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불빛이 세차게 시야를 때린다. 전방 400미터에 감시카메라가 있다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계기판을 보니 현재 속도는 시속 80킬로미터이다. 속도계의 오차 범위가 위로 10퍼센트, 아래로 5퍼센트이니까 시속 88킬로미터까지는 단속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속페달을 더욱 세게 밟다가 단속 카메라가 눈앞에 들어온 후에야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인다. 누군가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남편을 생각한다. 그는 단속 카메라가 있다는 경고 표지판만을 보고 미리 속도를 줄였다. 단속 카메라 400여 미터 전방부터 느릿느릿 지나가는 우리 차를 보고 뒤차들은 답답한 듯 경적을 울려대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의 10년 무사고 운전 경험을 무용담이라도 되는 양 내 앞에서 떠들어댔지만 나는 그런 그의 운전 습관을 전혀 자랑거리로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차를 무시하듯 쌩쌩 지나쳐가는 옆 차들을 볼 때면 어깨가 움츠려드는 느낌을 받았다.
남편은 자신의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 생각할만한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고 나온 것이 다시 생각해 보아도 자랑스럽다. 나는 아침까지도 남편을 출근시키기 위해 바쁘게 손을 놀렸고, 양복에 묻은 개털도 청색 테이프로 꼼꼼히 떼어냈다. 직장 동료와 저녁을 먹고 들어온다는 전화도 밝은 목소리로 받았고, 너무 늦지 말라는 당부까지 남겼다. 하지만 나는 지금 도로를 달리고 있다.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외곽순환도로를 타야 한다. 좁은 코너를 돌자 웅장한 톨게이트가 찬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좁은 현관문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감상적인 기분을 지우고, 달그락거리는 요철을 지나 요금소에 진입한다. 통행요금은 팔백 원이다. 고속도로로 나아가기까지 앞으로 요금소를 두 번 더 지나야 하지만 폭넓고 시원한 도로로 나아가는 요금치고는 그리 비싸지 않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맞이하는 요금소 직원에게 천 원을 내고 이백 원을 거슬러 받는다. 요금소 직원은 지루한 목소리로 낯선 곳을 향하는 나의 등을 떠민다.
“안녕히 가십시오.”

“나 왔어.”
오랜만에 이른 퇴근을 한 남편이 등 떠밀 듯 건넨 말이다. 저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샤워를 해야 하니 보일러를 켜고, 저녁을 준비하라는 말이다. 신문을 소파 위에 두고, 재떨이를 소파 앞에 가져다 두라는 말이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식탁에 앉은 그의 맞은편에 앉는다. 그는 밥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으려다가 멈칫하고는 오늘 무슨 일을 하며 보냈는가를 묻는다.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연애할 때 말없이 밥 먹는 게 싫다고 한 나의 말이 결혼한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신경이 쓰이는가보다. 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의 눈은 지쳤는지 다시 숟가락으로 내려앉는다. 사실 오늘 내가 한 일은 문장 하나로 정리되고 만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옷 다리고, 장 봤다. 여름옷을 정리해 넣고 가을, 겨울옷을 꺼낸 것도, 솜이불을 밟아 빤 것도, 긴팔 와이셔츠를 꺼내 다린 것도, 마트에서 2만원 어치의 물건을 사고, 5000원 상당의 샴푸와 린스를 받은 것도 그에게는 아무런 화제 거리가 되지 못한다. 정적이 부담스러웠는지 남편은 발밑에 있는 강아지를 앉아서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우리 집 강아지의 이름은 노을이다. 현관 앞에 앉아 하염없이 현관문을 쳐다보는 모습이 저녁노을과 닮아있는 것을 보고 내가 지은 이름이다. 남편은 처량하고 청승맞은 느낌이 든다며 그 이름에 반대했다. 하지만 다른 적당한 이름을 찾지 못하자 그 또한 그냥 노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노을이는 집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현관 앞에서 보낸다. 모든 신경을 현관문 바깥에 집중하고 있다가 문 밖에서 조그만 소리라도 나면 꼬리가 떨어져 나갈 듯 흔들어대며 현관문을 긁는다. 밥 먹이고, 씻기는 사람은 나이지만 노을이의 마음은 항상 문 밖의 세상에 있다. 아무리 달래고 얼려도 현관 앞에서 떠날 줄 모른다. 그의 원인 모를 굴레를 풀어주는 것은 바로 남편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의 모습과 함께 그는 현관 앞의 족쇄에서 풀려나 남편의 가슴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도약을 한다. 아마도 그 때의 시간을 위해 하루 종일 문 앞에서 체력을 비축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노을이의 노고를 쉽게 치하하지 않는다. 옷을 벗고, 씻는 등의 번거로운 일을 마치기 전까지는 그의 충정을 외면해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식탁에 앉아서야 뜀박질에 지친 노을이에게 동정의 손길을 내민다.
