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기자
                                   ▲박형준 기자

 

"배우는 건 눈물 나는 일이야”, 일전에 운전을 배우던 지인이 내게 한탄하며 전한 말이다. 지인은 운전 배우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내가 운전을 배우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말에 공감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나 역시도 인생을 살아오며 무엇인가를 배우는 일에 데인 상처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섯 살 즈음 미숙한 젓가락질을 단련하다 울기도 했고, 열 살 즈음 매일 같이 한문 필사 숙제를 내주신 학습지 선생님에게 큰 불만을 가지기도 했다. 나름대로 정신이 굳세어진 스물에 이르러서도 익숙하지 않은 대학 문화와 공부를 알아가는 일이 힘들었다. 무엇보다 이번 동대신문 수습기자로서의 배움과 그 어려움을 잊을 수 없다. 

신문 기자를 지망했던 나에게 동대신문은 인생 최초로 제대로 된 실무를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기사 작성법, 취재와 신문 편집 방법 등 이전에는 배워볼 수 없었던 것들을 수습기자로 활동하며 학습할 수 있었다. 다만 이제 와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과정 속에서 크게 고초를 겪었다.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내게 버거웠던 일들이 많았다. 특히 신문 조판을 할 때에는 나름대로 유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내가 크게 예민해지기도 했다. 한정된 시간과 처리해야 할 업무가 나를 옥죄는 기분에 심히 피로했다. 정말 ‘눈물 나는 배움’이 끊이질 않는 시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수습기자 생활이 불우했는가? 이는 단호하게 아니라 답할 수 있다. 신문 조판을 통해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있다는 설렘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나와 모든 기자분들의 노력이 집합된 지면 신문이 발간되었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이러한 보람찬 감정들이 내가 겪은 고초보다 훨씬 소중했기에 나는 한 학기 동안 수습으로 활동했고, 이제는 정기자의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지나간 일들은 먼 훗날 다시 추억할 때 더욱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흔히 우리가 ‘추억 보정’이라 부르는 것이다. 탈수습기를 적어 내려가며 지난 한 학기를 회고해보니 내 ‘눈물 나는 배움’의 눈물이 기쁨의 눈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은 사실일 수도, 어쩌면 추억 보정일 수도. 아무쪼록 나는 정기자 생활을 고대하며 꿈꾸던 언론인을 향해 더욱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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