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九世紀(십구세기) 現代敎育(현대교육)의 胎動期(태동기)

人文的理想(인문적이상)갖춘 人間形成(인간형성)

‘페스탈로치’ ‘헬발트’는 新人文主義代表者(신인문주의대표자)

 

第(제)18世紀(세기)에 들어서부터 啓蒙主義(계몽주의)는 合理主義的(합리주의적) 主知主義的(주지주의적) 또는 功利主義的(공리주의적) 個人主義(개인주의)의 特色(특색)을 나타내게 되었다. 이와같은 性格(성격)을 가지고 人生(인생)과 社會(사회)를 解決(해결)하려는 傾向(경향)이 있었으나 新人文主義(신인문주의)는 理性(이성)과 知性(지성)을 가지고서는 到底(도저)히 解明(해명)할 수 없는 人生(인생)의 秘密(비밀)을 感性的(감성적) 審美的(심미적)인 態度(태도)로 探究(탐구)하려고 했던 것이다. 啓蒙思想家(계몽사상가)의 代表者(대표자)로 꼽는 ‘룻소’는 이미 合理主義的(합리주의적)인 面(면)과 浪漫主義的(낭만주의적)인 面(면)이 서로 對立(대립)하는 두 面(면)이 認定(인정)되는 것을 가끔 指摘(지적)했던 것이며 “社會契約論(사회계약론)” “人間不平等起源論(인간불평등기원론)”에 보여지는 것과 같은 浪漫的(낭만적)인 面(면)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룻소’는 生來的(생래적)으로 敏感(민감)한 感受性(감수성)이 强(강)한 合理主義者(합리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어떠한 意味(의미)에서는 合理主義(합리주의)를 克服(극복)하려는 意ㅇ(의ㅇ)까지 보여지고 있었다. ‘룻소’는 이와 같은 浪漫的(낭만적)이고 主知的(주지적)인 傾向(경향)은 ‘헬발트’와 ‘칸트’等(등) 獨逸思想家(독일사상가)들로 하여금 크나큰 影響(영향)을 미치게 했다. ‘칸트’는 知的理性(지적이성)에 대한 實踐理性(실천이성)의 優位性(우위성)을 讚揚(찬양)해서 主知主義(주지주의)를 超克(초극)하는 同時(동시)에 그 道德說(도덕설)에 있어서는 啓蒙的(계몽적)인 功利主義(공리주의)를 물리친 것이나 이 主知主義(주지주의)와 功利主義(공리주의)의 克服(극복)은 新人文主義(신인문주의)에 連結(연결)되게 되었다.

新人文主義(신인문주의)는 ‘룻소’에 나타난 人文主義(인문주의)의 理念(이념) 即(즉) 幅(폭)이 넓고 人間的敎養(인간적교양)과 人間(인간)의 모든 性能(성능)의 調和的發展(조화적발전)을 새로운 時代的(시대적) 發展(발전)에 따라 追求(추구)했던 것이며 敎育(교육)의 中心課題(중심과제)는 이와 같은 人文的理想(인문적이상)을 갖춘 人間形成(인간형성)에 있다는 것이다.

