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압사사건이 오는 13일로 1주기를 맞는다. 지난 한 해 동안 이 사건은 ‘반미의식’을 고조시키고, 촛불시위를 탄생케 하는 등 우리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에 여중생 압사사건이 남긴 것을 되돌아보고 오는 13일 진행될 6.13 1주기 추모대회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벌써 1년’
월드컵, 그리고
미선·효순의 죽음.
월드컵은 자신감을 남겼고
죽음은 분노를 남겼다.
그러나 분노의 표현은
자신감과 당당함에서
비롯되었다는데…
수많은 이들의
촛불이 그것이다.

‘벌써 1년’이라는 수식어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건은 무엇인가.
며칠 전 한 검색 포탈사이트에서는 ‘월드컵 1주년’이 인기검색어로 선정된 적이 있다. 4강 신화와 뜨거운 거리응원전은 우리 국민이 일찍이 느껴보지 못했던 승리의 기쁨과 자신감을 선사했고, 언제라도 다시 ‘꺼내보고’ 싶은 특별한 경험으로 간직됐던 것이다.
그러나 16강 진출기대에 한껏 들떠있던 그 때 두 여중생이 주한미군의 훈련차량에 깔려죽었다는 사실을 함께 떠올리는 이는 얼마나 될까.
경기도 파주에 살던 두 여중생, 심미선·신효순 양이 주한미군의 트레일러 차량에 압사당한 사건이 오는 13일로 1주기를 맞는다. 월드컵만큼은 아니지만 여중생 장갑차 압사 사건 또한 우리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피의자 미군이 미국법정에서 무죄평결을 받은 이후 빠르게 퍼져나간 이른바 반미의식과 촛불시위의 열기가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언론인 홍세화 씨는 이러한 변화를 ‘인식의 전환’으로 설명한다. 사건해결에 비협조적인 주한미군의 오만한 태도와 피의자 미군에 대한 무죄평결은 미국이 우방이라는 굳은 인식을 전환시키기에 충분했고, 여기에 월드컵을 통해 배운 자신감이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전 국민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도 욕할 수 있는 대상이 됐다”는 점을 가장 큰 변화로 꼽는 성공회대 한홍구(역사학) 교수의 분석도 같은 맥락이다.
한편 여중생 압사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촛불시위를 두고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의 전환’이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딴지일보의 한 칼럼니스트는 “보통사람들이 평범한 방식으로 미국에게 화내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이 같은 ‘전환’ 또한 미국에 대해 조금 더 ‘자연스러워 졌다’는 분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감정적인 대응이 아닌, 불평등한 관계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여중생사건해결을 위한 범대위 김종일 집행위원장은 대부분의 촛불시위 참가자들이 “한미관계의 구조적 모순을 정확히 인식하고 소파개정을 통해 이를 해결할 것을 차분하게 요구했다”고 말했다. 즉 한가지 사건에 ‘분노’했다기보다는 남북미간의 모순된 구조에 저항했다는 것이다.
여중생 압사사건 해결을 위해 모인 촛불시위에서 이라크 전쟁이나 이라크전 국군 파병문제,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외교 등 북미관계를 둘러싼 다른 사안에 대한 목소리까지 자연스럽게 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오는 13일 여중생 범대위는 여중생 압사사건 1주기 추모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추모대회는 ‘추모’차원을 넘어서 이 사건이 1년 간 우리사회에 가져온 여러 가지 변화를 다시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촛불시위가 가져온 변화들도 다시 한번 ‘꺼내보아야’하지 않겠는가.
 

여중생 압사사건 기록
해결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여중생 압사사건은 지난해 6월 13일 파주에 살던 두 여중생 심미선, 신효순 양이 훈련 중인 미군 트레일러 차량에 깔려 죽은 사건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건의 전모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있다.
당시 미군은 여중생을 보았지만 △장비가 낡아 지휘관이 운전사에게 전하지 못했고 △차량 운전사는 차량의 특수한 구조 때문에 여중생을 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즉 고의성 없는 ‘과실’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중생 범대위와 유가족,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여러 가지 정황증거, 증언을 들어 의혹을 제기하고 이를 명확히 할 것을 요구했지만 결국 수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법무부가 여론에 밀려 미군에게 처음으로 형사재판관할권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사건의 재판은 미국법정에서 이루어졌고 사건 피의자였던 마크워커 병장과 페르난도 지휘관은 무죄평결을 받았다. 사실상 사건은 법적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범대위와 각 시민단체는 이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가 불평등한 한미관계와 한미주둔군지위협정에 있다고 보고, 개정을 요구해왔으나 아직까지 본격적인 협상테이블이 마련된 적은 없었다.
한편 올해 초부터 경찰은 범대위 관계자들을 소환하고 강제연행하는 등 촛불시위에 강력대처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해 말에 진행된 촛불시위에 대해 집시법 위반책임을 4개월이 지난후에야 묻기도 했다. 여중생 범대위의 한 관계자는 “당시 경찰은 추모집회는 특수한 사례이기 때문에 예외로 인정한 바 있다”며 “경찰의 태도가 이렇게 태도가 달라진 것은 정부의 대미관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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