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호를 기념해 문제를 파헤치는 글보다 동대신문 기자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이 사설은 ‘동대신문 기자들을 친구로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봐도 될 것이다.
“만나자고 할 때는 신문사 일 때문에 바쁘다더니, 힘들 때만 나를 찾네.”

필자가 친구에게 들었던 말 중 가장 상처받았던, 그리고 가장 미안했던 말이었다. 일정표는 모두 신문사 업무로 채워졌고 친구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하나의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아이템 선정, 취재, 기사 작성, 피드백 등 수많은 업무가 따라왔다. 신문 발행일이 다가오면 밤샘 작업하는 날이 허다했다. 겨우 친구를 만나면 할 수 있는 말은 ‘나 너무 힘들어’였다. 친구들은 필자와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만큼 서운함을 느꼈고, 결국 그들은 떠나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경험은 필자만 겪은 것이 아니다. 모든 동대신문 기자들이 겪었고, 앞으로 겪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사실 친구를 만날 물리적인 시간만 부족하면 그나마 괜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감정노동’이다. 신문사에서는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사람들과의 마찰이 잦다. 취재원과의 말씨름에서도, 기사 내용에 대한 항의 전화에서도, 기자들 간의 의견 차이에서도 우리는 끝없는 감정노동을 한다.

이러한 감정노동이 배가 될 때는 ‘학생들을 취재해야 할 때’이다.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 나오는 좁은 대학에서 기자의 신분으로 취재한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특히 좋지 않은 일로 인터뷰를 할 때는 수만 가지 고민이 머릿속을 맴돈다. 끝없는 감정노동 뒤에 지친 마음을 달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집 가는 길에 참아왔던 눈물을 쏟은 기자들도 많을 것이다. ‘차라리 신문사를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견디며 살고 있다. 이 글이 징징거리는 글이라고 생각하면, 맞다. ‘무슨 사설이 이래’라고 생각해도, 맞다. 하지만 1600호 특집을 핑계 삼아서라도 우리의 고충을 들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우리를 친구로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싶었다. 혹은 이미 떠나버린 친구가 있다면 다시 한번 돌아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이것이 우리 기자들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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