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陰地(음지) <3>

趙廷來(조정래)

吳明哲(오명철)·畵(화)

 

“먹어둬. 몸에 좋을 거야”

“걸리면 알죠?”

“소희가 얻어 온거야. 구역질 나지?”

“예? 무슨 그런 말씀을. 거-소희 소희말고 딴 좋은 말이 있을건데…”

갸웃한 고개가 흡사 어린애 같아 보였다. 검은 눈썹이 약간 꼬리를 도사렸다.

“할아버지께선 소희가 빠에 나가는 걸 뭐라시지?”

“아버지요?”

“응-”

“아버진들 뭐라시겠어요?”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나의 얼굴을 뒤지듯 들여다 봤다.

“워낙 엄하시니까 그렇지”

“아버지도 먹어야 사는 세상인줄 아시겠죠”

규석의 말에서 할아버지의 의사를 들을 수 있었다. 뜻없는 감사를 올리었다.

“근데 저의 친구하나가 며칠 전에 왔었죠. 눈밑이며 콧등이 껍질이 벗어져 있고 말이죠. 어떤 곳은 살도 조금씩 떨어져 아주 흉하드군요”

그는 커피를 마자 마시고선 자리를 고쳤다. 어색하지 않은 몸짓이 지루함을 면하게 했다.

“편하게 누어-”

“예- 그런데 애인과 데이트를 하던 중이었는데 한 녀석이 나타나선 돈을 요구하더래요. 못주겠다고 버티니 녀석은 연상 기분 나쁘게 웃기만 하더라나요? 친구놈은 애인도 있구해서 맛을 보이려 했다드군요. 그놈은 유도를 했으니까요. 아- 허리를 돌리려는데 눈 앞에서 파랑별 빨간별이 왔다 갔다 하고는 아무것도 모른다니 거 어찌 된거죠?”

규석은 침까지 꿀꺽 삼키고 말을 끊고 나선 숨을 몰아쉬었다.

“허허…. 거 보통이지 뭐-”

“한가지 빠졌는데 칼 싹하는 소리밖엔 기억에 남은건 없답니다.”

나는 몸을 뒤척여 일어나 앉았다.

“녀석이 채찍을 썼군”

“아무런다고 한번에 그렇게 되나요?”

못믿겠다는 표정이다.

“이젠 늙어 버렸지만 옛날엔 나도 가끔 그걸 즐겨쓰긴 했었지. 통쾌하단 말야. 뒷포켓에서 나오면 일은 끝나-. 거 뭐 상대방에게 기횔 주나. 마구 공격으로 조지는 거야”

나는 습관적으로 손까지 휘저었다. 규석이는 멍히 바라 보고만 있었다.

“손질이에 삼십센치를 더 해봐. 상대방이 덤빌 수 있나. 한 대면 안 뻗는 놈이 거의 없어. 마운틴 크럽에선 거의 그것을 사용했었지. 주먹을 이렇게 멍이 퍼렇게 다졌어도 딴놈이 그걸 들었으면 꼼짝 못해. 못하지”

설화처럼 멀어진 일이 하나 둘 기억의 페이지를 넘겼다. 모자만 썼지 학생이 아니었다. 공부보다 운동을 몇 갑절 열심히 했었다. 날마다 두 세명을 때려야 속이 풀렸고 한번은 맞어야 산건 같기까지 했다. 경찰서는 집문 드나들 듯 했다. 앞문으로 들어가면 뒷문으로 나올 수 있었다. 째지고 찢어진 놈들을 데리고 와 손수 꿰매주기도 숱하게 했다. 병원 입원실에는 환잡다 내가 두들겨 팬 딴 크럽의 깡들이 많았다. 아버지는 정치바람을 타고 돈을 무수히 뿌리고 다녔기에 그 때의 나는 개의치도 않았던 것이다. 책값은 거의 모두를 짹·나이프며 권투 장갑 등을 사는데 낭비했고 후배양성의 경비로 들어갔다. 그래도 학교 성적은 나쁘지 않게 나왔다. 나도 모를 일이었다. 현재에 있어는 그때의 모든 것이 다행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 모른다. 겨울이 되면 손가락 마디가 쑤시고 멍이 퍼렇게 익는다. 날마다 똑같은 생활에 백치처럼 감정이란 일체 버려야 하는 생활은 미래와 어떤 의미로 연겨로디고 있는가? 날마다들 담배 연기로 시간이란 괴물을 가려야 하고 친정의 무늬만 세다가 빼앗기는 날들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요구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허지만 체념도 아니며 더욱이 단념일 수는 없다. 위해서라면 분명 위해서의 하루고 이틀인 것이다. 이건 누구도 범하지 못하는 생생한 의미를 가진 나만의 현실로 낙찰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현재 그것은 현재로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규석이는 담배를 물며 눈을 개슴츠레 하게 뜨고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촛불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림자가 천정과 벽에 연이어 크게 비췄다. 시계는 열시로 접근하고 있었다.

“극장은 수입이 어땠나요?”

규석은 천정에 눈을 둔 채 말을 건냈다.

“으 응. 수지가 좋았었지. 그때만 같았어도 이런 꼴이 될줄 알았나?”

나는 씁쓸하게 웃어버렸다. 생각하면 못내 아쉬운 일이기도 했지만 그것도 이미 값없느 ㄴ과거사였다.

“형은 직책이 뭣이였오?”

