 듣고 나서 돌려보낸다. 굿은 무당이 신의 옷을 상징하는 巫服(무복)(神服(신복))을 입고 신을 청해 降神(강신)하면 가무를 곁들여 신의 행동을 무당이 연기하는데, 이 과정을 ‘神(신)놀림’이라고 한다. ‘神(신)놀림’은 신복을 모방 상징하는 무복을 입고 신의 행동을 무당이 연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경우 무당의 연기는 신의 모방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무당에게 신이 내려 신의 말인 ‘공수’가 직접 무당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을 보면 무당은 신과 二元的(이원적) 관계의 모방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고 신과 일원화된 신적몰입과 도취로 인한 신격화 현상이기 때문에 이 경우의 모방은 신성으로의 몰입도취에 기반을 두게 된다. 그러면 이와 같은 신성 도취의 忘我境(망아경)(ecstasy)에 이르는 제의적 의미는 무엇인가.
  神聖界(신성계)는 세속의 ‘코스모스’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카오스’의 너머에 있는 세계다. 신성계에 몰입되어 간다는 것은 세속의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야 되기 때문에 죽음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곳이다. 무당은 처음에 神病(신병)을 통해서 신을 체험하게 된다.
  이 신병은 무당이 되기 전까지의 괴롭게 살아온 세속의 삶을 소거해서 죽음으로 돌입되는 ‘카오스’상태로 설명된다. ‘카오스’는 무공간, 무시간이어서 존재의 무한가능성이 있는 영원존재 곧 존재의 근원세계다. 그래서 신병의 망아상태는 세속의 죽음을 통해 ‘카오스’에서의 영원존재의 실재능력을 체득한 후에 다시 세속으로 환원(再生(재생))되어 무당이 된다.
  즉 의미 없는 가변적인 순간 존재의 괴로운 세속에서 의미 있는 지속적 영원존재의 행복한 신성계에 이르는 길은 순간에서 영원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유동에서 정착으로 가는 전혀 상황이 다른 한 차원에서 또 다른 차원으로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세속의 상징적 죽음을 의미하는 신병이 神聖通過祭儀(신성통과제의) 과정으로 있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체험된 ‘엑스타시’는 일상적인 제의에서 그대로 반복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무당의 신성 모방과 도취의 의미는 세속의 죽음을 통해 영원존재의 신성 곧 존재 근원으로 回歸(회귀)하는 原質(원질)(Arche)的(적) 의미로 풀이 된다.
  이상은 주로 중북부지역에 분포된 강신무의 경우를 예로든 것이고 남부지역에 분포된 世襲巫(세습무)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세습무는 사제권이 인위적으로 혈통을 따라 세습되기 때문에 신병 체험이나 영감이 없어 ‘엑스타시’가 거의 없다. 그래서 세습무의 굿은 신성 도취가 없어서 신적 모방이 희박해 사제에 의한 의식위주로 진행된다. 이것은 영감이 도태되면서 상대적으로 그 외적의식이 강화된 결과로 보인다. 이렇게 외적형식에 주력하는 것은 굿을 보는 신도인 관중을 의식하는데서 모든 관중과의 영합과 굿의 세속화 과정으로 풀이된다.
  굿 도중에 才談(재담)을 섞거나 세속적인 노래를 삽입시켜가며 익살을 부려 관중을 웃기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또 영남지역 세습무의 굿인 ‘별상굿’ ‘狂人(광인)굿’ ‘별신굿’ 등에서 수명의 화쟁이 ‘男巫(남무)’가 등장하여 대사위주로 神(신)(또는 神聖(신성)과 관계되는)이 역을 연기하는 것도 관중을 의식하는데서 오는 굿의 외적의식화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경우는 관중을 의식한 2차적 신성모방으로 볼 수 있다.
