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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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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 인문학을 이끌어 온 동국 문학 백년빛나는 이름안고 미래 향해 나아가는 입김되고자 노력

이제 우리는 동국 백년의 고갯마루 위로 막 올라서고 있다. 때로는 숨가쁘게, 때로는 씩씩하게 달려온 길. 한 세기의 봉우리가 어느덧 이마에 다가선다.
돌아보면 나우리치는 산줄기 줄기, 골짜기 골짜기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묵은 밭이랑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워서 가르치게 되는 우리들 고향 중의 고향. 명진학교(1906)에서 중앙학림(1916)과 중앙불교전문학교(1928), 혜화전문학교(1940)를 거쳐 동국대학교(1946)에 이르는 40년의 전사(前史)가 더욱 아스라하다.
그러나 시간의 책갈피마다 남아 있는 전통의 손길들은 오늘 분명 우리의 발맡에도 있고 어깨 위에도 있다.

그렇다. 사자와도 같이 코끼리와도 같이, 지난 백년은 자긍과 자부, 격려와 다짐의 굳센 모양을 하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학문 백년이 어찌 예사로울 수 있는가. 수묵빛 세월의 공덕 속에 울울창창 자라나온 것은 ‘동국정신’의 깊숙한 숲일 터이다. 그 숲의 향기로운 입김은 일찍이 만해 스님께서 넌지시 일러주신 바 있지 않던가.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 옛탑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알 수 없어요)

 

전통은 그런 것이다. 알 수 없는 향기와 같다. 도드라져 보이지 않고 강렬하지도 않으며, 창호지에 배는 달빛처럼 은은하면서도 또한 육괴지층처럼 막강하게 두텁다.
문사철(文史哲)이 동국정신의 달빛이요 육괴지층이다. 불교는 말할 것도 없지만, 특별히 문학이 인문학 전반을 선도해 온 게 동국의 역사이다.


문학으로 살펴 본 동국의 학풍

1958년 12월에 간행된 ‘동국시집’ 7집 발문에서 국문과 교수이자 당대 최고의 비평가였던 조연현은 동국문학의 전통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정신의 방향이나 가치의 표준이 기계적이기보다는 생명적이요, 서구적이기보다는 동양적이요, 이지적이기보다는 신앙적이요, 기교적이기보다는 사상적이요, 시류적이기보다는 근원적이요, 모방이기보다는 창조적인 경향이 그것이다.”

이것은 문학 전통에 대한 분석이지만 사실은 동국 인문학 전반의 특성이기도 하다. 간명한 비교와 대조의 수사법을 통해 ‘깊은 나무’의 상징이 저절로 드러나게 한다.
깊은 나무는 오래 묵은 고사목이 아니다. 병화불입 후미진 고샅에 나 홀로 서 있는 나무는 더욱 아니다.

깊은 나무는 천년을 살아온 나무이며 동시에 앞으로의 천년을 위해 쓰일 나무이다. ‘생명·동양·신앙·사상·근원·창조’의 미덕이 이 상징의 세부들이다.
그러므로 동국 학문의 백년 전통은 미래의 백년 천년을 예비할 수 있는 매력적인 가능성으로 언제나 살아 숨쉰다.
만유의 근원을 자유라고 갈파한 만해 한용운 스님의 확철대오, 겨레어를 갈고 다듬어 수많은 절창을 빚어낸 미당 서정주의 자강불식, 그 찬란한 깨침과 줄기찬 노력이 동국 학풍의 두 축이다.

이 두 가지는 선후와 경중이 없으며, 서로 멀리하는 꺼림도 없으며, 오직 용맹정진 분투노력함으로써만 함께 얻어지는 지혜의 보석과도 같다.

 세계의 마지막 나라 대한민국의
 맨 마지막 정적과
 의무 속에 자리하여
 가장 밝은 눈을 뜨고 있는 모교여.
 삼세 가운데서도 가장 쓰고
 짜거운 한복판
 영원 속의 가장 후미진 서재.
 최후로 생각할 것을 생각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최후로 책임질 것을 책임지려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모교여
 우리 고향 중의 고향이여.

개교 62주년 기념시인 서정주의 ‘우리 고향 중의 고향이여’가 암시하는 역설의 미학이 용맹정진 바로 그것이다.
가장 밝은 눈은 ‘삼세 가운데서도 가장 쓰고 짜거운 한복판’과 ‘영원 속의 가장 후미진 서재’에서 나온다는 통찰이 우리로 하여금 기쁜 마음으로 분투노력하게 한다.


개교 백주년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

무엇을 일러 귀감이라 하는가. 한국의 대표적인 산악 에세이스트요 국어교육과 교수였던 시인 장호는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붓글로 이팔청춘의 기예를 빛냈는데, 소년 명필의 문장 속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눈에 꽂힌다.


사람이 젊어서는 시간 아낄 줄 모른다. 알더라도 크게 아낄 줄 모른다. 사십이 지나서야 비로소 아낄 줄 알게 되지만, 그때는 기운이 점차 떨어지게 된다.  옛사람들은 학문을 함에 반드시 때 맞추어 힘을 쓰도록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백 번 후회해도 끝내 무익하다.
(人方小壯時不知惜陰, 雖知不至太惜. 過四十已後始知惜陰, 旣知之時精力漸耗. 故人爲學須要及時勉勵. 不則百悔亦竟無益.  言志錄金少)


배움에는 다 때가 있으니 열심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 이제 다시 스스로에게 말한다. 동국 백년이 성큼 성큼 다가온다. 우리는 너나없이 지난 수묵빛 수첩 속의 빛나는 이름들을 떠올린다. 근대 한국불교의 석학이자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장이었던 석전 박한영 대종사, 불굴의 의지와 기백을 떨친 만해 한용운, 박람강기의 무애 양주동 교수,……, 신석정, 김달진, 서정주, 조지훈, 이형기, 신경림, 조정래, 문정희……. 동국문학의 하늘에 뜬 별들을 헤아리는 것은 새삼스럽다.

그 이름을 불러내는 것은, 어쩌면 족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즐기고 앞으로는 도무지 나아갈 줄 모르는 회고주의자의 타령일지도 모른다.
바라건대 우리의 책무는 ‘스치고 가는’ 것이다. 그것은 없는 듯 하면서 있는 것이고 고요한 듯하면서 움직이는 것이다. 시끄럽거나 화려하지 않으며, 안으로 안으로 실력을 쌓는 것이다. 개인으로는 주인됨을, 동국가족 전체로는 하나됨을 깨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향기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옛탑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미래의 백년 천년을 향해서 나아가는 입김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때에는, 대운동장 위 정남방향의 하늘을 향해 찬연한 문기(文氣)를 내리쐬는 정각원 주련(柱聯)이 더욱 씩씩할 터이다.
동국상방대광명(東國常放大光明).   
 
윤 재 웅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윤 재 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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