“거야 뭐. 사장이었지- 시시하게.”

“호- 사장- 사장이면…”

신기하고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땐 좋았었지. 가방이나 주머니에는 천환권이 수두룩 했었으니까. 이년제 대학이었지만 대학도 나왔겠다. 돈 있겠다. 실력은 문제가 아냐. 결국 사회에선 요령이고 수단야. 주먹도 있긴 해야지. 내가 극장을 시작한 몇일은 토배기깡이라나 하는 것들이 까불잖아. 그때 만도 어떻게 참어. 사람 많은 앞에서 한놈씩 채찍 선물을 주었었지. 정말 돈이 좋긴 해. 경찰서장 주머니에 이만환 뭉치를 넣었더니 뭐 되래 굽실거리던데 뭘-.”

“더러운 세상. 선생님은 왜 이살했죠.”

“아버지? 뭐 뻔하지. 4·19가 난 후니 그곳에서 살 수 있어? 환자는 안 오구 돈 뿌려 산 감투를 다 날아가고. 시골로 박히는 밖엔 말야.”

몇 번 입맛을 다시던 규석은 팔벼개를 하며 벌렁 누어 버렸다.

“그런건 문제도 안돼. 심지어 자식 돈가지 문서 위조해서 사기한 분인데. 극장은 내가 빚내서 시작하여 알버지가 끝장을 내고 말았으니 말야.”

나는 눈을 감았다. 사방은 조용했다. 가끔 판자문이 바람에 ᅟᅳᆫ들려 삐걱 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필름계약으로부산엘 다녀왔을 때는 집안이 말이 아니었다.

극장은 이미 이름까지 바뀌어 있었으며 혈압이 높고 몰핀중독이 되어있던 어머니는 중태에 빠져 비참했다.

어머니의 몰핀 중독은 아버지가 만들었었다.

외박을 하고 여자를 무수히 상대하는 아버지는 몰핀으로 어머니를 달래고 속이고 했다.

거의 일년 전부터 어머니는 하루에 두 번 주사하지 않으면 처량하도록 눈을 뒤집어 흰 창을 드러내고 광증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때의 아버지는 하루에 두 번 어머니의 팔에 몰핀을 주사할 만큼 여유가 없었다. 아버지는 새 살림을 꾸미고 있었다. 약혼 중이던 소희보다 나이가 세 살이나 아래인 간호원과였다. 나의 약혼녀 소희도 아버지 병원의 간호원이었다. 그녀의 집 형편이 곤난하여 집에서 가사를 돌고보 있었으나 그녀와의 동침은 피하고 있었다.

극장수입으로 예금해두었던 백만환 가까운 돈은 아버지의 손에서 녹아내린지 오래였다.

동거하는 간호원의 친정에 논이며 밭을 사줬다는 것이다. 소희는 나의 양복깃을 붙들고 한없이 울었다. 나는 무엇을 생각해야 좋을지 몰랐다. 하늘이 무너내리고 사지가 찢기는 통증을 씹어 넘겨야 했다. 집안은 아수라장이었고 어머니는 시간이 갈수록 완전하게 미쳤다.

방에서 대변을 보았고 사방을 뛰어다니며 남편에 대한 추악한 욕설을 퍼부었다. 그때 소희의 몇 달간 고생은 쓰라린 생활의 실감나는 체험이었다. 세상인심은 무서웠다. 굽실거리던 숫한 얼굴이 비난과 조소만을 뿌렸다.

어느날 참다못해 아버지께 집안 형편을 알리며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참으라고 했었다. 간호원에게도 여러번 좋은 말로 타일렀다. 간호원은 쌀쌀했다. 자기가 먼저 원장선생을 농낙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술을 먹고 와서 강제로 처녀성을 빼앗더라는 것이다. 한번 버린 몸, 시집은 갈 수 없으니 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강간을 인정할 수밖엔 도리가 없었다. 주먹이 떨리고 잇빨이 악물렸지만 참아야했다. 속에선 불길이 혀를 널름 거리며 난무를 계속했다. 스물이 각 넘은 싱싱한 육체에 아버지는 완전히 미쳐있었다.

“네가 애비를 가르치는 거냐? 애비가 그랬기로소니. 응?”

“챙피하지도 않아요?”

“뭐라고? 이놈이 누구 앞에서. 엉?”

“소희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고요?”

“이런 죽일 자식이. 또 해라 어서-”

장작개비로 몇군데를 맞았다. 공이 때문에 등은 찢어져야 하는 심한 상처까지 났었다.

그날 밤 소희는 상처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가누지 못했다. 그녀의 울음엔 내가 다쳤다는 것보다 자신의 고생을 서러워하는 편이 많았으리라 믿는다. 그날 밤으로 옷가지를 싸서 소희가 이고 집을 떠났다. 새벽 두시가 넘어 있었다. 더욱이 5·16혁명이 일어나 군대에 나가지 않은 나는 시골에선 위태로웠기 때문도 있었다. 소희에겐 용돈으로 주었던 돈을 저금했던 것이 어지간히 있었다. 이십리가 넘는 어두운 밤길을 걸으며 나도 울고 그녀도 그렇게 설게 울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 보자며 부둥켜 안고 울고 걸으면서도 울었다. 서울행 기차가 떠나는 역에 도착 되기는 먼동이 터오는 다섯 시가 가까워서 였다. <國文科(국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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