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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1% 미만의 절대 소수
  • 김준석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9.05.13
  • 호수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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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석 정치외교학과 교수

청년의 눈물. 2019년 4월 대통령 간담회에서 한 청년 단체 대표가 청년 실업의 심각성을 호소하다 눈물을 쏟았다. 이후 다양한 논란이 오갔지만, 현재 2030대 세대 겪는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는 그대로 드러났다. 청년층, 특히 20대 남성 계층의 대통령/여당에 대한 지지가 대단히 낮은 것도 선거를 앞둔 정치권을 더욱 민감하게 한다. 정치권의 해법(?)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청와대는 무슨 담당 비서관을 만든다고 하고, 여당에는 위원회가 들어선다. 하지만, 무엇이 크게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대부분 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국회는 난장판이 되었고, 현재는 멈췄다. 국회야 시간이 지나면 여야가 적당히 합의해서 다시 굴러가겠지만, 정치권 전체에 대한 국민적 인식은 바닥을 뚫고 내려갔다. 이번 여야 싸움의 본질은 선거법 개정안의 패스트트랙 처리 문제였다. 정부·여당과 야 3당은 수적 우세로 처리하려 했고, 자유한국당은 몸으로 저항했다. 어떤 미사여구나 논리를 붙여도, 결국 내년 총선을 앞둔 ‘밥그릇’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밥그릇은 자신들의 직이 걸린 만큼 대단히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뽑아 주었던 국민들의 분노는 당장은 잊어도 좋았을 것이다. 선거는 일 년 뒤의 일이고, 과거처럼 진영 논리로 몰면 진보와 보수로 자연스레 나뉘게 될지 모른다.
낡았다. 참으로 낡았다.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가 이번 사태를 통해 표면으로 드러났다. 감금, 폭행, 입원 등 마치 범죄 장면에나 어울릴 만한 단어들이 국회에서 등장했다. 그 이전 폭력 국회의 주역이었고, 이를 방지하겠다며 10년 전에 국회법까지 개정했던 인물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국회의원의 대부분은 여전히 검장양복의 연세 지긋한 남성인 것도 다르지 않았다. 제20대 국회의원의 평균 연령은 55.1세이다.
다시, 청년의 눈물. 지난달의 청와대 간담회의 장면으로 돌아간다. 왜 청년 대표는 눈물로 호소해야 했나? 왜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했나? 행사는 일회성이었다. 많은 대표자 중 단 한 번 대통령에게 직접 말할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그 한 번에 많은 청년 문제를 설명하려다보니, 감정에 북받쳤는지 모른다. 그 발언자를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청년 모두에 던지는 질문이다. 왜 청년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할 대표자를 선출하지 못하나?
다수인 듯 행세하는 1% 미만의 절대 소수. 지금 제도권 정치 속의 2030 청년세대를 지칭한다. 국회의원 300명 중 20대는 하나도 없고, 30대도 2명에 불과하다. 그 두 명도 비례대표이고, 지역구 의원은 하나도 없다. 국회의원 전체 중 1%도 안 된다. 반면, 전체 유권자 중 2030 세대의 비중은 38.1%이다. 유권자 전체의 3분의 1을 넘는 유권자층이 국회에 대표자는 1%조차도 보내지 못한다. 국회만 그러한가? 정부의 장·차관 중 30대는 하나도 없다. 40대조차도 찾아보기 힘들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낸 공고한 진입장벽도 있을 것이고, 자금 등 청년들이 정치권에 쉬이 뛰어들기 어렵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는 청년 세대의 문제를 기성세대들에 ‘요구’가 아닌‘부탁’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피트 부티에그. 내년 미국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청년 정치인이다. 민주당 경선의 돌풍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현재 나이 37세. 아프간 전쟁을 군인으로 직접 참전했고, 29세에 시장이 되어 재선까지 되었다. 하버드 출신에 미국 국비 장학생. 지적인 대화와 친근한 어법 등 매력요소가 많은 후보다. 그는 동성결혼자다.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자연스레 드러낸다. 하나의 사례라면, 오카시오 코르테즈 미국 하원의원은 어떤가? 26세. 대학 졸업 후 잠깐의 선거운동원을 한 경험 외에는 정치 경험 자체가 없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발로 뛰는 선거운동으로 민주당의 10선 중진의원을 꺾었다.‘그린 뉴딜’이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그의 손에서 나온 것이다. 정치는 길드가 아니다. 청년은 쉽게 뛰어들 수 없고, 도제식 수업을 받아야 정치인으로 숙련되는 곳이 아니다. 현재의 국회는 대단한 경륜과 스펙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국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음은 주지한 바다. 현재의 정치권이 문제라 생각한다면, 이번 사태에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전체의 틀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정치권에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 비례에 적어도 걸 맞는 청년 대표를 공천하도록 요구하는 건 어떨까? 방법이 없다고? 촛불혁명을 만들고, 그 강고했던 권력을 자리에서 끌어낸 것은 기성세대가 아니라 여러분 청년세대였다.
 

김준석 정치외교학과 교수  dgupress@dg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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