식사를 마친 남편은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본다. 스스로도 지루한 듯 하품을 하며 신문을 보는 남편 곁에서 나는 하루의 긴 족쇄에서 풀려난 노을이와 짧은 신경전을 벌인다. 남편이 신문을 읽는 동안 방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신문을 덮고 담배를 피우던 남편은 텔레비전으로 보내던 시선을 억지로 끌어당겨 달력을 본다. 달력에는 개울을 건너기 위한 돌다리마냥 빨간색 동그라미가 듬성듬성 그려져 있다. 남편이 올해 초에 30대 초반의 부부가 평균적으로 갖는 성관계의 횟수에 맞춰 달력에 표시해둔 것이다. 오늘인 9월 18에도 붉은색 동그라미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둘러쳐있다. 격무에 시달리는 월초와 월말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평균 세 번 정도이다. 생리 주기가 일정하지 않은 나의 패턴까지 철저하게 계산한 결과이기 때문에 남편은 정해진 날짜를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그는 담배를 비벼 끄고 방으로 걸어 들어간다. 노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남편의 걸음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며 따른다. 나는 채 꺼지지 않은 담뱃불을 바라보다가 불이 완전히 사그라짐을 확인하고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방으로 들어가자 남편은 침대에 누워있고, 노을이는 남편의 몸에 자신의 온 몸을 맞닿으려는 듯이 고집스럽게 달라붙어있다. 나는 숨이 넘어갈 듯이 사지를 뒤틀며 반항하는 노을이를 문 밖에 내다놓고 침대에 눕는다. 온 신경을 마비시킬 듯 방문 긁는 소리가 날카롭게 귓가를 파헤쳐 들어온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방문을 긁는 소리도, 남편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머나먼 우주공간으로 비상한다.

톨게이트를 지나 조금 달리자 내 차 이외의 차량이 보이지 않아 꼭 대기권 밖의 우주공간을 달리는 기분이 든다. 평일 저녁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 시간에 영동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일까.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기 위해 엑셀을 맹렬하게 밟는다. 뻗치는 반동으로 몸이 뒤로 젖혀진다. 가로로 늘어지는 창 밖 풍경들 속에서 휴게소 표지판이 들어온다. 용인 휴게소.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첫 번째로 맞는 휴게소이다. 남편은 첫 번째 휴게소에는 절대 들어오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쉬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이다. 내가 아무리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사정해도 첫 번째 휴게소는 기어이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나는 속도를 서서히 줄이며 휴게소로 진입한다. 흐뭇하다.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머리 위에 큰 별 하나가 영롱하게 반짝인다. 누군가 말했다. 별은 반짝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뭉쳐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지만 홀로 떠 있는 저 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별은 뭉쳐있으면 다른 빛과 융화되어 제 고유의 빛을 잃지만, 홀로 있으면 본래의 자기 빛이 되살아난다.
