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덕분에 드라마 주인공 우영우가 앓고 있다는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한 관심도 증가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에 대한 최근 한 일간지 칼럼의 일부다. 해당 칼럼에는 “자폐스펙트럼장애 환아”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인용한 표현들은 무엇이 문제일까? ‘앓다’는 말은 ‘병에 걸려 고통을 겪는다’는 뜻이다. 즉 우영우가 ‘장애’라는 ‘병’을 앓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자폐스펙트럼장애 환아’라는 뒤따라 나온 것이다. 이 칼럼을 쓴 사람은 의대 교수였다.

장애를 질병과 구분하지 않을 때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장애는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다양한 스펙트럼(범주)일 뿐이다. 장애는 치료 등의 노력을 통해 상태가 회복되거나 사망으로 끝나게 되는 일시적이고 변동성 있는 개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그 상태를 인정해야 할 지속적인 상태다. 장애를 질병과 혼동할 때 장애는 극복해야 할 문제가 되고, 이 관점에서 장애는 열등한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영우 덕분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쏟아지지만 훨씬 더 많은 비중으로 장애를 극복하자는 메시지나 장애를 극복한 이들을 칭송하는 언론보도가 자리 잡고 있다. 포털에서 ‘장애’와 ‘극복’을 함께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특히 패럴림픽을 전하는 언론보도는 비장애인들의 스포츠 경기나 올림픽을 전할 때와 달리 선수나 종목이름을 찾기 어렵다.

장애를 극복했다는 말에 대해 고민해봤다. 패럴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장애가 사라졌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장애를 극복한다는 말은 장애가 있더라도 열심히 살아서 좋은 성과를 내야만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된다. 장애가 있지만 패럴림픽에 도전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태한 사람들인가. 장애가 있으면 불행한 상태여야만 하는 걸까. 장애를 불행으로 규정하는 건 누구의 시선인가.

“자폐는 병이 아니라 장애”라는 대사가 나온 영화 ‘말아톤’의 개봉시점이 2005년이다. 2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질병과 장애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장애가 열등한 위치에 놓은 상황에서 장애 관련 단어는 바보, 병신 등 욕설로 쓰이거나 ‘결정장애’와 같이 부정적인 비유로 사용된다. 우영우 덕분에 장애에 대한 시선이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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