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5時間(시간)을 學究(학구)에

日曜日(일요일)엔 運動(운동), 逍風(소풍) ‘데이트’로

嚴格(엄격)한 學風(학풍) 속에 脫線(탈선)은 없어

 

不規則(불규칙)하기는 하지만 台灣(대만)의 大學生(대학생)들은 하루 十五時間(십오시간)은 冊(책)과 싸우는 連鎖線上(연쇄선상)에서 날을 보내고 달을 보내고 해를 보내는 것 같다. 學部生(학부생)들대로 硏究所生(연구소생)들은 硏究所生(연구소생)들 대로… 날마나 아침 五時(오시) 起寢(기침)이 바쁘다. 눈이 안 떨어지는 선잠을 억지로 깨었으리라 믿어지지 만 그네들은 의례히 새벽 동틀 무렵부터 蟄居處(칩거처)인 宿舍(숙사)를 脫出(탈출)하여 샤워룸을 걸쳐 캠퍼스로 뛰어나가는 버릇이 있다. 그곳에는 손을 흔드는 椰子樹(야자수), 땅을 굽어보는 빙랑, 북신북신한 잔디, 春夏秋冬(춘하추동) 갈아가며 피고 지는 꽃나무가 있어 開花滿發(개화만발)하여있다. 눈이 모자랄 程度(정도)의 地平線(지평선)이다. 머언 하늘 빛 넥타이를 매고 ‘릴케’의 詩集(시집)을 뒤적거리는가 하면 ‘쉑스피어’를 중얼거리기도 한다. 하루의 日課(일과)는 여기서부터 出發(출발)이다. 하루의 設計(설계)도 여기서 싹트고 여기서 무르익는 것이다. 冊(책)은 뚫어지라! 情熱(정열)을 쏟기도 二(이), 三時間(삼시간) 十七個國(십칠개국) 一七○餘(일칠공여)의 外國學生世界(외국학생세계)에 퍼진 僑胞學生(교포학생) 中國學生(중국학생) 할 것 없이 모두 이런 生活(생활)이다.

七時半(칠시반)이면 自轉車部隊(자전거부대)(누구나 가지고 있는 自轉車(자전거))들은 유우료(油條(유조))와 쇼오핑즈(小餠子(소병자))로 말랐던 목을 축이고 (아침 食事(식사)는 이렇게 略食(약식)) 第二線(제이선)인 受講室(수강실)을 찾는다. 그곳에는 階段式(계단식)으로된 圖型(도형), 마치 ‘유엔’總會場(총회장)을 彷佛(방불)케하는 講義室(강의실)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사투리 競演大會(경연대회)가 벌어지듯 하지만 워낙 嚴璹(엄숙)한 雰圍氣(분위기)이다. 낮으막한 목소리로 敎授(교수)는 中央(중앙)에 앉아 講義(강의)의 실마리를 푸는 것이다. 숨을 죽이고 듣지 않으면 안된다. 더욱이 滯留(체류) 몇日(일)인 外國人(외국인)에겐 알술달숭 어리둥절하다.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分明(분명)히 사투리 解釋(해석)이다. 浙江(절강) 上海(상해) 山東(산동) 台灣發音(대만발음)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억양도 이상하거니와 無意識(무의식) 속에서 울려 나오는 發音(발음)도 참으로 야릇하다. 배꼽을 쥐기 前(전)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難關(난관)도 오래야 二·三個月(이·삼개월)이면 누구나 이를 征服(정복)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대개가 學部低級學年生(학부저급학년생)을 相對(상대)로 하는 講義(강의)이다. 그러므로 筆記(필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高級學年(고급학년) 더욱이 硏究所(연구소)는 이와는 좀 다른 點(점)이 있는데 그것은 쓰는 것보다도 듣는 일이 훨씬 많고 듣는 것보다도 말하는 率(율)이 더욱 많다는 것이다. 그것은 討論式(토론식)이기 떄문이다. 대개 五○分後(오공분후)에 一○分(일공분) 쉬고 五○分後(오공분후)에 또 一○分(일공분)쉬는 이른바 百分授業(백분수업)이다. 六,七○分(육,칠공분)은 學生(학생)들의 演講(연강)(發表(발표))이고 一,二○分(일,이공분)은 質問戰(질문전)이고 一,二○分(일,이공분)을 提起(제기)하여 討論(토론)도 하는 것이다. 敎援(교원)은 進行(진행)시키고 講評(강평)하고 參考書(참고서)를 紹介(소개)해주고 테-마를 定(정)해주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른바 一種(일종)의 쎄미나인 것이다. 學生(학생)드릉ㄹ 硏究(연구)하게끔 雰圍氣(분위기)를 造成(조성)해주고 脫線(탈선)과 臆說(억설)만을 防止(방지)해주며 바른 길로 引導(인도)해주는 役割(역할)에 主眼(주안)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말이 쉽지 敎援(교원)도 어렵거니와 學生(학생)들은 當番(당번)이 돌아오면 더욱 眼鼻莫開忙殺(안비막개망살)한다. 벅찬 準備(준비)는 講演者(강연자)뿐이 아니다.