獨逸(독일)의 ‘헬델’은 敎育目的(교육목적)은 사람에게 具有(구유)하고 있는 모든 能力(능력)을 調和的(조화적)으로 發展(발전)시켜 各者位置(각자위치)에 있어서 純粹(순수)한 人間性(인간성) (人文(인문))을 그 根源(근원)인 神性(신성)을 될 수 있는대로 顯現(현현)시키는데 있다고 했다. 또 ‘레징’도 新人文主義(신인문주의)의 代表者(대표자)의 한사람으로서 豐富(풍부)한 敎養(교양)을 가진 者(자)로서 古典的造詣(고전적조예)도 깊고 人間(인간)의 精神(정신)을 希臘的(희랍적)인 것에 눈을 뜨게 하고 또 섹스피어를 獨逸(독일)에 導入(도입)시켰다. 그 뿐만 아니라 宗敎(종교)에 있어서도 깊은 理解(이해)를 가지고 그리고 이러한 것들의 모든 것을 銳利(예리)한 藝術的敏感(예술적민감)과 批判力(비판력)을 가지고 統合(통합)해서 새로운 생활의 길을 열게 했던 것이다. ‘헬델’과 ‘레징’은 肉體(육체)를 가지고 人文的(인문적) 理想(이상)을 具現(구현)하고 있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은 新人文主義(신인문주의)의 理想(이상)은 ‘괴테’에 依(의)해 가장 잘 表現(표현)시키고 있다. 그는 稀貴(희귀)한 調和的(조화적) 人間(인간)이며 ‘쉴레’의 말에 依(의)할 것 같으면 ‘現代北方(현대북방)에 있어서의 代表的(대표적) 希臘人(희랍인)’이라고 까지 말했다. 그리고 ‘꾀테’에 있어서의 調和(조화)는 決(결)코 生來的(생래적)으로 具有(구유)한 固定的(고정적)인 것이 아니고 未熟(미숙)한 人格(인격)으로부터 끊임없이 自己敎育(자기교육)의 成果(성과)로 獲得(획득)한 것이고 또 쌓아올린 것이다. 그의 創作(창작)은 그와 같은 內的鬪爭(내적투쟁)으로서 그의 體驗(체험)의 告白(고백)인 것이다. 그는 停滯(정체)를 버리고 活動(활동)을 重(중)히 여기고 人間(인간)의 本分(본분)은 보다 높은 것에 向(향)해 끊임없이 向上(향상)하려는 努力(노력)에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活動(활동)하면서 勤勉(근면)한 사람만이 救濟(구제)된다’라고 말한 것은 그의 大作品(대작품)인 ‘파우스트’에 실린 最大(최대)의 理念(이념)인 것이다. 그의 自身(자신)의 生涯(생애)가 또한 끊임없는 向上(향상)을 目標(목표)로 한 活動生活(활동생활)이었다. 社會的創造的(사회적창조적) 經驗(경험)을 끊임없이 쌓아올림으로써 自己(자기)를 어디까지나 높여갈 수 있다. 그것도 外部(외부)로부터 迫力(박력)을 加(가)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內部(내부)로부터 끄칠줄 모르는 衝動(충동)에 뿌리를 밖고 있는 것이다. 創作(창작)에 있어서도 그렇고 自然科學硏究(자연과학연구)에 있어서도 全力(전력)을 傾注(경주)하였다. 그의 生涯(생애)는 그대로 끊임없는 向上(향상)에의 努力生活(노력생활)이며 自己敎育(자기교육)의 過程(과정)이다. 그리고 自己完城(자기완성)의 目標(목표)는 完全(완전)한 調和(조화), 均衡(균형), 自由(자유)인 것이다.

‘꾀테’에 依(의)할 것 같으면 人間(인간)에게 賦課(부과)된 究極的任務(구극적임무)는 人間(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힘을 될 수 있는 限(한) 展開發達(전개발달)시켜 모든 可能性(가능성)을 吸收(흡수)해서 그것에 依(의)해 人間本性(인간본성)의 全意義(전의의)를 나타내는데 있는 것이라 했다. 人間(인간) 本然(본연)의 姿態(자태)는 바로 人文主義(인문주의)의 理想(이상)을 잘 보여 준 것이다. 新人文主義(신인문주의)가 啓蒙主義(계몽주의)의 理性萬能主義(이성만능주의) 合理主義(합리주의) 經驗主義(경험주의)에 지친 것도 이때문인 것이다.