뜨거운 우동 한 그릇을 배에 가득 채우고 담배 한 갑을 산다. 내가 직접 돈을 지불하고 산 담배가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결혼과 함께 담배를 끊었다. 하지만 가끔 담배 생각이 간절할 때면 남편이 잠든 사이에 한 두 개비씩을 꺼내어 피고는 하였다. 도둑고양이 같이 담배를 피우고 나올 때 느껴지는 감정은 스릴과 성취감 보다는 씁쓸함이 더했다. 씁쓸함을 없애기 위해 이까지 닦지만 없어지는 것은 담배냄새 뿐이었다.
차로 돌아가서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기대어 눕는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불을 댕긴다. 불꽃이 요란스럽게 타들어가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단 한 번의 흡입으로 꽁초를 만들려는 듯이 담배 한 모금을 힘차게 빨자 머리가 핑하니 어지럽다. 입안 가득 내뿜는 담배 연기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다.

드라이아이스 연기에 눈앞이 뿌옇다. 그와 나는 환호하는 하객들 사이를 통과하여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뒷덜미를 잡아끄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고 계시다. 빈손과 다름없이 결혼하는 나의 모습에서 당신의 과거를 보았을 것이다. 코허리가 매워오는 것을 느낀다. 아버지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무겁게 다독거린다. 자신의 무능으로 대학교육을 마저 끝내지 못한 채 시집을 가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할까. 이제야 어제까지의 두 분에 대한 실망감이 사라지고, 측은함이 느껴진다. 결국 어머니는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앉고, 곁에 서있던 아버지는 고개를 가슴팍까지 떨군다.
고개를 돌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많지 않은 친구들이 한 쪽에 모여서 연신 박수를 치고 있다. 친구들은 결혼 전날까지도 나의 결혼을 반대했다. 특히 집이 싫어서 일찍 결혼하려는 것을 아는 친구들은 눈물까지 보이며 나의 생각을 변화시키려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매일 술에 취해 신세를 한탄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 곁에서 밤을 지새우는 어머니. 모두 싫었다. 지구를 짊어지고 있는 아틀라스처럼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고 비관하는 그들을 볼 때면 동정심보다는 분노가 앞섰다. 어머니가 술에 취하는 날에는 그 정도가 더했다.
“옷깃을 스쳐가도 인연이라 했는데, 어쩌면 무정하게”
로 시작되는 노래는 CD플레이어에 구간반복 기능을 한 듯이 같은 구간만이 반복되며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나는 라디오를 켜고 베개로 귀를 막아도 보았지만, 방음이 안 되는 허름한 나무 벽을 통해 들려오는 노랫말은 혈관마다 촘촘히 박혀 심장이 뛸 때마다 나의 온 신경을 좀먹어갔다.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심장을 뛰지 않게 하는 것뿐이었다. 가슴팍을 찔러 혈관 속의 모든 피를 짜내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럴만한 용기는 없었다. 그저 가슴을 두드리며 아침까지 뜬눈으로 보내곤 하였다.
더 이상 친구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고개를 숙이자 눈물이 점점이 뿌려진 빛바랜 드레스가 눈에 들어온다. 손을 들어 눈물을 닦는다. 손가락에 끼워진 닿고 닳은 금반지가 하나가 반짝이지 않는 자신의 몸을 빛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예식장과 드레스에 격이 맞는 반지이기 때문에 그다지 빛날 필요는 없건만 결혼식을 의식해서인지 흰 장갑보다 밝게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이 애처롭다. 평생에 한번 뿐인 결혼식을 구민회관이 아닌 일반 예식장에서, 결혼반지를 금반지가 아닌 다이아몬드 반지로 하고 싶은 나의 순수한 바람은 결혼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돈을 예금하여 부족한 생활비로 충당하자는 그의 지극히 도덕적인 발언에 의해 발화되지 못한 채 혀 아래에 쌓이고 말았다.
드레스를 반납하고 식장을 미끄러지듯 빠져나온다. 택시를 잡아타고 눈을 감는다. 이제 남편이 된 그의 목소리가 귀 속에서 맴돈다. 신혼여행은 결혼기념일 때 떠나자. 넉넉한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풍요로운 결혼생활을 하자. 피곤하면 자도 좋다. 곧이어 돈을 세는 소리가 사각사각 귀 속을 갉아먹는다. 규칙적인 그 소리에 맞춰 숨을 고르고 서서히 잠이 든다.

