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해가 가고 1964年(년)의 새해가 밝아왔다. 누구나 새로운 希望(희망)과 可能性(가능성)을 期約(기약)해보는 먼 동이 터 온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졸고 있거나 게으름을 피고 있는 사이에도 찾아오는 自然(자연)의 새해이다. 時間(시간)의 흐름을 意味(의미)할 뿐이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 기다리는 希望(희망)과 可能性(가능성)의 새해가 아니란 말이다. ▲希望(희망)과 可能性(가능성)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땀을 흘려 얻어지는 것이요 온갖 시달림에도 굽힘없이 밀고 나가는 前進(전진) 속에서 동이 트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하나 만이라도 마음의 姿勢(자세)를 바로하고 더욱 믿음직하게 걸어가고 있는가가 問題(문제)이다. 빈틈없는 計劃(계획)에 따라 不斷(부단)한 努力(노력)을 쏟는 곳에 <새해>가 있고 새해의 새해다운 意味(의미)가 있는 것이다. 自己(자기)가 할 수 있는 最善(최선)의 努力(노력)을 다한 사람만이 비로소 새해의 새로운 可能性(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學究(학구)에 專念(전념)할 시간의 여유가 없다는 사람이 있다. 經濟的與件(경제적여건)을 노상 慨嘆(개탄)하는 사람이 있다. 그럴만한 理由(이유)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이 생기는 것은 굳은 信念(신념)이 없기 때문이다. 眞理(찐리)를 探究(탐구)하는 緊張(긴장)된 姿勢(자세)가 흐터지고 있다는 말이다. 끈기 있는 努力(노력)이 繼續(계속)될 때 비로소 學究者(학구자)의 信念(신념)이 싹트고 希望的(희망적)인 보람이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周邊(주변)에는 너무나 奇蹟(기적)을 바라는 버릇이 많다. 밭을 갈아 씨를 뿌린 일도 없이 당장에 기적이 나타나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두운 밤의 끈기있는 克己(극기)없이 새벽이 없는 것처럼 安逸(안일) 속에 奇蹟(기적)을 고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지금 우리에겐 악착같은 努力(노력)만이 要求(요구)되고 있다. 努力(노력)함으로써 참된 信念(신념)이 생기고 希望(희망)도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努力(노력)의 한걸음 한걸음은 建設(건설)의 苦鬪(고투)요 創造(창조)의 발자취이다. 이것이 없을 때 삶은 虛無(허무)해진다. 白畫(백화)에 기적이나 유행을 바라기 前(전)에 먼저 땀을 흘려야한다. <最善(최선)의 땀>을 나는 흘렸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이 되어야하겠다. ▲세상에서는 흔히 學問(학문)밖에 모르는 ‘아카데미즘’을 現實逃避(현실도피)라고 비난하기가 쉽다. 그러나 ‘아카데미즘’이 不在(부재)하는 社會(사회)는 踏步(답보)와 沈滯(침체)밖에 없다. 새해는 보다 眞摯(진지)한 ‘아카데미즘’의 姿勢(자세)가 갖추어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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