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푸르른 봄, 부쩍 따뜻해진 날씨가 느껴진다. 
초목이 무성하고 꽃비가 흩날리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의 발길이 멈춘 캠퍼스는 쓸쓸하기만 하다. 
이번 호에서는 학교 일상이 그리울 동국인들을 위해 대학 캠퍼스를 자세히 소개해 보려고 한다.

▲활짝 만개한 벚꽃이 아름다운 캠퍼스의 전경.(사진=장미희 기자.)

 

본지가 1950년 4월 15일 창간된 이래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했다. 동대신문의 역사가 깊어가는 만큼 우리대학의 나이테도 하나둘씩 차곡차곡 쌓여 간다. 이번 포토에세이에서는 우리대학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명진관, 정각원과 코끼리 상의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둘러보려고 한다. 특히 이 글이 아직 캠퍼스를 거닐지 못한 올해 신입생 학우들에게 흥미로운 정보가 되기를 바라면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한눈에 담은‘명진관’

‘명진(明進)’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어디일까. 우리 대학의 기원은 ‘명진학교’로 1906년 불교계 인사들이 불교 인재를 길러내고자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일제에 의해 두 차례 개교와 폐교를 반복했으나 광복을 맞이한 1945년 9월에 다시 문을 연 뒤 ‘동국대학’으로 개편했다. 이후 한국전쟁 종전 즈음인 1953년에 종합대학인 ‘동국대학교’로 개편하고 1958년에 첫 번째 강의동인 석조관을 건립했다. 이때 모진 시련에도 굴복하지 않은 우리대학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명진’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우리대학 정중앙에 위치한 명진관의 앞쪽은 팔정도와 청동여래입상, 코끼리 가족을 품고 있어 불교 정신에 바탕을 둔 우리대학의 건학이념을 잘 보여준다. 또한 뒤쪽은 좌우로 남산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계절마다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학내 대부분의 건물이 현대식으로 지어진 것에 비해 명진관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특별한 외관이 일품이다. 회갈색 빛의 불규칙한 석재로 마감된 명진관의 외관은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 속 거대한 고성을 떠올리게 할 만큼 신비롭다. 

▲회갈색 석재로 마감된 명진관.(사진=장미희 기자.)

명진관은 1958년에 건립된 지상 5층, 지하 1층 규모의 석조건물이며 오늘날에는 문이과대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학내에서 가장 오래된 강의동이다. 얼마 전에는 이 역사와 건축의 고유성을 인정받아 문화재청에 의해 근대문화재로 등록되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명진관은 우리나라 대표 건축가 중 한 명인 송민구 씨에 의해 설계된 고딕풍의 건물”이며 “중앙부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성을 강조하고 외부를 석재로 마감해 당시 대학 본관으로서의 상징성을 잘 표현했다”를 등재 사유로  밝혔다. 이에 2018년 11월 6일자로 명진관은 ‘동국대학교 석조전(명진관)’이란 명칭으로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735호로 지정됐다.

▲중앙부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성을 강조했다.(사진=장미희 기자.)

‘명진’은 ‘밝게 나아가다’를 뜻하는 희망찬 이름이다. 비록 수개월 동안 전 세계에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이 이어지는 상황에도 앞으로 우리 대학의 캠퍼스를 누빌 모든 이들 앞길이 ‘명진’이라는 강의동의 이름처럼 밝게 나아가길 바란다.

 

궁궐이 대학교 법당이 되기까지 ‘정각원’

명진관에서 대운동장 쪽 언덕을 따라 내려오면 커다란 종각과 옆으로 커다란 한옥 한 채가 보인다. 이곳은 대학법당인 ‘정각원(正覺院)’으로 정기적인 법회와 함께 우리 대학 필수 교양 수업 중 하나인 ‘자아와 명상’ 강의가 진행되는 곳이다.
본래 정각원은 어떤 건물이었을까. 정각원의 시작은 경희궁의 정전(正殿)인 숭정전이었다. 조선 광해군 때인 17세기 초에 건립돼 이백여 년을 조선의 이궁으로 기능한 경희궁의 쓰임새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급변했다. 일제에 의해 경희궁이 강제로 해체되면서 숭정전의 목재가 팔리게 된 것이다. 이 목재는 일본 거류민들의 자녀를 교육하기 위한 경성중학교의 교실로 사용되다 1926년에 남산 기슭으로 옮겨져 일본식 사찰인 조동종의 조계사(曹谿寺)의 법당으로 개조됐다. 그렇기에 숭정전의 원형은 사라졌지만, 오늘날에도 정각원 내부 천장의 쌍룡과 화려한 단청으로부터 여전히 조선 궁궐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숭정전은 1976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져 지금의 ‘정각원’이라는 이름의 학교 법당으로 쓰이게 됐다.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된 정각원.(사진=장미희 기자.)

1977년 2월 8일 개원한 후 꾸준히 각종 법회와 불교 행사를 진행하며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정각원. 교직원과 학생은 물론 모든 사람에게 개방돼 있으니 한 번쯤 이곳에 들러보는 것도 좋다.

▲정각원에서 바라본 남산과 종각.(사진=장미희 기자.)

 

 

캠퍼스 한가운데 등장한 코끼리 가족 
‘보현보살 코끼리 상’

우리대학 학생은 자신을 ‘코끼리’라는 귀여운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학생들 사이에는 ‘코끼리 위에 올라가면 퇴학을 당한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졸업식 때 코끼리 등에 올라타 사진을 남기는 것은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코끼리 상 주변은 짧은 공강 시간을 보내거나 학우와의 약속을 기다리기 알맞은 장소이기에 우리대학 학생들은 코끼리 가족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인다. 
팔정도에 놓인 코끼리 상을 처음 마주하면 이질적인 느낌을 받기도 한다. 갑자기 땅속에서 솟아났을 리는 없을 텐데. ‘도대체 왜 학교 한가운데 코끼리가 있는 것이며,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일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 이유는 우리대학이 불교 정신을 계승하고 있고 흰 코끼리는 불교에서 상징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의 생모이신 마야부인은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그를 잉태했다. 그렇기에 불교에서는 흰 코끼리를 귀히 여기게 됐고, 우리대학은 개교 95주년을 기념하며 이것에서 모티브를 얻은 조각상을 세우게 된 것이다. 2001년 5월 7일에 제막식을 봉행한 ‘보현보살 코끼리 상’은 이전까지 분수대로 사용되던 곳을 흙으로 메운 지금의 자리에 놓이게 됐다. 특히 매년 부처님 오신 날 전후로 코끼리 상을 중심으로 캠퍼스 전체에 연등과 소원 종이가 수 놓이는데 바람을 따라 산들산들 나부끼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에 힘입어 작년 겨울 코끼리 가족은 재단장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우리대학에 친수 공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수용해 코끼리 동상 주변으로 산을 형상화한 석재와 함께 작은 개울을 설치한 것이다. 다가오는 오프라인 개강일에 달라진 보현보살 코끼리 상의 모습도 확인할 겸 팔정도를 방문해 명진관과 남산을 바라보며 완연한 봄기운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재단장한 보현보살 코끼리 상 전경.(사진=장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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