몇 분이나 잤을까. 휴게소 밖의 깔린 어둠의 장막은 잠들기 전과 같지만, 적막함은 한층 더하다. 담배 한대를 더 피우려다가 이내 생각을 접고 차의 시동을 켠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채우고 다시 고속도로로 헤드라이트 불빛을 뿌린다. 계기판의 눈금이 “Fuel”에 닿아 있다. 바라만 봐도 흐뭇하다. 남편은 휘발유를 가득 채운 적이 없다. 휘발유의 무게 때문에 연비가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삼분의 이 가량만 채워진 휘발유는 곧 나와 같았다. 밥을 먹을 때에나 대화를 할 때, 잠자리를 가질 때 심지어는 싸움을 할 때까지도 나는 항상 부족함을 느꼈다. 주위 사람들은 수입이 안정적이고 이해심 많은 남편을 가진 나를 매우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나의 결핍을 그들은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배부른 소리로 치부되는 나의 목소리는 공허한 울림으로 내 가슴 속에서만 진동할 뿐이었다.
휴게소를 나서자 장거리 운전에 대한 부담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남편이 피곤해 할 때 잠깐씩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한 적은 있지만 고속도로 전체를 혼자 운전한 적은 없었다. 부담감이 막막함으로, 다시 외로움으로 번진다. 공연한 생각에 홀가분한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음악을 튼다. 음악이 흐르자 기분은 한결 나아졌지만, 주의가 산만해지는 느낌이 든다. 고속도로에서 길을 잘못 들면 쉽사리 돌아올 수도 없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나타나는 표지판마다 성의 있는 시선을 꽂는다. 내가 가야할 길과 관계없는 표지판일지라도 신중하게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정해진 길도 중요하지만 내가 무심코 지나치는 길들도 모두 나름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판교 인터체인지가 눈에 들어온다. 출발하기 전 지도를 찾아봤을 때, 내가 지나가는 길에 판교 인터체인지가 적혀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왠지 모를 이끌림에 그곳을 통과한다. 요금을 내고 나오니 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모양이다. 분명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어야 할 내가 건물 많고, 사람도 많은 시내를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급한 마음에 교통표지판을 계속 올려다보니 ‘광주’라고만 나온다. 전라도 광주는 아닐 터이고, 분명 경기도 광주이다. 판교 인터체인지를 그냥 지나치면 되는 것을 공연히 판교로 나와 버린 것이다. 조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이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가야하는 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손가락 끝이 차가워짐을 느낀다. U턴을 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앞으로 달린다.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분명 길은 어디로든 통할 것이다. 조급할 필요 없다고 스스로를 달랜다. 사실 시간은 많다. 정해진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착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보행신호에 걸려 정지선 앞에 차를 세운다. 옆 차선에 광택을 내서 반짝반짝한, 하지만 그 광택이 차 크기에 비해 부담으로 느껴지는 소형차 한 대가 마주 선다. 경적을 울리고 유리문을 내리자 한 남자가 졸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영동고속도로로 다시 나가는 길을 물어보자 남자는 자신 있는 표정을 지으며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거침없는 그의 작은 승용차를 따라 골목골목을 달린다. 미지의 세계로 여행하는 듯한 야릇한 기분과 함께 외로움을 피해 누군가와 동행하고 있다는 기분에 편안함마저 느껴진다. 이 차의 목적지까지 따라가고 싶은 기분도 든다. 하지만 포획된 것 같이 앞 차에 이끌리며 줄타기 하듯 날카로운 외길을 오래 달리자 점점 벗어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좁은 길이 끝나자 앞 차가 갓길에 차를 세운다. 마주 닿을 듯 나란히 차를 세우자 그는 유리문 내리고 말한다.
