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경 다르마칼리지 조교수

동국대에서 글쓰기를 강의한지 어느새 10년이 되었다. 글쓰기 강의는 주로 신입생들이 수강하다보니, 지난 10여 년간의 동국대 신입생들을 꾸준히 보아온 셈이다.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동국대생들의 모습도 꽤 변화했는데, 아마도 우리 사회 청년들의 삶이 그만큼 바뀌었기 때문이리라.

처음 강의를 시작했던 2009년,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에는 자신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들은 유년시절이 끝날 무렵 IMF경제위기를 겪었고, 상당수의 청년은 부모가 경제적인 문제로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자랐다. 부모에 대한 정신적 부채의식이 컸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부모님의 삶에 보상과 희망이 되어야 한다는 자의식이 강했다. 또한 그만큼 졸업 후 서둘러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당시 학생들의 글에는 좋아하는 일을 찾았지만 안정적인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무거운 현실 인식을 토로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입시를 끝내고 자유로운 대학생이 되었지만 소박한 일탈조차 쉽게 시도할 수 없는 답답함으로 그들은 자주 우울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도 그 시절 청년들이 위로와 격려, 자기긍정의 메시지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요즘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그 시절 학생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우리 사회는 더 치열해졌고, 시행착오를 허용하지 않는 냉혹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전략을 짜느라 분주하다. 삶의 모든 선택은 목표에 무사히 도달하기 위한 최적의 과정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그들은 분주하고 초조하다. 수강신청을 할 때에도, 과제를 작성할 때에도, 주말에 볼 영화나 저녁 메뉴를 선택할 때에도 소셜미디어에 넘쳐나는 꿀팁과 정보를 선별해야 하고, 시간과 비용을 끊임없이 계산해야 한다. 가성비 산출의 최적화된 결과로, 청년들은 일상의 꽤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곤 한다. 당장 제출해야 하는 리포트 점수에 장학금 신청여부가 결정되는 상황에서 꿈이나 미래는 너무 먼 이야기이다. 당장 처리해야 할 계획은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적혀있지만 정작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 요즘 청년들의 현실이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삶이 예측 가능성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색과 성찰은 자꾸만 삶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게 된다.

아무리 많은 경험을 하고 크고 작은 성취를 이룬다 하더라도, 사색과 성찰이 없다면 삶의 서사는 ‘영원한 현재’에 갇혀버린다. 성장은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반성과 성찰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한한 우리의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눈앞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살아가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내일 할 일을 계획하기에 앞서 오늘 기억하고 싶은 단 하나의 사건을 찾는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그 사건은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을까. 그 의미를 탐색하는 것에서 삶의 성찰은 시작된다. 누군가가 만년의 디오게네스에게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쉬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을 때 그는 “내가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결승점에 다가간다고 달리기를 멈추어야 하겠느냐”고 답했다 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색과 성찰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아득한 과거의 늙은 철학자는 명쾌하게 이야기해준다. 인간의 삶에서 ‘잘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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