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보 1배가 가르쳐 준 생명·화합의 의미

‘새만금 갯벌과 온 세상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3보1배’가 오늘로 60일째를 맞았다.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를 비롯한 4개 종교지도자들이 종파를 넘어서 ‘생명’이라는 화두 아래 고행하는 모습은 큰 감동이다. 3보1배가 단순히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운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에 지난23일 본교 일안스님(불교대1)과 함께 3보1배단을 찾았다.  
 -편집자-


스님은 아스팔트에 이마를 대어본다. 세 걸음 걷고 엎드리고 다시 걷고 엎드리고…. 바닥에 번져 있는 여러 개의 물방울 자국은 앞서 지나간 스님들의, 신부님의,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이거나 땀방울이겠지, 곧 스님의 이마에서도 툭 하고 땀방울이 떨어진다.
일안스님(불교대1). 본교 신입생 스님 즉 새내기 대학생 스님이다. 스님이 ‘새만금 갯벌과 온 세상의 생명 평화를 염원하는 3보 1배’단에 동참하기로 했던 지난 23일 아침 그를 따라나섰다.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이 전북 부안에서 3보 1배를 시작한 지 57일째. 수경스님이 탈진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후 3보 1배를 재개한 날이었다. 
오전 9시 30분. 3보 1배가 시작되고 주위가 숙연해진 가운데 병원 응급차 한 대가 3보 1배단 앞 켠에 멈추었다. 수경스님이 어느 청년의 팔 안에 안기어 휠체어 에 앉혔다. 그리고 침묵. 문규현 신부님은 수경스님을 말없이 어루만지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환경운동연합의 문영배 씨는 수경스님이 쓰러진 날 문규현 신부님이 ‘수경스님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함께 갈 것이다’라고 전한 것을 기억하며 눈물을 흘렸다.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은 이미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2001년부터 3보 1배를 여러 차례 함께 하셨던 ‘동반자’였던 것이다.
근육세포가 녹아가고, 실명위기까지 닥쳐왔지만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아스팔트 위로 돌아온 수경스님. 그는 이미 갯벌 속 생명 뿐 아니라 함께 했던 다른 사람들의 생명까지 ‘흔들어 깨우고’있었다.

새만금 간척사업의 허구성

“새만금 갯벌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암자에서 살았어요.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내가 그 무언가를 받았으니, 이제는 갯벌에게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3보 1배를 하던 일안스님이 휴식시간에 아스팔트에 앉아 이야기를 꺼낸다. “스님이면 누구나 하는‘절’로 보답할 기회가 있으니 좋다”며 웃는데 자동차 연기와 더위에 스님의 모습이 흐릿하게 느껴진다.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매연과 소음이 더욱 심해져서 머리 아프고 어지러웠다는 사람이 많다던데 이해가 되네”
스님의 목소리가 지나가는 차 경적 소리에 섞였다. 새만금 갯벌도 지금쯤 소음에 흔들릴 터다. 간척사업을 위한 물막이 공사가 한창일 테니 말이다.
새만금 갯벌. 약 4천 핵타르에 이르는 갯벌을 방조제로 막아 1억여 만평의 농지를 조성하는 간척사업을 당시 전북지역주민들이 반긴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식량기지, 원예단지, 수산개발단지 건설 계획 등 눈부신 지역경제발전의 장밋빛 미래가 새만금 간척사업에 그대로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96년 시화호 오염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부터다. 새만금이 제2의 시화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증폭됐던 것이다. 식량안보의 논리도, 새로운 갯벌과 생태계가 생긴다는 논리도 더는 먹히지 않았다.
쌀이 남아도는 상황인 데다가 갯벌의 모든 생명이 죽는 것은 물론, 또 다른 갯벌이 생겨보았자 생명은 없는 ‘죽벌’정도라는 과학적 분석이 명확하게 나온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공사가 2년간 중단됐다가 재개된 2000년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계속 수면 위에서 맴돌았다.
결국 정부는 다음달 초까지 신구상기획단을 구성해 간척사업을 ‘백지상태’에서 구상하기로 했지만 정부의 ‘재고의지’를 높이 평가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간척사업의 일부인 물막이 공사는 여전히 진행 중인 데다가 얼마 전에는 농림부 장관이 새만금 간척사업은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3보 1배 집행팀이 서울 여의도에 가까이 갈수록 고민스러워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새만금 논의에 진전이 없는 경우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는 31일 국회 앞 3보 1배까지 공식일정을 마친 후에는 4개 종교 지도자들이‘단식’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다시 자신을 ‘희생’하는 고행의 길인 셈이다. 
 
생명을 살린다는 것

“3월18일 전북에서 출발해 57일째만에 서울에 입성하였습니다”
길잡이 역할을 하는 이의 서울입성 ‘선언’이 서울의 매캐한 공기를 갈랐다. 가장 먼저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서로 얼싸 안고 눈물을 흘렸고 김경일 대표(새만금 생명 살리는 원불교 사람들 대표)와 이희운 목사(기독생명연대 사무처장)도 얼싸안았다.
3보 1배를 이끄는 종교지도자들은 목사님이든, 신부님이든, 스님이든 인사를 합장으로 하고 거리낌 없이 ‘절’을 더욱 열심히 하려고 했다. 수경스님이 일찍이 말씀한 대로 생명을 죽이는 탐·진·치(욕심, 분노, 어리석음)를 없애기 위해 모인 이들이기에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법’이며 ‘진리’죠. 그리고 ‘생명’보다 자연스러운 것은 없지 않겠어요”
새내기 대학생, 일안스님은 한 마디를 남기고 다시 3보 1배에 정진하기 시작했다. 앞서 지나간 스님들의, 신부님의, 목사님의,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 땀방울이 번진 자국 위에 곧 스님의 땀방울이 다시 포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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