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노동은 하되 권리는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 체류중인 외국인 노동자는 총 40만 명. 그 중 80%가 불법체류자로, 이들을 둘러싼 각종 인권침해는 이미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각종 비리를 없애기 위해 산업연수생제도를 축소하고 고용허가제 입법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를 둘러싼 찬반논란 또한 팽팽하다. 
이에 노동절을 1주일 앞둔 지난 27일 안산외국인노동자 쉼터를 찾아 외국인노동자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이하 쉼터)가 위치한 원곡동은 이국적인 모습이다. 지하철 역사 앞 광장에는 거무스레한 피부를 가진 이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고 한 쪽에서는 중국어도 간간이 들려온다. 원곡동의 또 다른 이름은 ‘국경 없는 마을’. 주민 4만 명 중 절반 이상이 아시아 각 국의 외국인 노동자이다. 
“여기 오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 집 같잖아요.”
지난 27일 원곡동 쉼터 앞에서 만난 라주 씨(방글라데시·31). 연수업체에서 이탈해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후 일요일마다 이 곳을 찾는 이들 중 하나다. 
오늘은 친구 하산(방글라데시·31)과 함께 쉼터를 찾았다. 서툰 한국말로 “사장에게 돈 받고 싶어요”라고 말하던 그의 거무스레하고 두툼한 손에는 낯선 언어로 빼곡한 종이쪽지가 꼭 쥐어져 있었다. 얇고 꼬깃꼬깃한 종이 한 장은 그가 정당한 노동을 했음을 나타내는 유일한 ‘증거’다. 
하산 씨처럼 회사로부터 밀린 월급이나 보상을 받기 위해서 쉼터를 찾는 이들은 줄잡아 700여명. 요즘은 쉼터를 처음 찾는 사람만 매주 50여 명씩 늘고 있으니 이 숫자도 몇 주 후면 훨씬 불어날 것이다. 그만큼 외국인 노동자들, 특히 불법체류중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셈이다.
사실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애초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가 급속도로 생기기 시작한 때는 이른바 ‘코리안 드림’의 열풍이 불던 1989년 즈음, 즉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격차가 커져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심화되던 시기이다. 이 때 몰려온 중국과 동남아시아 및 남부아시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실 거의 모두가 불법체류자였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외국인노동자를 수용할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외국인산업기술연수제도(이하 연수생제도)는 바로 그 즈음, 1991년에 도입됐다. 중소기업협회를 통해 ‘수입’된 외국인 노동자가 중소기업협회(이하 중기협)가 정한 업체에서 숙식을 제공받은 뒤 1년 연수를 거쳐 2년 동안 노동자로 일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10여 년이 흐른 지금, ‘연수생’으로 입국한 외국인들 대부분은 한국사회에서 불법체류 노동자가 되었다.

불법체류의 유혹
 
“옥아, 사장에게 못 받은 돈이 400만원은 넘으니까 진정서 제출해서 꼭 받아내야 해요.”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다른 아이들은 50만원만 받던데...”
연변에서 입국해 지난 3월까지 의류관련 중견기업체에서 산업연수생으로 일하던 조선족 왕옥아 양(조선족·25). 쉼터의 상담원이 계산한 자신의 체불임금 액수가 믿기 어려운지 자꾸 되묻는다. 6개월 간 받지 못한 월급과 하루 3시간씩의 초과노동 수당은 그녀에겐 꽤 커다란 ‘목돈’이었던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 인권단체들은 연수생이 업체를 이탈하면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게 되는 약점 때문에 연수업체가 이들을 마음대로 ‘요리’하려 한다고 지적한다. 미리 적금을 들어주겠다며 월급이나 숙식비를 가로채는 것이나 사장이 직접 연수생들의 여권을 관리해 발을 묶는 것은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공단에서는 이미 흔한 수법이다.
때문에 연수생들은 이런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불법체류자의 길을 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비록 불안하기는 하지만 최저임금원칙·임금전액지불원칙은 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돼 오히려 연수생들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불법체류자들이 더 많다. 40만 명의 외국인노동자 중 불법체류자가 80%에 육박하는 것도 이러한 ‘불법체류의 유혹’ 때문이다.  
올해 3월 초 정부에서는 10여 년 만에 또 다른 외국인노동자 관리제도를 내놓았다. 연수생과 연수업체를 민간기업이 관리해 각종 비리와 인권침해가 생기기 쉬운 연수생제도 대신 △공공기관 직접 관리 △노동관계법 적용, 근로감독 강화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에게 내국인 노동자와 똑같은 권리를 보장하는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연수생을 주물러온 중기협이 여기에 반발하면서 정부는 “고용허가제 도입과 함께 연수생제도 일부실시”로 돌아선 상태다.

고용허가제의 의미
 
쉼터에서도 정부의 고용허가제 추진이 화제 거리였다. 앞서 왕 씨의 체불임금 요구 진정서를 작성하던 한 상담원의 ‘고용허가제 도입론’은 들어볼 만 하다. 
“‘연수’의 이름으로 사람을 데려와 놓고 상식 이하의 조건에서 ‘노동’하게 하는 건 기만이지요. 그나마 고용허가제는 정직하게 ‘노동자’로 외국인들을 데려오는 것 아닙니까.”
고용허가제 역시 외국인 노동자에게 업체를 옮길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들의 인권향상을 위한 출발점이 되리라는 분석이다.
지난 27일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한 켠. 삼삼오오 모인 외국인 노동자들의 국적은 중국, 러시아, 스리랑카, 태국, 베트남. 이들이 손짓과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한국의 어느 자원봉사자가 말한다.
“지금 여기가 ‘세계’이고, ‘동북아’ 아닐까”
한국인들이 항상 소망해마지 않는 세계화.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국정과제, 동북아 중심국가. 정말 이루고 싶다면 지금 당장 외국인 노동자부터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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