한 敎室(교실) 十名內外(십명내외)가 모두 그러하다. 紹介(소개)를 받은 冊(책)은 圖書室(도서실)에 들어가 ‘싸인’만 하면 얼마든지 가지고 나올 수 있고 누구의 앞에든지 그날의 參考書(참고서) 몇 冊(책)은 準備(준비)되어 놓여있는 것이다. 演者(연자)가 말하면 말에 따라 이 冊(책)을 뒤졌다. 저 冊(책)을 뒤졌다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讀書力(독서력)이 없으면 뭐가 뭔지를 알기 어렵다. 여기서는 雄辯式(웅변식)이나 人氣戰術(인기전술)이나 興味本位(흥미본위)는 驅逐(구축) 當(당)하고 마는 것이다. 恒常正確(항상정확)히 알았느냐가 問題(문제)될 뿐이며 따라서 豫告(예고)없는 試驗(시험)이 자주 있고 맡기는 宿題(숙제) 또한 벅차게 많은 것이다. 이런 生活(생활)이 上午(상오)에는 八時(팔시)부터 十二時(십이시)까지 下午(하오)에는 二時(이시)부터 六時(육시)까지 繼續(계속)되는 것이다.

이러는 동안에 週期的(주기적)으로 오는 것은 점심시간 (十二時(십이시)부터 二時(이시)까지)이다.

