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恨(한)이 얼룩진 전통정서

천달이야 키다리야 치이나
칭칭나아네
용팔이야 똥팔이야 치이나
칭칭나아네
인제가면 언제올꼬 치이나
칭칭나아네
살아올똥 죽어올둥 치이나
칭칭나아네

  작가연구 자료 수집자 이책 저책 뒤져보다가
  ‘엇따, 이사람 잘생기고 말씨도 무척 좋겠는데…’
  하고 그의 사진 박은 백과사전을 매만지며 속으로 히히거렸다. 막상 그를 光化門(광화문)통의 노인네들만 우글거리는 세진 茶房(다방)에서 보았을 땐 생각보다 큰 키와 주름도 많이 간 얼굴에 내심 놀랐었다. 약속시간보다 20여분 미리 대기하고 있던 나보다 삼분 차이로 그가 왔다. 가벼운 인사 그리고 소개를 한 후,
  ‘우선, 몇 개의 사무적인 질문부터 드리겠습니다.’
  그가 고갯짓으로 응낙의 표시를 함과 동시에 레지가 다가와 차주문을 시키라 했다.
  ‘학생, 시원한 것으로 허지, 음, 사이다루 주시오.’
  선불을 받고 돌아가는 레지의 등배기가 참 시원스레 파였다고 생각하며 질문을 시작했다.
  ‘최초의 희망분야는 어떤 것이었으며 그에 대한 본인과 부모님의 생각은 어떠하셨는지요?’
  ‘첨에 학생시절(필자註(주)-全州師範學校時節(전주사범학교시절))에는 시로써 시작을 했지. 부친께선 시골 소학교의 교장이셨어. 그래 그런지 몰라도 그분은 文學(문학)에 대한 관심이 깊으셨단 말일세, 시니 소설이니 확정된 희망은 내색치 않으시고 그저 내가 어디 白日場(백일장)이나 문학작품모집에서 당선되면 매우 흡족해 하셨지’
  그는 우선 글쟁이가 받는 최초의 반발이 없는 好環景(호환경)을 확보한 셈이었다.
  또한 動亂(동란)당시 같은 학교에서 敎鞭(교편)을 잡고 있다가 그의 婦人(부인)이 된 여선생 李鍾順(이종순)여사도 文人(문인)에 대한 동경을 가졌다고 하니 말이다.
  ‘선생님의 소설이 갖는 최대의 장점과 그 특질을 간추린다면…’
  사실 이런 질문은 간지러운 것이었지만…
  ‘그런 것을 대고 말하자니 쑥스럽구만. 여태껏 내 소설에 가장 주목해준 이의 한 사람이 평론가 柳鍾鎬氏(유종호씨)였을게야. 가장 꼬집어주고 독려해준 편이지.
  당시의 어지러운 문단에서 나와같이 흘러간<한(限)>, 그 전통정서에 골몰하고 비판문학과 소기의 접속을 시도한 작가는 나밖에 없었을게야. (필자註(주)-동란후부터 혁명을 전후한 그 시기까지의 문단의 2대양상은 순수예술을 표방하는 다분히 당디와 데카당적인 부류와 보다 역사성을 갖고 비판의식에 투철한 속칭 창비(創批)계열의 앙기지망적인 부류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柳鍾鎬氏(유종호씨)가 나의 고군분투를 생각해 준 것 같아. 그가 그랬듯이 해학과 한의 누출이 내 몸에 배여있는 목소리로 나와서 글로 써지는 것, 그런 것이랄까? 나의 소설 전부는 한의 묘사였지. 동란전의 소재를 취한 것은- 植民地時代(식민지시대)의 민족적인 정한을 표현한 것이었고 동란을 소재로 한 것은 전쟁의 그 무책임한 人間性(인간성) 파괴에 대한 증오가 바탕이 됐지.’