十八(십팔)세기로부터 十九世紀(십구세기)에 걸쳐서 獨逸(독일)을 中心(중심)으로해서 發展(발전)한 新人文主義(신인문주의)는 文學者(문학자) 古典學者(고전학자) 哲學者(철학자) 敎育思想家(교육사상가)가 서로 合流(합류)해서 形成(형성)된 一大思潮(일대사조)이며 希臘精神(희랍정신) 가운데 特(특)히 人文主義的(인문주의적) 浪漫的(낭만적) 審美的方面(심미적방면)을 받아드려 그것을 國民性(국민성)과 歷史(역사)에 立脚(입각)해 實現(실현)하려고 했으며 敎育(교육)에 있어서는 人間(인간)의 知情意(지정의)에 따르는 豐富(풍부)한 幅(폭)이 넓은 發達(발달)을 目標(목표)로 했던 것이다. 新人文主義(신인문주의)에 屬(속)하는 敎育思想家(교육사상가)로서 代表者(대표자)로서는 ‘패스탈로치’ ‘푸뢰벨’ ‘헬발트’의 三者(삼자)를 드는 것이 가장 妥當(타당)할 것이다. ‘패스탈로치’와 ‘푸뢰벨’은 그 누구보다 뛰어나게 兒童(아동)을 사랑하고 兒童(아동)들 가운데 파묻혀서 活動性(활동성)을 尊重(존중)해 兒童(아동)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能力(능력)을 調和的(조화적)으로 發展(발전)시키는데 敎育(교육)의 焦點(초점)을 두었던 것이다. 이러한 意味(의미)에서 이 두사람은 누구보다 新人文主義敎育思想(신인문주의교육사상)을 追究(추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헬바르트’는 ‘패스탈로치’의 敎育思想(교육사상)으로부터 暗示(암시)를 받아 그것을 다시 學問的(학문적)으로 批判(비판)해 敎育學(교육학)을 하나의 學問的體系(학문적체계)에 올려놓은 敎育學樹立(교육학수립)에 貢獻(공헌)한 사람이다. 우리들은 ‘룻소’의 ‘에밀’가운데서 革命的(혁명적)인 敎育思想(교육사상)을 觀望(관망)할 수 있고 ‘패스탈로치’에 있어서는 家庭敎育(가정교육)의 崇高性(숭고성)을 自覺(자각)할 수 있으며 ‘프뢰벨’에 있어서는 幼兒(유아)의 微笑(미소)에 意義(의의)를 깨칠 수 있으며 ‘헬발트’에 있어서는 敎育(교육)의 科學的探究(과학적탐구)의 길을 열어 주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의 思想(사상)은 모다 現代敎育(현대교육)의 實踐(실천)과 人間形成(인간형성)에 對(대)한 偉大(위대)한 母胎(모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룻소’의 暗示(암시)와 ‘패스탈로치’의 實踐(실천)과 ‘헬발트’의 探究(탐구) 프뢰벨의 理想主義(이상주의)가 敎育(교육)의 實踐(실천)을 살리게 하기 爲(위)해서는 相當(상당)한 歲月(세월)을 要(요)했던 것이다. 特(특)히 그 後社會(후사회)의 急激(급격)한 發達(발달)은 科學(과학)의 進步(진보)와 발맞추어 敎育思想上(교육사상상)에 까지도 影響(영향)을 주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의 偉大(위대)한 敎育思想(교육사상)이 世間(세간)에 建議(건의)됨으로써 또다시 많은 試練(시련)이 各分野(각분야)에 있어서 퍼지게 되어 그것들의 成果(성과)에 依(의)해 啓發(계발)되면서부터 現代敎育(현대교육)이 움직이게 되었다. 勿論(물론) 現代敎育(현대교육)의 시작을 年代的(연대적)으로 定(정)하는 것은 問題(문제)가 될 것이나 여기서는 二十世紀(이십세기)를 새로운 時代(시대)의 始作(시작)으로 생각해 ‘헬바르트’가, 一八四一年(일팔사일년)에 ‘프뢰벨’ 一八五二年(일팔오이년)에 世上(세상)을 떠난 事實(사실)에 留意(유의)하고 또 ‘스펜서’ ‘막스밀’ 等(등)의 活躍(활약)한 第十九世紀(제십구세기)의 後半時期(후반시기)를 敎育思想發展(교육사상발전)의 一時期(일시기)로 생각하고 이 時期(시기)를 中心(중심)으로해 展開(전개)된 敎育的思索(교육적사색)이 現代敎育(현대교육)과 直結(직결)되는 面(면)이 많다는 事實(사실)을 考慮(고려)해 이 時期(시기)를 