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수련 통해 순수한 ‘나’를 찾아

세상의 평화는 마음의 평화에서 온다. 고요한 숲 속에 앉아 숨을 쉰다. 나는 지금 숨을 쉬고 있다. 하나, 둘, 셋 내쉬는 숨을 열까지 세어보자. 이 자세로 움직이지 말고 열까지 세어보자. 하나, 둘, 셋, 넷 부처님이 경전으로 알려 준 호흡을 통한 수련방법을 틱낫한 스님의 여러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조용한 곳에 바로 앉아 나의 숨을 의식하라. 숨이 나갈 때 마다 세어라. 열까지 세고 다시 하나부터 반복하여 세며 계속하라. 거기에 너의 생명이 있다. 나의 정신과 몸을 지탱해 주는 것은 바로 이 숨이다. 이 단순한 숨이 어느 순간 그친다면 나는 더이상 여기에 없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 이웃, 산, 나무, 물과 이별이고 혹시 미워하는 모든 존재들과의 관계도 끊어진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감정의 이입에 따른 집착에서 벗어나 순수한 나를 찾는 방법을 호흡수련을 통하여 터득하라.’

이 쉬운 사실 그리고 숨만큼 가벼운 나의 존재. 나는 기쁨에 들뜨고 미움에 속상해 한다. 웃음과 짜증이 하루에도 수없이 교차한다. 40년을 살아 온 서울을 빠져나와 수 년째 살고 있는 의정부 민락동 뒤엔 넓은 논을 사이에 두고 광릉수목원을 감싸 안은 소리봉이 있다.
나라의 보호를 받는 이 광활한 숲 속엔 인적이 닿지 않는 개울이 여럿 있고 아름드리나무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다. 틱낫한 스님의 저서를 읽기 시작한 때부터 나는 주말에 시간을 내어 그 곳으로 들어가 숨 세는 일을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눈을 살짝 감고 명상하는 동안 온갖 망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자세가 경직되고 몸에 열이 나는 것 같았고, 망상에 정신을 빼앗겨 숨 횟수를 잊어버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어느새 열이 넘어갔다. 점차 숨에 집중하면서 열까지 반복하여 세는 것이 쉬어졌고 숨과 숨 사이에 떠오르는 감정 섞인 장면들이 나의 조절통제권 안에 들어왔다. 그 장면 속의 주인공들이 나의 상대가 아니고 나와 거리를 둔 제3자로 바뀌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거리만큼 마음속엔 여유가,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주변의 일들은 이 호흡과 호흡 사이에 벌어진다. 나를 존재하게 해주는 호흡을 의식하지 못하고 즐겁거나 화나게 하는 것들만 의식에 들어오고 나의 감정을 지배한다. 이렇게 일상에서 우리는 감정의 노예가 된다.
다시 숨을 센다. 이제는 숲에서만 아니라 이른 아침 방 안에서도 하고 있다. 감정의 질곡에서 벗어나 순수한 나를 찾는 쉬운 방법을 알려 준 틱낫한 스님의 저서는 잊지 못할 것이다.

김 영 수
언어연구교육원 과장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