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나 영화영상학과 21
▲이한나 영화영상학과 21

인생이 늘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어도 열 중의 하나는 계획대로 될 줄 알았다. 이러한 나의 안일함을 반성하게 된 건, 지난 1학기를 시작한 3월이었다. 그때쯤에 나는 아주 참담한 기분으로 새 학기를 맞이했다. 겨울 방학 동안 세워둔 계획들이 전부 물거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수강 신청에 실패해 원하던 전공 수업을 단 하나도 듣지 못할 예정이었고, 수강 정정 기간에도 수업에 남은 자리가 나지 않아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렇게 억지로 듣게 된 전공 수업은 한 학기 동안 거의 매주 조원들과 짧은 영화를 찍어내는 조별 실습이 중심이었는데, 나를 제외한 조원들이 전부 유럽에서 온 교환학생들이었다.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님이 외국인이셔서 수강생 중 외국인의 비율이 높을 줄은 예상했지만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수업에서 나처럼 ‘혼자’ 한국인으로서 외국인들과 조가 된 학생은 아무도 없었으며 우리 조원들은 기본적인 인사말을 제외하고는 우리말을 할 줄 몰랐다. 소통이 가장 중요한 조별 실습에서 소통부터 어렵다니,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었다. 수강 취소를 할까 해도 필수 전공 수업이라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계획대로 풀리지 않아 아주 절망스러운 새 학기였다. 

그러나 지금의 내게 모든 일이 계획대로 풀린다는 전제하에 다시 그때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아니오’라는 선택지를 들겠다. 오히려 지난 학기처럼 모든 게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 한 학기를 다시 보내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고 싶다. 예상했던 대로 외국인들과의 조별 실습은 정말 힘들었다. 나를 제외한 조원들은 전부 영어가 유창했는데, 영어라곤 책으로만 배운 게 전부인 나는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것조차 버거웠다. 심지어 동양과 서양 사이의 문화 차이인지, 좋은 성적을 받는 것과 시간 낭비 없이 고효율의 성과를 내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던 나와 달리 조원들은 시종일관 늘 느긋하고 순간을 즐겼다.

처음엔 이 모든 게 정말 싫증이 날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내가 변화하는 걸 느꼈다. 기본적인 영어 표현 몇 개와 몸짓 정도로만 간신히 소통했던 내가, 얼굴을 보지 않고 조원들과 영어로 통화를 할 수 있을 만큼 회화 실력이 늘었다. 또한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친구들과 어울리며 코로나 시국으로 꿈도 못 꿨던 해외여행의 기분을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었으며, 그것보다 더 큰 건 인생을 좀 더 재미있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성과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자라난 내가, 일상의 여유와 즐거움 그리고 약간의 행복마저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조원들이 가진 삶의 태도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 나를 절망스럽게 하고 좌절시켰던 모든 시련이 오히려 나를 성장시키고 새로운 것을 깨우치게 해준 셈이다.

우리는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어쩌지’ 하며 걱정하곤 한다. 그러나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에 예상보다 더 큰 것을 얻은 나는, 설사 그러더라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원하던 기회보다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르는 것이고, 더 큰 깨달음을 얻고 성장할 수 있게 될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다시 시작한 새 학기, 늘 그렇듯 크고 작은 계획과 목표들이 있다. 내가 바라는 대로 모든 일이 풀리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번엔 겁내지 않고 인생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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