現代敎育(현대교육)의 胎動期(태동기)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먼저 敎育運動上(교육운동상)으로부터 이 時期(시기)의 特色(특색)을 觀望(관망)하면서 ‘헬발트’學派(학파)의 活躍(활약)을 첫째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헬발트’의 敎育論(교육론)은 主知主義(주지주의) 이룸아래 批判(비판)되고 있으나 그 當時(당시) 그것이 實際(실제)에 있어서 敎育界(교육계)에 미친 바 影響(영향)은 無視(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찔’레와 ‘라인’은 ‘헬발트’의 思想(사상)을 一層發展(일층발전)시켜 (一(일)) 敎科配列(교과배열)의 文化史的段階(문화사적단계) (二(이))中心統合法(중심통합법) (三(삼)) 五段階敎授法(오단계교수법)을 完成(완성)해 敎育(교육)의 重要性(중요성)을 强調(강조)했다 經驗(경험)과 生活(생활)이 가진 意義(의의)가 一般的(일반적)으로 認定(인정)되지 않고 知識傳達(지식전달)이 敎育(교육)의 唯一(유일)한 任務(임무)로 생각했던 當時(당시)의 敎育界(교육계)에 있어서는 ‘헬발트’派(파)의 論理主義(논리주의)는 極(극)히 매력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時期(시기)의 敎育(교육)이 ‘헬발트’主義(주의)에 多大(다대)한 影響(영향)을 받은 것은 事實(사실)이었다 ‘헬트’學派(학파)와 발맞추어 ‘프뢰벨’의 幼稚園敎育(유치원교육)도 크나큰 影響(영향)을 주었다 特(특)히 아메리카에 있어서는 一八六○年(일팔육공년) 보스토에 最初(최초)로 幼稚園(유치원)이 設立(설립)된 以來(이래) 急激(급격)한 發達(발달)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또 瑞典(서전)과 佛蘭西(불란서)等(등)의 北歐諸國(북구제국)에서는 ‘프뢰벨’의 勞作敎育(노작교육)에 注目(주목)되라고 하는 手工敎育(수공교육)을 發達(발달)시켰다 이와같은 敎育運動(교육운동)과 더불어 이 時期(시기)에는 特異(특이)한 敎育思想(교육사상)의 出現(출현)을 보게되었다. 産業革命(산업혁명)의 影響(영향)에 依(의)해 放置(방치)되었던 工場勞動者(공장노동자)의 子弟敎育(자제교육)에 注目(주목)된 英國(영국)의 ‘오웬’은 幼稚園敎育發達(유치원교육발달)에 偉大(위대)한 貢獻(공헌)을 남겼고 ‘말스’는 資本主義社會(자본주의사회)의 矛盾(모순)에 對(대)한 思索(사색)에 集中(집중)해 푸로레타리아의 解放敎育(해방교육)의 本質(본질)을 求(구)했으며 ‘스펜서’는 敎育(교육)의 科學的運動(과학적운동)에 先頭(선두)에 서서 채찍질 했으며 ‘밀’은 資本主義體制下(자본주의체제하)의 敎育(교육)에 卓具(탁구)를 보였고 ‘에렌케이’는 兒童(아동)의 尊重(존중)과 貴人解放(귀인해방)을 强力(강력)히 主張(주장)했다. 이와같은 運動(운동)들은 前代(전대)의 偉大(위대)한 思想家(사상가)들이 傳(전)한 것 보다도 오히려 現實社會敎育(현실사회교육)에 注目(주목)되어 그것을 改善(개선)하려는 偉大(위대)한 試圖(시도)였던 것이다. 오늘에 있어서도 이 問題(문제)의 解決(해결)에 努力(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와같은 思索(사색)은 ‘룻소’等(등)에 始作(시작)된 理想主義(이상주의) 傾向(경향)에 對(대)해 現代敎育(현대교육)에의 胎動(태동)으로서 그 意義(의의)가 있는 것이다. 勿論(물론) 現代敎育(현대교육)의 進步(진보)는 단지 敎育思想上(교육사상상)에서 뿐만 아니고 敎育(교육)은 未熟者(미숙자)에 加(가)해지는 不斷(부단)한 實戰(실전)이므로 敎育制度(교육제도)에 있어서도 어떠한 發見(발견)을 했던가 하는 것도 考察(고찰)하지 않으면 안된다. 敎育(교육)의 實踐(실천)은 古代(고대)로부터 主(주)로 支配階級(지배계급) 貴族階級(귀족계급) 僧侶階級(승려계급) 上層階級(상층계급)을 中心(중심)으로 해왔다. 