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人之學(천인지학)’의 哲學(철학)

하늘의 개념엔 ‘절대자’의 개념도

韓國哲學(한국철학)은 ‘하늘’ ‘사람’의 論理的構造(논리적구조)

 

한국의 <철학>은 신라, 고려, 이조때의 <불교철학>과 고려때의 <동방리학> 이조때의 <성리학><실학> 그리고 <동학>을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것은 중국, 인도에서 들여온 불교, 유학이지, 어디 <한국의 것>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 또 그것은 서양의 철학과 같은 것이 아니라 <철학>이 아니라는 이도 있다. 그러나 어느 나라 <철학>이고 그에 앞서서 지난날의 역사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고 또 <철학>이란 말이 비록 서양 말에서 온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서양에서만 독차지할 것도 못된다. 철학이란 어느 겨레 어느 국민이고 역사를 가지고 또 역사를 이룩한다면 누구나 가질 수 있으며 또 가져야만한다. 다만 그것이 <세계사>의 발판위에 올라 서 있느냐 하는 것만이 문제이다. 그러나 이 <세계사>라는 것도 이제까지는 서양을 중심으로 본 그것이었고 그들의 높은 자리에서 꾸며진 역사라는 것을 알 때 여기 약한 겨레의 설움이 있다. 그러니까 어느 겨레의 역사가 <세계사>에 오르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또 그들이 가진 철학이 <세계사>의 뜻을 못가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철학>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철학>은 겨레가 역사를 이룩하며 가지는 관념체계이기 때문이다.

불교와 유학은 중국을 거쳐서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한국의 것>으로 바뀌었다. 어떻던 한국의 철학을 한마디로 말하여 <천인지학>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권근(權近(권근) 二三五二(이삼오이)-一四○九(일사공구))의 말이지만 나는 그의 뜻대로 쓰는 것은 아니다.

<천인지학>에 대하여서는 이미 <동대신문>(一○三(일공삼)호)에 말한바 있으나 여기서는 그와 달리 더 좀 밝혀 보려한다.

한국철학은 세 갈피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①은 씨족, 부족 사회를 바탕으로 하는 <하늘>, 또는 <하늘의 아들>이라는 공동의식이다. 이것은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이라는 나라잔치 (國中大戰(국중대전))와 단군신화 그 밖의 신화와 근대에는 <동학>사상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때는 한국철학의 준비시대이다. ②는 부족의 나라가 더 커져서 봉건적 임금의 나라로 되는 때부터이다. 나라가 커지며 생각도 커지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이때 불교를 받아들이는 역사의 까닭이 있다. 부족의 나라 때의 사상으로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가 들어온 것은 고구려에는 소수림왕 二(이)년 (三七二(삼칠이))이고 신라는 눌지임금 때 (四一七(사일칠)-四五八(사오팔))이나 그것이 나라의 종교로 된 것은 법흥왕 十五(십오)년(五二八(오이팔))이다. 여기서 고구려에는 그것을 증명할 자료가 없으나 신라에서는 임금의 이름으로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왕으로 불리우는 임금은 법흥 때부터 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그 위대의 지증때부터이다. 그러나 지증은 <마립한>(麻立干(마립간))이란 이름으로 마지막 임금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마립>이란 <말뚝>의 뜻이고 임금의 말뚝이 주가 되어 그 밑에 신하의 말뚝이 늘어서는 (ㅇ標准位而置(ㅇ표준위치), 臣ㅇ於下(신ㅇ어하))까닭이라 한다. 이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임금을 중심으로 하는 봉건적 군주국가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무렵에 불교가 나라의 종교로 되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은 아니다.

여기서 <하늘>의 생각은 푸른 하늘, <하느님> 또 <무녀>를 뜻하던 것이 임금을 섬기는 뜻으로 바뀌인다. 불교를 받아들인 뒤 유학, 도가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것들을 종합한 화랑도가 일어나고 불교철학이 마련되었으니 이것은 이조 때까지 이어갔다. 고려 때에는 신라때 받아들인 유학을 다시 일으키기 위하여 송학을 받아들여 동방리학이 마련되었고 그것은 이조에 와서 성리학으로 크게 이룩되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유학과 유교 도교와 도가의 사상, 그리고 불교와 불교학을 나눠보는 생각이다. 이제 말한 것처럼 유학과 도가의 사상은 六(육), 七(칠)세기 때에 우리가 받아들인 것이고 유교나 도교와 같은 생각은 이미 예부터 우리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옛날에 중국과 땅이 맞붙어 있어 함께 어울려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뒤에 유학도 잘 받아들이고, 도가의 사상도 잘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또 불교도 받아들여 예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습관으로 합쳐져서 믿었으며 불교학은 뒤에 발전된 것이다. 어떻던 불교, 유학, 도가의 사상은 이미 가지고 있던 <하늘>의 생각과 합쳐진 것이다. 그리고 임금을 <하늘>로 섬긴 것이며 이때에 철학이 틀 잡힌 것이다.

③은 <사람이 하늘>이라고 생각한 때이다. 이때가 바로 한국의 근대이다. 한국의 근대는 十八(십팔)세기 처음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이때부터 봉건적 사상이 무너지고 모든 사람은 평등이며, <사람은 하늘>이라는 생각으로 바뀌는 까닭이다. 양반만 사람의 값으로 처주고, 상놈은 사람값에 들지도 않았으며, 성리학은 헛된 생각이고 실제 삶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근대로 바뀌는 역사의 뜻이 있다. 실학파는 비록 청나라의 문물과 천주학의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백성을 살리는데 힘써야 한다 하였고, 동학은 하늘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天心即人心(천심즉인심))이라 하였으며 동학당의 경문에는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쇠삭하면 국가도 쇠잔할 수밖에 없다. 보국안민의 방책을 도모하지 않고 오직 제 몸만을 생각하여 녹위를 훔치는 것이 어찌 옳은 일이랴>고 하였다. 三·一(삼·일)운동, 六·十(육·십)운동은 모두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한 것이지만 겨레의 평등과 <백성이 하늘>이라는 생각에는 다를 것이 없다.

이와같이 보면 <한국철학>은 <하늘>이라는 개념의 변한 역사이오, 그것은 따라서 <천인지학>이라 불러 마땅한 것이다. 불교철학을 보아도, <이라 마음이라 이름은 다를지라도 하늘과 사람의 이치는 하나의 올바른 뜻이니 아직 다르지 않고, 하늘은 곧 사람이오, 사람은 곧 하늘이며, …사람의 몸은 곧 하늘과 땅의 몸…> (曰理曰心(왈리왈심), 雖有名言之有殊(수유명언지유수), 其天人之理(기천인지리), 一正之義(일정지의), 則未嘗有異(칙미상유이), 故天即人(고천즉인), 人即天(인적천)…而人之體即天地之體(이인지체즉천지지체))이라 하였고, 성리학에서도 <하늘의 이치가 사람에게 준 것은 이치의 성품이오, 성품과 기운이 합하여 한 몸을 다스리는 것은 마음> (天理之賦於人者(천리지부어인자), 理之性(이지성), 合性與氣而爲主宰於一身者(합성여기이위주재어일신자), 調之心(조지심))이라하였다. 따라서 한국철학은 <하늘>과 <사람>의 논리적 구조이고, 다만 주의할 것은 <하늘>의 개념은 <푸른 하늘>, <하느님>의 뜻만이 아니고 <절대자>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筆者(필자)·哲學科敎授(철학과교수)) 韓相璉(한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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