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계환 동국대학교 불교무형문화연구소 연구초빙교수
▲ 명계환 동국대학교 불교무형문화연구소 연구초빙교수

 고려 후기의 불교계 고승 일연이 찬술한 『삼국유사』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실려있다.

 혜통이 승려가 되기 전, 그의 집은 남산 서쪽 기슭 은천동의 어귀에 있었다. 어느 날 집의 동쪽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아서 죽이고 그 뼈를 동산에 버렸다. 그 이튿날 아침에 뼈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핏자국을 따라서 갔더니 뼈는 자신이 살던 굴속으로 돌아가서 어린 새끼 다섯을 품고 웅크리고 있었다. 이것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을 놀라고 기이하게 여겼다. 그는 감탄하고 망설이다가 문득 속세를 버리고 승려가 되었고 이름을 혜통으로 바꾸었다.

 『삼국유사』 제5권 「신주」 제6 “혜통항룡”

 혜통은 변했다. 그는 하찮은 축생 따위는 놀이 삼아 죽일 수 있는 냉혈한이었지만, 죽어서도 새끼를 품은 수달이 혜통의 마음에 온정을 지폈고 인생마저 갈랐다. 우리는 그 마법 같은 힘을 자비(慈悲)라고 부른다. 자비는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다.

 약 1년 전 퇴근길 전철 안, 내 옆자리에 앉은 젊은이가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로 연신 거친 기침을 해댔다. 모두가 예민한 시국이라 시선이 곱지 않았다. 나는 ‘다른 자리로 옮길까?’ 아니면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충고할까?’ 고민하던 중에 멈추지 않은 ‘콜록콜록’ 소리가 끝내 귓가에 거슬렸다. 나도 모르게 ‘욱’하고 한 마디 내뱉으려는 순간, 앞자리에 앉아있던 할머니께서 젊은이에게 살며시 다가와 목캔디를 건넸다. 그러면서

 “이것 먹으면 기침이 좀 멈출 거에요.” 

 할머니의 목소리는 온화했고 눈빛은 애정이 어렸다. 이에 덩달아 승객 한 분도 젊은이에게 마스크 한 장을 건넸다. 그 순간 모질었던 내 마음은 애써 미소로 감췄다. 할머니의 조그마한 목캔디 하나의 위력이 만만치 않았는지 그 후론 내 가방에도 목캔디 한 봉지와 마스크 몇 장을 마련하게 했다. 세상살이에 문제가 발생하면 늘 해답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가 백 가지면 해답도 백 가지다. 다만 자신이 처한 상황이 몹시 괴롭고 고달프면 그 어떤 조언과 충고도 들리지 않을 뿐이다. 이럴 때는

 그냥, 품는 것이다. 수달의 뼈가 새끼를 품듯.

 그러면 마법 같은 일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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