  降神巫(강신무)의 굿에서 논의된 모방성이라는 것은 신성도취를 기반으로 한 신격화 현상이기 때문에 이 경우는 모방의 개념에 제한적 의미를 부여해서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굿의 진정한 모방성은 신과 무당이 2원적 對坐(대좌)관계에 있는 세습무의 굿에서 볼 수 있는 2차적 신성모방으로 보이고 굿의 연극성은 관중을 의식하는 2차적 신성모방에 보다 더 비중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연극에 있어서의 感情移入(감정이입)

-金孝經(김효경)교수 <서울藝專(예전)교수‧본교동문>

  한국예술이란 작가, 배우, 관객 기타 연극행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의식이나 감정 등을 한결같이 자유스럽고도 자연스럽게 상호교류 교감함으로써 집단적, 물리적, 심리적, 통일체로서 혼연일체화하여 Ecstasy(도취)에 의한 변화를 갖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다시 말해서 보이는 자의 심층 심리와 보는 자의 심층 심리가 상호교류, 교감함으로써 발생하는 도취현상은 연극예술의 주된 목적이며 생명력이라 하겠다.
  원시 야만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갖가지 연극적 행위는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구분 없이 모두가 혼연일체화하여 감정적, 심리적 통일체로서 도취 현상을 용이하게 체험할 수 있었으나, 오늘날의 연극예술은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뚜렷한 분리에 의해 보이는 자의 일방적인 감정이입을 위한 온갖 노력에 의해 보는 자는 간접적으로 도취현상을 체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보이는 자의 감정이입의 수단은 인간의 시각과 청각을 매체로 하여 성취되고 있으며 그것은 감정이나 심리의 변화에 따른 인간의 시각과 청각의 생리적 변화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감정이입을 위한 연극의 시각적 요소로서는 첫째 극장을 들 수 있다. 즉 무대와 관객석의 위치, 막의 사용, 무대면의 변화와 인간의 후천적 눈의 습관에 의한 무대구획에 따른 인간심리의 차이 등을 응용한 감정이입 방법이다.
  둘째로 조명에 의한 감정이입의 수단을 들 수 있다. 즉 빛의 밝기는 인간의 감정심리에 영향을 주며 이것은 동공의 변화에 따른 인간의 심리 감정의 변화와 상호 밀접한 관계를 지님으로써 그 기능을 지니며 빛의 위치에 의한 인간의식의 습관성을 응용한 감정이나 심리의 변화와 빛의 색을 통한 인간감정의 변화가 그것이다.
  셋째로 감정이입을 위한 배우술에서의 무대동작법을 들 수 있다.
  즉, Proscenium Arch식 무대에서의 배우의 무대동작은 일상생활에서의 인간의 동작과는 많은 차이점을 지니는데, 그것은 연극에서의 감정이입을 위해 특별히 연구되어지고 경험되어진 결과라 하겠다.
  감정이입을 위한 연극의 청각적요소는 크게 대별해 배우의 육체에서 생리적으로 발생하는 음성과 물리적, 기계적 요소에 의한 효과음을 들 수 있다.
  배우의 음성은 인간의 호흡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으니, 복식호흡에 의한 음성과 흉식호흡에 의한 음성이 그것이다. 또한 호흡은 인간의 감정이나 심리와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호흡의 변화에 따른 인간의 음성이나 감정의 변화는 일정한 공통점과 일치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원리에 의해 연극배우는 자신의 감정을 관객에게 이입한다.
  과학의 발달에 의한 기계적 요소로서의 효과음은 인간의 청각이 느끼지도 못하고 느낄 수도 없는 미지의 소리까지도 들릴 수 있게끔 변조시킴으로써 인간의 무의식적인 세계를 자극하며 감정이입을 성취한다.
  또한 인간이 습관적으로 익숙한 소리를 확대 변조시킴으로써 그 소리가 지니는 이미지를 보다 강조하거나 변화시켜 관객의 감정이나 심리를 목적하는 상태로 유도한다.
  이와 같은 인간의 시각과 감정을 통한 감정이입의 수단은 결론적으로 인간의 생리학적, 인체해부학적인 측면에서의 고찰과 잠재의식에의 끊임없는 도전으로 가능할 수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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