“이리로 쭉, 직진하다보면 사거리가 나올 거예요. 거기 지나고, 그 다음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세요. 두 번째 사거리에요. 잊어먹지 말아요. 두 번째 사거리에서 우회전.”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자 그는 자신의 반짝이는 차와 함께 다시 길을 떠난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룸미러를 통해 얼굴을 본다. 머리가 약간 헝클어져 있다. 머리핀으로 앞머리를 단단히 고정하고 안전벨트로 상체를 등받이에 엮는다.

“미안해. 이것 밖에 못해줘서. 알잖아, 형편 안 좋은 거…”
성의 표시라며 그가 생일선물로 건넨 것은 작은 머리핀이다. 솔직히 좀 실망스럽지만 이해할 수밖에 없다. 군인인 남자친구를 버리고 그를 선택한 것도 나 자신이고, 그가 돈이 없게 만든 것도 나이기 때문이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세상에 윈윈 전략이란 없다. 모든 것은 제로섬 게임이다. 지금 곁에서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군대에 있는 전 남자친구를 포기하고, 수술 대신 약물로 아이를 지우면서 생일 선물을 포기하는 것이다.
임신한 사실을 안 것은 2주 전이다. 한 달 분량의 피임약 중 마지막 약을 먹고 늦어도 2, 3일이면 생리를 하는데 이번 달에는 이상하게 생리가 시작하지 않았다. 피임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임신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던 나는 피임약에 대한 부작용이겠거니 생각하며 한 주를 더 보냈다. 그 후에도 생리를 하지 않아 임신진단을 해보니 아이가 생겼음을 뜻하는 두 줄이 나의 조심성을 질책하듯 날카롭게 드러났다. 손가락 끝이 차가워짐을 느꼈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임신 사실을 밝히자 그는 나의 의중을 되물었다.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은 없다고 말하자 그는 하루만 더 생각해보라며 전화를 끊었다.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은 여러 날이 지나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술, 담배도 하고 피임약까지 먹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을 수는 없다. 그래도 그의 말이 싫지는 않았다.
나는 친구들에게 물어 수술을 하지 않고 아이를 지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7주가 되지 않은 산모는 약물로도 아이를 지울 수 있다는 것이다. 임신중절 수술이 얼마나 더럽고 여자에게 큰 상처가 되는지는 친구에게 익히 들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자 그는 반색하며 하루라도 빨리 치료받자며 나를 종용했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의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그의 말에 가슴 저리는 감동을 느꼈다. 약물 치료는 질이나 자궁 등에 아무런 해가 없고, 다음에 아이를 가질 때에도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임신중절을 받으러 가는 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걸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그는 30만 원을 구해왔고, 치료가 끝나면 해장국을 먹으러 가자며 나에게 남아있던 미세한 불안감마저 불식시켰다. 하지만 우리는 그날 치료를 받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일반 중절수술의 두 배 가까이 되는 가격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병원을 나오자마자 우리나라의 의료실태에 대해서 피고름을 토해내듯 비난의 소리를 퍼부었다. 눈가를 붉게 물들이며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을 내뱉는 그의 곁에서 나는 투명인간이라도 되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간신히 화를 멈춘 그는 내 눈을 바로 보지 못한 채 그냥 수술 받으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그와 나의 어깨 사이에 레떼의 강이 흐르고, 그 강 위로 다시 찬 서리가 내렸다. 몰랐으면 상관없지만 수술하지 않고도 아이를 지울 수 있다는 것을 안 이상 수술은 절대로 하기 싫었다. 돈 보다는 나의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던 그의 이전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교차되며 내 가슴을 단단히 굳게 만들었다. 하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아무 말 없이 그저 그의 발끝만 바라볼 뿐이었다.
