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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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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시대와 동아시아 고전 사유
▲오태석 중어중문학과 교수

현대는 정보의 시대다. AI, VR, 3D 프린터, 빅데이터 등 인공지능을 위시한 새로운 정보혁명과 융합의 시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수천 년간 우리의식 속에 녹아든 동아시아 인문전통의 사유는 과연 얼마만한 효용이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필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주로 주역과 노장사유를 중심으로 현대과학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고전사유를 재해석해왔다. 이제까지의 결론은《논어·위정》편의 “옛 것을 익혀 숙성시키고, 이로부터 새로운 앎으로 나아간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요약 가능할 것 같다. 여기서 '온고지신'의 참뜻은 옛것과 새것의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옛것으로부터 새것으로 나아가려는 내적 재해석과 외적 상황 적응을 통한 자기창출과 변용에 있다. 그런 면에서 동아시아 고전사유 역시 부단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실제로 동아시아 사유와 현대과학이 만나는 예를 보자. 양자역학의 대표주자인 닐스 보어(1922년 노벨상)는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주역 음양의 상호보완성에 착안해 상보성원리를 제안했다. 또 폴 디랙(1933년 노벨상)이 켤레 관계에 있는 두 입자가 질량이나 스핀은 갖지만 전하는 반대라고 하는 반입자(양전자)의 개념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의 디지털컴퓨터는 (0,1) 또는 (yes,no)란 이진법 bit의 양자택일의 알고리즘으로 추동된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연산력이 있지만, 향후 개발 중인 양자컴퓨터가 나오면 그 처리용량은 지수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양자컴퓨터의 qbit(quantum bit)는 양자 중첩적으로 0과 1의 하나를 택하지 않고 둘을 동시에(0&1) 구동한다. 양자컴퓨터와 주역 음양 괘효의 세계표상은 모두 2ⁿ의 지수법칙을 따른다. 입자-파동의 양자적 이중성에 기초한 양자컴퓨터의 특성은 동아시아 음양론의, 모호한 가운데 ‘음중양, 양중음’으로 둘을 함께 하는 양행(兩行)의 논리, 그리고 세계 표상에 대한 2ⁿ적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유사하다. 르네상스 이래 근대과학은 논리적 명료성 위주의 분과학문적 ‘how’ 중심의 실험을 지속해왔다. 그러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새로운 등장 이후 오랜 기간 홀시되어 온 동아시아 사유 특유의 이중성, 모호성, 양가성(兩價性), 양행성, 총체성의 사유는 이제 오히려 새로운 주목을 요한다.

21세기의 화두는 창의와 융합인데, 이에 대한 한자를 생각해보자. 한자의 초(初)와 창(創)이란 글자는 모두 칼(刀)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초(初)는 “옷감(衣)을 잘라 옷을 만들어낸다.”는 것이고, 창(創)은 “[창]이란 발음과 칼이란 의미가 결합”한 것이며 한편으론 ‘상처’란 뜻도 있으니, 새로이 만들어내는 고통과 아픔을 뜻하는 것 같다. 처음으로 만들어내려면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고 또한 고통도 뒤따를 것이다.

잠시 장자(莊子)의 호접몽(蝴蝶夢) 고사를 보자. 장자는 나비가 되어 꽃밭을 유영한 꿈을 꾸고서 “아,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구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전은 그다음인데 엉뚱하게도 “혹시 장자라는 나의 이 삶이 혹시 나비가 꿈을 꾸는 중은 아닐까?”라고 되묻는다.

기존 틀을 깬 관점과 사유의 반전, 이것이 장자 호접몽이 주는 메시지다. 이는 유아독존적으로 하나뿐인 각 존재(存在)를 스스로 귀하게 만드는 중요한 비결이다. 한류와 K-pop으로 문화영토를 넓혀가고 있는 한국의 활로는 동과 서, 인문학과 자연과학, 과거와 현재의 상호 접점에 대한 온고지신의 자기창출적 융합을 통해 새로운 엘도라도의 황금 불꽃을 주체적으로 살려내는 데 있다. 남이 가지 않은 숲길을 헤치고 홀로 바닥까지 밟아 나아가는 자세, 이것이 다가올 미래를 향한 창의의 밭이요, 사회 진출을 앞둔 동악인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

오태석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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