그러나 近世以後(근세이후) 人間性(인간성)의 自覺(자각)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庶民敎育(서민교육)이 國家的規模(국가적규모)로서 實施(실시)된 것은 相當(상당)한 歲月(세월)은 要(요)했다. 코베니우스는 現代的(현대적)인 學校組織(학교조직)을 提案(제안)했지만 그것은 다만 未來(미래)의 試圖(시도)로서 意義(의의)가 있을 뿐이다. 現代敎育(현대교육)이 高等敎育(고등교육)에 偏重(편중)을 止揚(지양)하고 一般大衆(일반대중)을 爲(위)한 初等敎育(초등교육)에 重視(중시)하는 것이 現代敎育(현대교육)에의 胎動(태동)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近代社會(근대사회)의 特色(특색)은 經濟的(경제적)으로는 機械主義(기계주의)고 政治的(정치적)으로는 人間(인간)의 富(부)·階級(계급)·國籍(국적)과는 關係(관계)없이 尊重(존중)하는 傾向(경향)이 있고 精神面(정신면)에 있어서는 理性(이성)에 對(대)한 無限(무한)한 信賴(신뢰)는 새로운 時代(시대)의 動向(동향)으로서 自由平等(자유평등) 友愛(우애)를 常識的(상식적)으로 말하는 아메리카의 獨立(독립)은 如斯(여사)한 精神(정신)을 具體的(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와 같은 近代化(근대화)는 十八世紀中葉(십팔세기중엽)으로부터 十九世紀中葉(십구세기중엽)에 걸쳐서 實現(실현)되었으나 敎育(교육)의 實踐(실천)이 곧 具體化(구체화)된 것은 아니다. 이 世紀(세기)에 있어서 具體的(구체적) 움직임이 始作(시작)되기는 近代國家體制成立(근대국가체제성립)과 더불어 敎育(교육)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變化(변화)를 보였다. 그 第一特色(제일특색)으로는 敎育(교육)과 職業(직업)이 直結(직결)이라는 것이다. 産業革命以後(산업혁명이후) 行(행)해진 經濟戰爭(경제전쟁)은 産業人育成(산업인육성)을 重視(중시)해 實業學校(실업학교)의 發達(발달)과 敎育(교육)의 機會廓大(기회확대)를 가져오게 되었다. 第二(제이)의 特色(특색)은 學校(학교)의 機能廓大(기능확대)며 學校(학교)는 兒童(아동)의 生活全分野(생활전분야)에 關連(관련)하게 된 事實(사실)이다. 이와같은 傾向(경향)은 各國(각국)이 軍國主義化(군국주의화)의 길을 걷게한 始作(시작)이지만 他方面(타방면)에 있어서는 社會(사회)의 變化(변화)와 敎育改革(교육개혁)의 試圖(시도)에 影響(영향)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第三(제삼)의 特色(특색)은 民主主義的(민주주의적) 敎育觀(교육관)에 對(대)한 反省(반성)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十九世紀(십구세기) 初期(초기)에 있어서는 民主主義(민주주의)는 政治的觀念(정치적관념)에 不過(불과)했던 것이나 漸次(점차)로 生活(생활)가운데로 스며들게 되어 實現(실현)되게 된 것이다. 民主主義(민주주의)는 個人尊重(개인존중)을 特色(특색)으로 하는 것이어서 敎育(교육)에 있어서도 萬人(만인)을 爲(위)한 初等敎育機關(초등교육기관) 設立(설립)과 普通敎育(보통교육)의 延長(연장)가운데 民主主義(민주주의) 理念實現(이념실현)을 求(구)하고 있는 것이다. 少數者(소수자)에게만 開放(개방)되었던 高等敎育(고등교육)을 變更(변경)해 一般人(일반인)을 爲(위)해서 行(행)하는 傾向(경향)이 强力(강력)하게 自覺(자각)되었다.

(글쓴이·敎養學部敎授(교양학부교수)) 金秉圭(김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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