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月(월)28日(일) 서울을 떠난 山岳部雪岳山登攀隊(산악부설악산등반대) 6名(명)은 버스便(편)으로 束草(속초)를 거쳐 同日(동일) 저녁 秋色(추색) 짙은 雪岳山登山(설악산등산)의 入口(입구) 神興寺(신흥사)에 도착하여 ‘룩색’을 풀었다.

이미 落葉(낙엽)도 다 버린 앙상한 街路樹(가로수)의 서울 거리를 두고 떠났건만 緯度(위도)가 높은 雪岳深谷(설악심곡)은 이때가 제철인 양 단풍이 한창이었으나 夕陽(석양)녘의 千紫萬紅(천자만홍)을 드린 듯 진붉은 山情(산정)을 觀賞(관상)할 겨를도 없이 來日(내일)의 行政(행정)을 準備(준비)하기에 餘念(여념)이 없었다.

“또르륵…똑똑…”

새벽 禪(선)하는 法堂(법당)의 몇탁소리에 곤한 잠을 깨어 밥을 짓는다, 점심 준비를 한다 하고 부산을 떤 후 鬱山岩(울산암)을 向(향)해 떠난 것은 해가 半空(반공)에 올랐을 무렵이었다.

우리가 이제 挑戰(도전)하려고 하는 鬱山岩(울산암)은 神興寺(신흥사) 西北方(서북방)2키로미터 地點(지점)에 있는 標高(표고)八○○(팔공공)미터의 바위山(산)이다. 그 모양은 全體(전체)가 하나의 巨大(거대)한 바윗덩이로 되어 있어서 먼데서 한눈에 보면 시커멓고 울퉁불퉁한 姿態(자태)가 흡사 怪物(괴물)의 험상과도 같이 보이는데 여기에는 한가지 재미있는 傳說(전설)도 傳(전)해오고 있다.

옛날 그 어느 쩍에 錦繡江山(금수강산)에 金剛山(금강산) 二萬二千峰(이만이천봉)을 꾸미기 위해 全國(전국)에 奇岩奇峰(기암기봉)들에게 召集令(소집령)이 내려서 온통 全國(전국)의 바위들은 金剛山(금강산)으로 모여들었는데 그때에 鬱山岩(울산암)은 蔚山(울산) (지금 慶南(경남))에 있어서 金剛山(금강산)에 가기 위해 北上(북상)하는 도중 雪岳山(설악산)쯤 왔을 때 一萬二千峰(일만이천봉)이 모두 들어찼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아버린 것이 지금의 鬱山岩(울산암)(일명 蔚山岩(울산암))이라는 것이다.

일컬어 一萬二千一(일만이천일)번째 峰(봉)(?)이라고나 할까.

以上(이상)과 같은 鬱山岩(울산암)에 륵·크라이밍을 試圖(시도)한 것이 이번 登攀(등반)의 目的(목적)의 하나였다. 여기에 대한 萬般(만반)의 준비는 갖추어졌다. 40미터 ‘자일’하나에 보조 ‘자일’30미터, 함마 두 개, ‘하켄’20개, ‘카라비나’3개 등.

鬱山岩(울산암)의 前面陵線(전면능선)에 도착한 우리는 곧 望遠鏡(망원경)으로 ‘코스’를 세밀히 觀察(관찰)한다. “있다 그것은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先驅者(선구자) ‘말로리’가 向(향)하던 高極(고극) ‘에베레스트’로 오르는 길도 아니건만 魔(마)의 岩峰(암봉) 鬱山岩(울산암)으로 오르는 한줄기의 ‘크랙’ (바위가 갈라진 틈)은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그러다. 저것이 우리의 코스다. 우리는 곧장 그리로 달려가 괴물의 입모양 떡 벌려져있는 岩壁前面(암벽전면)의 ‘침니’ (바위와 바위 사이의 터진 틈)를 오르기 시작했다.

바위질은 단단한 花崗巖(화강암)이나 ‘홀드’가 없어서 손잡을 곳이 마땅치 않는 것이 難點(난점)이었다. 그런대로 第一(제일) 피치의 30미터 ‘침니’코스는 끝냈다. 第二(제이)피치의 40미터半(반) ‘침니’도. 오르면서 보니 멀리 구름에 싸인 雪岳主峰(설악주봉) 大靑峰(대청봉)이며 그로부터 좌우로 민 듯이 흘러내린 雪岳連峰(설악연봉)의 陵線(능선)과 千佛洞(천불동)의 삐죽삐죽한 칼날 같은 岩峰(암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第(제)4‘피치’에 당도한 우리는 여기서 오도가도 못할 窮境(궁경)에 부닥쳤다. ‘앙카’줄을 단단히 묶은 ‘톱’ (先登者(선등자))이 길이 35미터쯤 되는 ‘크랙’의 30미터까지는 無難(무난)히 올라 갈 수가 있었으나 나머지 5미터 가량은 90度(도) 傾斜(경사)의 難(난)‘코스’인데다 손잡을데가 없어서 아주 難色(난색)이었다. ‘하켄’을 두드려 박자니 쇠도 바위를 못당하여 꾸부러지기만 한다. 그런데다가 雪上加霜(설상가상)으로 豫期(예기)치도 않은 안개가 동쪽으로부터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우리가 선 鬱山岩(울산암)을 감싸버렸다. 안개 속에 行動(행동)은 더욱 不自然(부자연)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그 망할 놈의 까마귀는 아까부터 건너편 봉울에서 왜 그리 짖어대는지….

할 수 없이 行動(행동)을 中止(중지)하고 주저앉았노라니 습한 공기에 寒氣(한기)가 온몸에 스며들어 싸늘해진다. 不安(불안)과 恐怖(공포)가 자꾸만 주위를 압축시켜온다. 이 짧은 시간이 왜이리도 지루한지. 어서 이 魔(마)의 岩壁(암벽)을 벗어나야 할텐데….

“사느냐? 죽느냐?”의 生(생)의 問題(문제)를, 아니 生(생)에의 强烈(강렬)한 愛着(애착)을 이 순간처럼 절실히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우리는 다시 한번 必死(필사)의 努力(노력)을 다하여 前進(전진)을 企圖(기도)했다. 그런 즉 어디서 超人間的(초인간적)인 힘이 나오게 되었는지 難攻不落(난공불락)으로 밖에 생각 안되던 그 直壁(직벽)을 우리는 차례로 오르고만 것이었다. 이리하여 頂上(정상)에 오른 때가 午後(오후)4時(시)40分(분)-. 실로 6시간 만에 2百(백) 미터의 岩壁(암벽)을 오르기에 成功(성공)한 것이다.

× ×

이튿날 아침 神興寺(신흥사)를 출발하여 千佛洞溪谷(천불동계곡)에서 2泊(박)한 一行(일행)은 11月(월)1日(일) 눈발날리는 가운데 해발 1,708미터의 大靑峰頂上(대청봉정상)에 올랐다가 11月(월)3日(일) 歸京(귀경)했다.

(英文科(영문과)) 李求鎔(이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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