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自己(자기)에 關(관)한 것은 自己(자기)가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他人(타인)의 行爲(행위)나 思考方式(사고방식)에 對(대)해서는 正確(정확)한 判斷(판단)을 하는 사람도 意外(의외)로 自己自身(자기자신)에 對(대)해선 잘 모르고 있는 때가 많다. 따라서 우리가 갖고 있는 自我像(자아상)-即(즉) 自己(자기)가 어떠한 人間(인간)인가에 對(대)한 自家製(자가제)의 ‘이메지’는 他人(타인)이 客觀的(객관적)으로 볼대 그 사람의 本來(본래)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境遇( 경우)가 많은 것이다. 例(예)컨대 人間(인간)에게 多少間(다소간)있게 마련인 自(자)홀 乃至(내지) 自己擴大(자기확대)의 心的(심적) ‘메카니즘’이 作用(작용)하여 自己(자기)를 過大評價(과대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勿論(물론) 自己(자기)에 對(대)한 過大評價(과대평가)는 그 程度(정도)와 境遇( 경우)에 따라선 오히려 그 사람의 生活力(생활력)을 북돋우기도 한다. 即(즉) 험난한 世波(세파) 속에 휩쓸려 生(생)의 意慾(의욕)을 잃고 自己卑下(자기비하)나 自虐(자학)의 境地(경지)에 빠지는니 보다는 世上(세상)은 제 잘난 맛으로 산다는 格(격)으로 自重自愛(자중자애)하여, 살아나가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度(도)가 넘어 自己(자기)의 能力(능력)에 對(대)한 誇大妄想(과대망상)에 빠져 더구나 他人(타인)의 人格(인격)에 까지 크다란 影響(영향)을 끼칠 境遇( 경우)엔 問題(문제)가 달라진다. 이러한 問題(문제)는 選擧(선거)대가 되면 많이 일어난다. 언젠가 어떤 地方都市(지방도시)에서 國會議員立候補者(국회의원입후보자)가 二十數名(이십수명)에 達(달)했는데 其中(기중) 몇사람은 不過(불과) 數十票(수십표)밖에 못얻어 나중에 自己(자기)의 參謀(참모)가 던진 票(표)의 行方(행방)을 물었다는 넌센스가 있다.

지난 일은 두고서라도 오늘날 一國(일국)의 領導者(영도자)를 選出(선출)하는 마당에 대개 權力(권력) 金力(금력) 乃至(내지) 貫錄(관록)하다못해 名分(명분)이라도 갖고서 立候補(입후보)하지만 其中(기중)엔 客觀的(객관적)으로 보아 아예 論議(논의)의 對象(대상)도 않도리 r서 같은 似而非愛國者(사이비애국자)도 있는 것 같다.

더욱이 大部分(대부분)의 立候補者(입후보자)들은 내가 當選(당선)되지 않으면 송두리째 亡(망)한다는 式(식)의 恐喝調(공갈조)의 雄辯(웅변)으로 有權者(유권자)의 票(표)를 脅迫(협박)하려고 한다. 國家(국가)와 民族(민족)은 自己(자기)와 이쯤되면 同一化(동일화)(投入(투입))한 것이며 誇大妄想(과대망상)도 그 極致(극치)인 自己狂(자기광)의 境地(경지)에 빠진다.

그러나 더 큰 問題(문제)는 知性(지성)의 殿堂(전당)이라고 일컫는 學園內(학원내)에 있어서 選擧期(선거기)에 빚어내는 여러 가지 醜態(추태)이다.

例(예)컨대 내가 立候補(입후보)하지 않으면, 나아가 내가 當選(당선)되지 않으면…하면서 하잘 것없는 일로 興奮(흥분)하여 理性(이성)을 잃고 나아가 學生(학생)의 怜持(영지)를 짓밟는 行爲(행위)는 삼가 하여야 되지 않을까? 舊世代(구세대)의 交替(교체)를 부르짓는 오늘날 누구나 知性人(지성인)이라면 無意味(무의미)한 名譽慾(명예욕)이나 權力慾(권력욕)을 抑制(억제)하여 보다 낳은 學問(학문)의 世界(세계)에도 昇華(승화)할 수 없는지? ‘소크라테스’는 ‘저 自身(자신)을 알아라’란 것을 哲學(철학)의 出發點(출발점)으로 하였거니와 적어도 眞理(진리)를 探究(탐구)하는 人間(인간)이라면 무엇보다 自己自身(자기자신)에 對(대)한 보다 正確(정확)한 理解(이해)가 가장 基本的(기본적)인 ㅇ道(ㅇ도)인 것이다.

(글쓴이 法政大敎授(법정대교수)) 崔燒煥(최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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