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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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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 … 근린국가 협력 중요공동체 자각으로 교류·화합통해 상생의 길 모색 주력해야

 

에코포럼은 생태·환경문제에 관한 여러 학문의 학제적 교류와 실천운동을 지원하는 개방적 학술모임으로 오는 16일 창립한다. 에코포럼의 공동대표인 고건 전 국무총리는 최근 ‘조화형 문명창조를 지향하는 난저우(蘭州)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여 연설했다. 에코포럼 출범을 앞두고 본사는 고 공동대표의 연설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고 건
에코포럼 공동대표·전 국무총리


네트워크(Network)와 문명

조화형 문명창조를 지향하는 동아시아 삼국회의가 비단길의 입구, 뚠황에서 개최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비단길은 동아시아와 서방을 하나로 연결한 최초의 네트워크(Network)였으며, 동아시아 문명 형성에 자양분을 공급한 젖줄이었다. 이 길을 통해 서방과 문물을 교환하였고, 헬레니즘과 인도의 예술, 그리고 불교와 이슬람교도 전파되었다. 물론 비단길은 연약하여 자주 끊기기도 했다. 이 길과 그 주변의 오아시스 도시국가들을 놓고 중국, 티벳, 투르크, 위구르, 몽골 등의 쟁패가 끊이지 않았고, 결국 몽골제국의 해체와 함께 남지나해, 인도양, 아라비아해를 지나는 바닷길로 대체되었다.

주목할 점은 문명권간 네트워크가 열려 있을 때 이들은 함께 번영했고, 이 네트워크가 해체되면 함께 침체를 맞았다는 점이다. 근세 이전 세계에서 서방과 동방의 문명들은 그 발흥과 쇠퇴의 시기가 유사했다. 안드레 군더 프랭크가 ‘리오리엔트’에서 역설했듯이, 세계는 ‘정보화혁명’과 ‘글로벌 경제체제’가 도래하기 훨씬 전부터 하나의 ‘세계체제’였으며 동아시아는 그 중심이었다.

그러나 바닷길마저 끊기면서 동방은 고립과 침체의 길을 걸었으며, 18세기에 이르면 변방이었던 유럽이 아메리카의 은(銀)을 무기로 세계무대의 중심에 등장한다. 이어서 서구의 ‘승리’는 서구에 내재되었던 가치에 연유한 필연적 현상이란 주장이 등장하고, 서구에서 배태된 이성, 과학, 생산체제, 정치형태 등이 인류의 보편적 요소로 ‘보급’된다. 또한 ‘아시아적 정체’는 비합리적인 ‘아시아적 가치’에 기인한 당연한 결과라는 서구중심주의적 해석이 진리로 자리잡게 된다.


아시아의 재등장과 새로운 과제

최근 동아시아는 두 세기만에 ‘근대화’를 이룩하고, 세계체제의 변방에서 중심권으로 복귀하고 있다. 이제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동아시아는 분명 세계의 세 번째 중심으로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1990년 중반, 세계 국민총생산에서 동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북미와 같은 24%였고 그 비중은 더욱더 커질 전망이다. 아시아 자본주의의 한계라 했던 금융위기도 훌륭히 극복했다.

동아시아의 급속한 재부상은 세계차원과 지역차원 모두에서 새로운 관계설정을 요구한다. 세계차원에서 동아시아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성찰하여 서구와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독자적 문명권으로서 인류의 미래에 기여해야 한다. 아시아의 빠른 근대화는 서구 발전모델의 차용 덕분인가 아니면 아시아적 전통에 또 다른 촉진기제가 있었던 것인가 ─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이항대립적 인식방법과 경쟁원리에 기초한 서구중심의 세계관에 대해 조화형 대안을 찾는 일과 연결된다.

이런 상황에서 역내 협력 강화는 매우 중요하다. 동아시아는 유교와 한자문화를 공유한 문명공동체이며, EU인구의 4배를 포괄하는 거대한 ‘자연경제권’을 이루고 있다. 역내교역 비중 역시 EU, NAFTA와 비교해 빠르게 성장하고 자본교류도 확대되고 있으며, 자본투자수익율도 세계최고이다. 이제 초국가적 협력의 강화는 구성원 모두를 위한 상생의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세계차원과 역내차원 모두에서 자기중심주의의 발흥은 상호협력을 어렵게 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논쟁, 다오위타이(센가쿠)섬을 둘러싼 중일대립, 교과서를 둘러싼 세 나라 사이의 갈등 등은 협력확대를 막는 덫이다. 이들은 모두 폐쇄적 민족·국가주의 정서에서 나온다. 이러한 정서는 내부사회 통합을 위해서는 효과적 동원기제일 수 있지만, 공격적으로 추구되면 패권주의와 제국주의를 낳고 방어적으로 조장되더라도 불신과 적대감을 낳는다. 이 모두 글로벌 시대, 경제블록화 시대, 조화지향의 문명에 대한 요구에는 배치된다.


원융회통(圓融會通)

필자는 동아시아 근린발전과 조화형 문명창조의 원리를 1,400년전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설파한 ‘원융회통’의 사상에서 찾는다. 원융회통에서는 너와 나를 나누는 이분법적·상호배제적 논리를 넘어, 양자병립을 인정하는 순환적 논리(圓)가 인정된다. 즉 일체는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관계망 속에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임을 자각하는(融) 것이다. 그리고 서로 만나 교류함으로써(會) 통하고 화합하게 된다는(通) 뜻이다. 원자화된 개체의 집합과 초개인적 구조로 사회를 바라보는 서구적 전통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발상이다. 