다음날 그는 나머지 돈을 봉투에 담아 왔다. 저 봉투 안에 든 것이 어제 내가 겪은 모욕감이라는 생각에 참았던 설움이 복받쳐 올랐다. 하지만 시련은 그것이 끝이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마지막까지 위엄을 과시한다. 마이크를 축소해 놓은 것 같이 생긴 물체에 늘어진 콘돔을 씌우고 질 속의 구석구석을 살피던 의사는 아이가 7주반이 넘어서 돈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일 이와 같은 일을 반복하는 그에게 동정심이라는 단어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알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뱉는 자신의 말에 의해 나의 혈관과 세포 하나하나가 얼어붙는 것을 그는 모를 것이다. 밖에서 기다리는 그에게 의사에 말을 전하는 심정은 발가벗겨져 길거리에 나뒹구는 것만큼이나 비참했다. 그는 눈의 초점을 둘 곳 없어 헤매다가 무거운 내 어깨에 얹었다. 지금이라도 수술을 하자는 말이 금방이라도 그의 닫힌 입에서 흘러나올 것 같아 뒤를 돌아버렸다. 하지만 그는 간호사에게 가서 남은 돈은 다음에 지불하기로 약속하고 나를 치료받게 하였다. 약을 먹자 견딜 수 없는 메스꺼움이 나를 엄습했다. 위로는 구토가 아래로는 죽은 아이의 핏덩이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육체적인 통증보다 그의 질책하는 듯한 눈이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추가된 돈의 크기만큼이나 작아진 채 나는 스물두 번째 생일을 맞은 것이다.
머리핀을 손에 움켜쥔 채 하염없이 걷는다. 그도 말이 없고, 나도 말이 없다. 그는 자신이 도의적 책임을 다한 것에 대해 만족해하고 있을 것이다. 넉넉지 않은 그의 가정환경도, 무능력한 아버지도 탓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 자체에 대한 실망감은 감출 수가 없다. 학생인 그는 자신이 빌린 돈을 갚을 방법을 궁리하겠지만, 나는 무너진 믿음을 회복할 방법을 떠올리고 있다. 하지만 쉽게 회복될 것 같지는 않다. 해가 달의 차가움에 밀리며 모습을 점점 감춘다.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용인 인터체인지를 지나 다시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좀 전에 있던 일이 꿈이 아닌가 하는 몽롱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꿈은 아니다. 그 남자가 알려준 길은 상당히 지름길이었다. 물론 실수를 하지 않고 그냥 고속도로를 달린 것보다는 못하지만 고속도로에서 길을 잃은 것 치고는 많은 시간을 뺏기지 않았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일은 걱정하는 것만큼 어렵지 않다. 시간만 약간 지체될 뿐이다.
차가 거의 없는 휑한 도로를 달리자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계기판을 보니 시속 130킬로미터에 육박하고 있다. 시속 130킬로미터가 넘자 차체가 흔들린다. 흔들리는 바깥 풍경들도 유령처럼 등 뒤에 숨는다. 남편은 시속 13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려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속도가 되면 차체가 흔들린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알았다면 수리하지 않고 놔둘 리가 없다. 그는 자신의 속 쓰림은 미간을 찌푸리며 참아도 차에서 나는 조그만 소리조차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닫힌 창문을 열자 경쾌한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들어온다. 몸이 뒤로 젖혀질 정도로 얼굴을 두드리는 강한 바람에 약간 움찔한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 소리도 무겁다.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듯 무서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고개를 가로 젓고 상체에 힘을 주자 어느새 바람과 나는 하나가 된다. 오히려 바람이 머리를 쓰다듬는 듯 편한 느낌이 든다. 창문을 닫고 있을 때의 바람은 날카로운 칼날을 품은 듯 매섭게만 보였지만 막상 내 몸에 와 닿는 바람은 하얀 융단처럼 보드랍기만 하다. 내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람이 아니라 바람의 진실을 왜곡하던 창문이었다. 씁쓸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자 계기판이 눈에 들어온다. 차의 속도가 시속 100킬로미터 이하로 떨어져있다. 흔들리는 차체와 휘몰아치는 바람이 내면의 두려움을 자극한 결과다. 하지만 차의 속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갑자기 앞 유리에 작은 물방울이 부딪쳐 사방으로 퍼진다. 드문드문 닿던 빗방울은 점점 빈도가 잦아지더니 시야를 방해할 정도로 거세진다.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걷어 올리려 와이퍼를 작동시킨다.

