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복 불교학부 연구교수
▲조종복 불교학부 연구교수

일어나 창문을 여니 푸르스름한 새벽 공기가 시원하다. 일찍 일어난 새들은 젖은 나뭇가지 사이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노닌다. 이런 날 아침 산책을 나가면 길 위로 기어 나온 지렁이를 종종 본다. 공원길을 돌아 집으로 올 때쯤 아침 해가 뜨고 햇살이 비추면 기어 나왔던 지렁이는 십중팔구 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길바닥에서 말라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렁이는 왜 땅 위로 기어 나와 그토록 위험한 길을 떠나는 것일까. 

지렁이를 보며 걷다가 실크로드를 거쳐 인도로 떠난 구법승들을 생각한다. 3세기부터 8세기에 걸쳐 많은 승려들이 중국에서, 신라와 고구려에서 인도로 길을 떠났다. 파미르고원, 천산산맥, 곤륜산맥을 돌아 망망대해 같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야 하는 그 길은 험난한 길이었다. 사방을 둘러 바라보아도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으며, 다만 사람이 죽어 썩은 뼈를 표식으로 삼을 뿐이라고 사적은 기록하고 있다. 

많은 구법승들이 인도로 가는 도중에 또는 돌아오는 길에서 목숨을 잃었다. 살아 돌아온 이는 열 중 한둘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인도로 떠난 이유는 법(진리)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매일 각자의 길을 떠난다. 학교며 일터로 각자가 떠나는 그 길은 가야만 하는 길을 가는 것이지만, 결국 어디에 가닿아야 하는지 최종 목적지는 확실하지 않고 희미하다.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고 말할지 모르나 습관적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도 부정하긴 어렵다. 어제의 삶이 오늘의 삶이자 내일의 삶이라면 관행과 습관에 의지해 상투적으로 사는 것이다. 그것은 엄혹하게 말해서 나의 삶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떠나는 것이다. 

남도 1번지라고 일컫는 강진은 내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곳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맨 처음 생각나는 후보지이다. 고향 근처 외딴 섬에서 며칠만이라도 지내고 싶다. 고립되었다고 해도 좋고 혹은 추방되었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 곳에서 며칠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빈둥거리고 싶다. 요 개켜서 벽에 밀쳐 기대고 멍 때리면서 창밖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겠고, 갯가에 앉아서 그냥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기만 해도 좋을 성싶다. 

그렇다. 내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모른 채 너무 오래 살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며칠 보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종일 바다와 하늘만 바라보며 지내고 싶다. 수평선 너머 멀어서 아득한 그곳을 계속 응시하다 보면 내가 떠나온 곳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누어 뭉게구름 지나는 푸른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으면 내가 어디로 갈 것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잠시라도 홀로 고향 근처 외딴 섬에서 그동안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생각하고,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도 생각해 보고 그리고 돌아오는 배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캔 맥주 하나 따 마시며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다. 돌아와 부닥치는 현실이 전과 다름없고 지지고 볶는 일상이 다시 시작되어도 괜찮다. 

세월이 무상하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세월은 무상한 것이 아니고 무서운 것이다. 하찮은 일이 내 발목을 잡기 전에, 더 늦어지기 전에 나는 떠날 것이다. 그 떠남을 감히 구법승의 여정에 비견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애타게 찾는 모든 것들은 늘 가까이 있다는 진리라도 깨닫게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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