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규모 반영·원화의 국제화 위해 필요

 

현재 정부에서는 화폐개혁을 논의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언론 및 단체·개인 등에서는 이에 대한 활발한 찬·반 논의가 펼쳐지고 있다. 이에 각각의 의견을 지면화해 본다. <편집자>

 
화폐개혁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화폐단위를 변경하는 ‘리디노미네이션’과 5만 원권,10만 원권을 찍어내는 ‘고액권 발행’이다. 화폐개혁이 마지막으로 단행된 지난 62년 이후 지난해까지 국내총생산(GDP)은 약 2,130배, 소비자물가는 28배가량 상승했다. 따라서 40년도 더 된 화폐단위가 우리경제의 현재 규모와 위상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작년 말 현재 4,670조원대인 금융자산은 오는 2009년 전후 `0 을 16개 붙이는 `경(京) 단위로 불어나게 된다.

외국의 경우 대부분 화폐 100 단위면 물건 사고파는 것이 해결된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주택 구입도 보통 10만 단위 이내에서 가능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주택을 구입할 때 기본적으로 ‘억’단위까지 써야 한다.

화폐단위를 변경하면 통화(원화)의 대외적인 위상도 높아진다. 현재처럼 1달러에 1,150원 정도 하는 환율로 우리 원화를 국제화하기는 곤란하다. 달러와 비교해 1,000이 넘는 환율을 갖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 175개국 가운데 한국을 포함해 26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아프리카 후진국들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터키가 내년부터 화폐단위를 바꾸면 OECD 회원국 가운데 달러화 대비 네 자릿수의 환율을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남게 된다. 경제력에 비해 화폐단위가 높은 일본도 리디노미네이션을 4차례나 추진하다 결국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통화(엔화)가 너무 커지고 국제화 돼 화폐개혁을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지금 화폐개혁을 추진해도 막상 시행하는 데 3년에서 5년 정도가 걸린다. 사전에 화폐단위 변경에 대비해야지 그때 가서 문제를 인식하면 정책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은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경우 2조 6,000억 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반면, 최소 5조원 이상의 부가가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고액권 발행은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본다. 비용도 적게 들고 국민들의 불안감도 생각보다 크지 않다. 시중 은행들도 대부분 고액권 발행에 찬성하고 있다. 10만원권 자기앞수표 사용에 따른 불편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앞수표가 없어질 경우 향후 3년 간 1조8,000억 원의 발행경비가 절감될 것으로 추산됐다.

물가상승 우려도 예상처럼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로화의 경우 화폐도입에 따른 실질적인 물가상승 압박이 0.2~0.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화폐개혁이 경제적인 효과보다는 사회개혁에 무게를 두고 추진돼서는 안 된다. 90년대 초 금융실명제 도입과 같이 `깜짝쇼 형태로 경제에 충격을 줘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철저하게 공론화과정을 거쳐 화폐개혁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화폐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시기 문제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마디로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많이 가진 자산가들은 화폐개혁으로 재산을 몰수당하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실제로 60년대 초 군사혁명 직후 단행된 화폐개혁은 그런 이유를 갖고 있었다.
요즘 논의되는 화폐개혁은 경제 규모에 걸맞는 위상을 갖자는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발전도 없다는 사실을 숙지해야 한다.
 
채 수 환
매일경제 편집국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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