“저… 우산 없으세요?”
버스를 내리고 비를 피하기 위해 정류소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에 막 불을 붙이려하던 내게 그가 다가와 건넨 말이다. 실제로 나는 우산이 없었고, 그의 호의가 싫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작고, 보잘것없는 삼단 우산을 머리 위에 살짝 걸치고 퍼부어대는 빗길을 뚫었다. 아버지가 차를 타고 정류장까지 나오기로 했기 때문에 일부러 차가 다닐 수 없는 좁은 길로 들어선다. 우산을 쓰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사선을 그으며 쏟아져 내리는 빗방울을 피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비가 휘어져 들어오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 비를 막아주는 그의 등이 왠지 넓어 보인다.
집에 들어와 젖은 몸을 말리며 그를 생각한다. 5분 동안 이루어진 짧은 대화였지만 그의 애틋한 음성이 귓가에 맴돈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우리 집 근처에 산다는 것과 학생이라는 것, 좋은 인상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나이가 나보다 서너 살 정도 많다는 것뿐이다. 군대에 있는 남자친구를 생각한다. 거센 빗속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 측은한 마음이 들어 수화기를 들다가 이내 내려놓고 만다. 시간이 너무 늦기도 하거니와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이다. 단지 우산을 같이 쓰고 왔을 뿐인데 꼭 바람을 피우고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자리에 누워 천장에 뿌옇게 흐려진 벽지 무늬를 바라본다. 팔을 뻗어 불을 끄자 천장에 붙은 야광별이 제 세상을 만난 듯 빛을 뿜는다. 별과 우주인, 그 옆에 화살이 박힌 하트도 새초롬하게 빛난다.
사랑이란 무엇이고, 연애란 무엇일까. 나는 남자친구를 사랑하고, 그의 연인이라고 확신한다. 그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다른 이를 그리고 있는 이 순간에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 확실한 건 지금 나는 어느 정도 외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 나는 군대에 있는 남자친구보다 오늘 함께 우산을 쓰고 온 그의 여자에 가깝다. 하지만 그가 나를 좋아하는 지가 확실치 않으므로 완전한 그의 여자는 아니다. 그럼, 만약 내가 멋진 남자 연예인을 마음속으로 그린다면 그것도 외도인가. 허망한 웃음만 나온다. 그것은 외도가 아니다. 그는 나의 존재도 모를 뿐더러 내가 관심을 보인다고 해도 낮잠을 방해하는 파리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산을 함께 쓰고 온 그 남자는 조금 다르다. 그는 분명 나에게 먼저 호의를 보였고, 빗길을 걸으며 그가 보였던 말과 행동은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판단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착각이 내가 그를 좋아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변한 것은 아닐까. 혹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위험한 진흙길을 걸을 때의 긴장감이 그에 대한 설렘으로 여겨진 것은 아닐까. 사랑이나 연애 감정이란 결국 이런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든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불을 켜고 편지지를 든다. 편지지에는 조그마한 핑크색 하트가 종이의 끝을 둘러치고 있다. 평소에는 당연하다고 여기던 그것마저도 눈에 거슬린다. 편지지 대신 줄쳐진 연습장을 정성스레 잘라 편지를 쓴다. 평소와 비슷한 이야기들이지만 오늘 일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욱 애틋한 내용이다. 반성문을 쓰는 마음으로 간신히 편지를 적고 우표를 붙이자 어느 정도 홀가분한 기분이 든다. 