  그에 있어서 전쟁의 상흔은 최초엔 외곽에서 또다른 외곽으로, 마치 <山(산)울림>처럼 사라진다. 그 외곽에서의 충격파는 차츰 球心(구심), 河氏(하씨) 자신의 가슴으로 파고든다. 이 波紋(파문)의 逆理像(역리상)은 뚜렷이 작가의 記憶(기억)속에 깊숙이 웅크리고 있는 父親(부친)을 앗아간 그 광분에 대한 증오심에 한치의 틈도 없이 附合(부합)하는 셈이었다. 그의 반전 의식은 소정의 이론도 확고한 철학도 있지 아니하다. 그 한 그 기억으로 인해 절대적인 본능적 거부로 表出(표출)되어있기 때문이었다.
  ‘내 부친께선 동란 당시 처형을, 그것도 뭇매질로 처형을 당하셨어. 스무살난 애송이 교사였던 나는 어머님의 손목을 잡고 시체더미를 넘나들며 결국은 형체가 남아나지 않은 아버님을 찾았지. …전쟁은 반드시 없어야할 것이야. 누가 승리하든 간에 그 인간의 절대가치성이 풍지박산되어버리는 그런 광분은 있어선 안돼…’
  그는 인민군에 처형을 당한 부친의 이야길 꼭 소설로 쓰겠노라했다.
  다방의 음악이 약간 시끄러웠으나 그런대로 얘길 할 수 있었다. 한데 방금 다방문을 들어선 어떤 이가 河氏(하씨)를 아는체 했다.
  ‘여어, 오랜만이요.’
  ‘예, 예, 요지음 어떠십니까?’
  ‘덕분에…’
  난 얼른 異邦人(이방인)의 말을 낚았다.
  ‘사숙, 흠모하셨던 작가가 있으셨다면 누구이겠습니까?’
  ‘응? 으응, 특별한 이는 없구, 학생시절에는 이것저것 다 보았는데 지금까지 그렇다할 이가… 음, 김유정씨와 이상씨를 좋아했고 소월의 서정어린 시도 참 좋아했더.’
  그가 말하면서 그 그 異邦人(이방인)에게 목례를 하니 그는 멀찌감치 앉았다. 그리고 그는 안좋은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선생님, 문학도에 대한 한마디 말씀 좀… 헤헷.’
  ‘하하핫… 내가 뭐 아는게 있어야지. 한마디로 미쳐야하네. 미치지 않으면 문학을 할 수가 없어. 나는 중학교때부터 순전히 책만 파고 글을 썼는데도 아직도 요모양이거든…허허헛. 공부는 그리고 정통파로 하는 것이 좋아. 당대의 모든 양상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로부터 가장 골격이 되는 부분만을 추출해서 자기의 냄새-독자성과 결박시키는 거지. 내 소설이 꽉 짜여있다(필자註(주)-이 말은 柳宗鎬(유종호)씨가 즐겨하는 그에의 평이다)는 건 내가 19세기식 창작공부를 했기 때문일거야. 무엇이 옳은가는 자네가 판단허게…하핫.’
  그가 植民地人(식민지인)의 農民(농민)의 小市民(소시민)의 눈을 통해 맺는 이야기는 <情恨(정한)의 核(핵)에서 전개된다>이러한 탁월한 조직력은 긴장된 분위기에서 오히려 詩的(시적) 긴장과 완화를 느끼게 한다. 文頭(문두)에 쓴 그러한 민요(?)의 삽입, 진한 방언으로 조직된 農村(농촌)소설에서는 이러한 팽팽함이 절대적이다.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인 약한 사람들이 비판의 눈을 가지고 사회를 올려다볼 땐 다분히 감정적, 본능적이다.
  이러한 치명적인 그의 제약을 一群(일군)의 평자들은 소재의 한계성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인간들이 갖는 거대한 共感帶(공감대)는 과연 그러한 벽에 갇힐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이런저런 時論(시론)도 곁들인 후 자리를 뜨게 되었다. 같이 나가면서 나는 속으로 혹시 술이라도 얻어마시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는데, 먼저 앞서 나오는 나의 등뒤에서 그가 말했다.
  ‘오늘 고맙네, 정말… 그럼 다음에 또 보세. 친구와 얘기를 할터이니 먼저…’
  ‘예? 예, 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묘한 기대의 무너짐을 느끼며 다방문을 나섰다. 대한교육보험 신축공사장의 까마득한 곳에서 괴물같은 기중기가 웅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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