三元(삼원)부터 五元五○錢(오원오공전)짜리 뽀오판(指定食(지정식))을 먹고나면 의례히 입다심으로 一元(일원)짜리 빠나나 한알이나 파인애플 半個(반개)나 수박 한쪽을 드는 것이 普通(보통)이다. 시달린 몸은 더위와 疲勞(피로)를 못이겨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中國人(중국인)이든 華僑(화교)이든 간에 마찬가지로 休息(휴식)하는 것이다. 더위를 이기기 爲(위)해서는 特效藥(특효약)보다 좋은 것이 낮잠이기 때문이다. 몸에 젖지 않은 外國人(외국인)들은 때로는 깊은 잠을 깨지 못하여 세네時(시)에 일어나 缺席(결석)에 당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習性(습성)은 時日(시일)이 經過(경과)하면 自然解消(자연해소)되게 마련이다. 出席(출석)은 안불러도 數(수)가 워낙 적어서 缺席(결석)이란 있을 수 없으며 缺講(결강) 또한 없기로도 有名(유명)하다. 이런 風土(풍토) 속에 늦잠은 良心上(양심상) 苛責(가책)으로 용서되지 않는 것이다. 늦잠의 防止策(방지책)인 唯一(유일)의 手段(수단)으로 卦鐘時計(괘종시계)를 準備(준비)하여 머리맡에 놓고서 鳴鐘(명종)에 깨어라는 것이 처음 간 外國人(외국인)들의 常例(상례)이지만 며칠만 辛苦(신고)하면 就寢時間(취침시간)이나 起寢時間(기침시간)이나 早晩(조만) 四·五分差(사·오분차)로 接近(접근)한다. 이렇게 하여 正午(정오)의 休息(휴식)을 끝내고 下午六時(하오육시) 放課後(방과후)에는 自由時間(자유시간)이지만 其實(기실) 讀書以外(독서이외)에 放縱(방종)이란 있을 수 없다. 저녁 食事後(식사후)면 싫어도 自己冊床(자기책상)앞에 쭈그려 앉게 마련이다. 앉으면 대개 새벽닭 울음 소리날 때가 지나야 자리를 뜨는 것이 普通(보통)이다. 想想(상상)하기만 해도 아찔하고 질리는 푸린트 參考書(참고서) 宿題(숙제)는 이 새에 대개 處理(처리)되는 것이다. 讀書力(독서력)이나 제대로 없으면 消燈(소등)(宿舍(숙사)는 十一時(십일시)부터 翌(익) 五時(오시)까지) 後(후)에도 복도 불을 利用(이용)함이 例事(예사)이고 甚至於(심지어)는 便所(변소)에 까지 冊(책)을 들고 들어가는 學生(학생)들이 흔히 보이고 있으며 硏究室(연구실)에는 燈火(등화)를 管制(관제)하는 일이 全(전)혀 없어 徹夜輝煌(철야휘황)이다. 이들은 흔히 硏究室(연구실)에서 커피 紅茶(홍차) 牛乳(우유) 果實(과실) 菓子(과자)같은 것을 注文(주문) 또는 購買(구매)해다가 間食(간식) 해가면서 讀書(독서)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몸을 지탱해 내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怠慢(태만)이나 脫線(탈선)이란 같이 生活(생활)하는 敎授(교수)의 威嚴(위엄) 앞에서 決(결)코 있을 수 없거니와 反抗(반항)이나 그릇된 態度(태도)는 그 社會(사회)에서 埋葬(매장)되거나 逐出(축출) 當(당)하기 꼭 알맞은 것이다. 이렇게 嚴格(엄격)한 (事實(사실)은 極度(극도)로 自由(자유)인 것 같으면서도) 風土(풍토) 속이기에 及格率(급격율) (試驗種類(시험종류)는 演講(연강), 無豫試驗(무예시험), 期中考試(기중고시), 期末考査(기말고사), 第二外語試驗(제이외어시험), 碩·學士論文提出資格試驗(석·학사논문제출자격시험), 口述考試(구술고시) 等(등))이 훨씬 低下(저하) 되고 있는 것이며 이는 모두 科中心(과중심)의 敎導敎育(교도교육)인 同時(동시)에 專門敎育(전문교육)의 進行(진행)에서인 것이다. 月曜日(월요일)부터 土曜日(토요일) 上午(상오)까지의 日課(일과)는 大差(대차)없이 이렇게 進行(진행)되고 幕(막)을 내리는 것이나 이렇게 刻迫(각박)한 그들에게도 週日(주일)에 한번씩은 꼭 멋진 浪漫(낭만)이 없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土曜日(토요일) 午後(오후)와 日曜日(일요일)의 行事(행사)다. 恩師(은사)와 더불어 排球(배구), 庭球(정구), 野球(야구)를 하는가 하면, 登山(등산)을 하여 臺灣(대만)이 떠가라 야호 아!도 부른다. 벗과 더불어 二元五○錢(이원오공전) (市中(시중)서는 十五元(십오원)이나 特別割引(특별할인))짜리 映畫鑑賞(영화감상)을 하는 것도 일쑤이고, 구룹끼리 모여서 패랑 帽(모)에 썬크라스를 쓰고 自轉車(자전거) 소풍으로 저 멀리 바다나 내(川(천))를 찾아 가는 것도 일수이며, 愛人(애인)과 더불어 데이트도 이때엔 許諾(허락)되는 것이다. 더욱이 반가운 벗과 만나 맥주를 交換(교환)하며 밤새도록 學問(학문)을 論(논)하거나 人生(인생)을 論(논)하기도 하는 것은 잊을 수 없는 追憶(추억)들이라 하겠다.

이래서 하루가 한 週日(주일)로 바뀌고 한 週日(주일)이 한 學期(학기)로 바뀌고 한 學期(학기)가 한해로 바뀌는 것이다. (同門(동문)·심우준氏(씨) 提供(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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