편지를 밀어놓고 남자친구와의 추억이 담긴 사진첩을 꺼내본다. 행복하게 웃는 그와 나의 모습이 아이처럼 앙증맞아 보인다. 나직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서러움에 눈물이 밀려나온다. 젖은 솜처럼 몸이 무겁다. 그가 곁에 앉아있는 착각에 몸을 기울여 그의 어깨에 기댄다. 하지만 그는 담배연기처럼 사라지고 나의 몸은 허공을 가른다. 그에게 나의 지친 몸을 기댈 수 있는 날까지는 일년이 조금 더 남았다. 게다가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그에게 안길 수 있을 때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어느새 안방에서 어머니의 노래 소리와 아버지의 한숨 소리가 방문을 타고 넘어 나의 귀를 기분 나쁘게 자극한다. 앨범을 덮어 책꽂이에 꽂고 밀어두었던 편지를 다시 집는다. 겉봉을 뜯어 편지를 꺼내 읽는다. 온갖 미사어구가 총동원된 편지의 내용은 힘든 군복무를 할 그의 일상에 커다란 활력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그 편지는 보내지지 않을 것 같다. 꽂아두었던 앨범을 다시 꺼내 그와 찍은 사진을 모두 꺼낸다. 살집을 덜어내어 경쾌해 보일 정도로 홀쭉해진 앨범을 제자리에 다시 꽂고, 꺼낸 사진과 편지를 서랍 깊숙한 곳에 넣고 그 남자를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이 집에서 벗어나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 정도의 남자라면 우리 집에서도 크게 반대는 하지 않을 것이다. 기대감과 박탈감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내 머리를 배회하는 동안 창밖으로 어느새 무거운 새벽동이 터 오르고 있다.

겹겹이 둘러친 산 틈에서 새벽이 밝아온다. 솟아오르는 태양이 비구름마저 몰아낸 듯 세차게 내리던 비가 어느새 멈춰있다. 가벼운 새벽 공기가 열어놓은 창문을 비집고 나의 얼굴을 간지럼 태운다. 달리는 차 안에서 맞는 새벽이 그리 싫지 않다. 동이 터 오르는 쪽을 자세히 바라보자 노을이 피어오르고 있다. 동쪽 하늘이 온통 불붙어 타고 있다. 그건 광채 찬란한 불바다이다. 눈부신 찬연함으로 불타는 노을의 색깔은 이글거리는 불덩이의 싱그러운 생명력이다. 저녁노을은 위에서부터 변색해 내려오지만 아침노을은 아래서부터 사위어 오른다. 저녁노을은 장중한 느낌이 들지만 아침노을은 경쾌한 느낌이 많다. 나는 지금껏 아침노을을 잊고 살았다. 발끝만을 내려다보는 생활이 만성화되면서 처량하고 황량한 저녁노을만이 나의 육체와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저녁노을이 밤사이 어두운 대기를 이정표 없이 방황하다 새벽에 되면 어김없이 그 찬란한 생명력을 뽐내듯 나 또한 그럴 것이다.
기울인 고개를 정면으로 두자 완만한 경사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다. 차가 경사를 넘어 내달리기가 버겁다는 듯 덜컹거린다. 차를 갓길에 세운다. 액셀보다는 브레이크페달이 더 큰 이유는 달리는 것보다는 멈추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려 새벽 공기와 맞대면한다. 비가 내렸던 탓인지 콧속을 통과하는 공기가 폐를 정화해낼 수 있을 정도로 신선하다. 구겨졌던 몸이 서서히 자리를 찾아가면서 아뜩한 느낌이 난다. 갓길 바깥을 내다보자 발 빠른 계곡이 흐르고 있다. 계곡물은 가파른 굽이를 돌며 부딪치고, 깨지고, 부서지고, 휘돌고, 솟구치고, 나뒹굴고, 처박히고, 맴돌이질 친다. 하지만 전혀 아파보이진 않는다. 고여 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저들은 행복하다.
차를 그대로 둔 채 천천히 언덕을 향해 걷는다. 뛸 필요까지는 없다. 다만 지금의 걸음을 멈추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저 언덕이 끝날 때까지는 절대 서지 않을 것이다. 걷다가 돌부리에 채여 길바닥에 처박히고, 깨지고, 부서져도 좋다. 새벽의 찬 공기와 타는 아침노을, 굽이쳐 흐르는 계곡물의 격려를 느끼며 나는 묵묵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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