원융회통은 불교적 개념이지만 조화 속에서 다름을 포용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나 극단을 피해 조화를 도모하는 중용화합의 유가정신과도 일맥상통하고, 다중심·다문화주의와도 상통한다. 그러나 서구의 다원주의나 상대주의와는 다소 구별된다. 원융회통의 사상은 자기중심적 국가·민족주의를 넘어 사해동포의 이상을 포용한다. 서구문물에 대한 동화전략이나 “아시아 것이 더 우월하다”는 역전전략을 모두 배격한다. 양자 모두 보편성의 전유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적 서구’, ‘공동체주의적 아시아’ 같은 이분법적 범주화가 아니라, 다양한 문명들의 구체적인 경험 속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찾고 이를 공유하며 융합하는 데 주력한다.


회통의 주요 의제들

동북아 세 나라의 근린발전을 위해, 그리고 조화형 문명 모색을 위해 함께 할 일들은 이번 회의의 조직자들이 제시하는 의제들을 포함해서 다양하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북핵문제의 해결이 당면한 과제다. 이는 동아시아의 정치적 안정과 직결되는 예민한 과제로, 6자회담의 틀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일단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6자회담의 틀 속에서 동아시아의 긴장완화를 이루고, 항구적 평화구축을 위한 평화군축 문제도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정치적 갈등의 소지가 적은 금융협력은 좋은 출발점이다. 역내 금융위기에 대비한 아시아 통화기금의 조성, 아시아 통화단위의 결정, 무역자유화를 거쳐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형성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낙후지역을 위한 인프라 개발, 몽골의 사막화 방지 등 역내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자금을 조달·관리하는 국제컨소시엄 설립도 바람직하다. 에너지·식량자원의 협력과 역내 IT통신기반과 유비쿼터스 환경조성 역시 중요한 협력과제들이다.

문화적으로도 서로에 대한 이해를 보다 높여야 한다. 나이든 세대는 굴절된 근대사의 체험에서 기인한 편견으로 서로를 재단하며, 젊은 세대는 세계화의 물결에 휩쓸려 가까운 이웃나라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하다. 문화유산은 물론 각국의 근대화과정에 대한 공동연구를 통해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다양한 학술, 예술, 스포츠, 대중문화 교류도 당연히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는 연결된 하나의 생태계다. 중국의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동북아의 자연환경 오염 문제는 3국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시급한 현안이다. 교토의정서를 중심으로 지구적 환경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역내 국가들이 역량을 모아야 한다. 도시문제도 좋은 협력대상이다. 동아시아에는 지구에서 제일 크고 밀집된 도시권역이 비행거리 한두 시간 안에 집중되어 있다. 한중일의 거대 도시권들은 각기 수천만 명의 인구를 가졌으며,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엔진이자 세계 최대의 에너지 소비지로서, 각종 공해와 도시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에 대한 상호협력은 역내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며, ‘도시의 시대’에 지구촌 다른 도시들에도 큰 기여가 될 것이다.

 

실천의 길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구성원간에, 그리고 동아시아와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원융·회통할 것인지가 우리의 과제다. 여기엔 왕도가 있을 수 없다.

원융을 막는 관념과 현실의 벽을 허무는 일, 원융을 촉진할 정신적·물질적 공동자산을 발굴·증대시키는 일, 회통을 위해 다양한 만남과 소통의 계기를 확대하는 일, 그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다. 모두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함께 지속적 노력을 기울일 일들이다.
이제 우리는 아시아의 전통사상, 즉 가깝고 쉬운 일부터 시작함으로써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자기 사회의 화합과 이웃나라와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서, 문명 간 충돌을 질타하고 조화형 문명을 설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스스로 덕(德)과 인(仁)을 실행해 모범을 보임으로써 남과 밖을 널리 교화한다, 이는 바로 21세기에도 빛을 잃지 않는 동양정신의 정수로 생각된다.

따라서 3국간의 역사해석을 둘러싼 현안들에 대해, 해결을 위한 공동노력이 요청된다. 중요한 것은 자기중심적·국가주의적 시각이 아니라, 관계론적·세계체제적 관점에서 함께 공유한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관리하며 미래를 계획하는 일이다. 필자는 민간전문가 중심의 한중일 역사공동위원회를 설립해 현안문제들을 풀어가길 제안한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 한 작은 국제행사에서 희망을 보았다. ‘1945년, 8·15 한중일 3국의 역사인식 공유’라는 주제로, 한 시민단체가 주최한 작은 국제행사였다. 중국과 일본에서 온 40명의 청소년들이 한국의 친구들과 5박 6일을 함께 지내며, 역사의 현장도 방문하고 토론을 나누었다. 서로 배운 바가 다르고 시각차도 커 갈등의 순간도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헤어질 때 모두들 ‘역지사지’를 배운 참으로 소중한 체험이라 공감했다는 기사였다.

바로 이것이다. 이런 열린 마음에서 공유의 영역은 넓혀진다. 특히 내일의 주역인 청소년들이 열린 마음으로 자랄 때, 아시아 근린발전에 조화형 문명창조의 길이 열린다.
원융회통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여러 주체들의 다양한 노력이 요구되지만, 단초는 역시 ‘원융’의 뜻을 가지고 함께 만나 ‘회통’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난저우 국제회의는 무척 뜻 깊은 시도로 생각한다.

조화형 문명창조를 지향하는 이 국제회의의 정신이 더욱 심화·확대되어 갈등으로 얼룩진 세계에 새로운 지향점을 던져주길 바란다. 필자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동방’을 뜻하는 영어 ‘Orient’에는 ‘눈부신, 찬란한, 떠오르는, 태동하는’의 뜻과 함께 ‘방향을 바로잡다, 방향으로 나아가다, 지향하다’란 의미가 함축되어 있음을 상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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