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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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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악에서 발견한 연기의 재능, 명품 배우의 아이콘으로 거듭나다
▲ 김인권 동문(연극영상학 03졸)

“너희들에겐 가짜 왕일지 몰라도, 나에겐 진짜 왕이다.”
‘광해’의 호위무사 도부장, ‘말죽거리 잔혹사’의 찍새, ‘히말라야’의 박정복…. 사람들이 ‘배우 김인권’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배역들이다. 대중들에게는 명품조연 혹은 감초로 불리지만, 알고 보면 ‘방가?방가!’와 ‘전국노래자랑’ 등으로 단독 주연으로서의 입지도 탄탄하게 다져놓은 배우다. ‘유머러스한 이미지’라는 인식이 많지만, ‘인간 김인권’은 각인된 이미지와 어딘가 닮아있으면서도 사뭇 달랐다.

연출전공에서 배우가 되기까지

김인권 동문이 처음부터 배우의 꿈을 꾼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 입학할 때는 영화연출 전공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배우가 된 것일까? “그 당시 연극영화과에서 인원을 적게 뽑아서 연출 전공으로 들어와도 연극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는 운을 뗐다. 그렇다 보니 영화연출 전공자도 연극 무대 작업을 도와주게 됐고, 연극에 관해서도 자연스럽게 배우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연기에 대한 재능을 알게 된 것은 ‘물고기의 축제’라는 연극에서 작은 역할을 맡았을 때였다고 한다. 그것을 본 선배들이 ‘어? 너 연기 재밌다’며 칭찬했고, 이후 학교동문 체육대회나 동국인 등산대회, 열린음악회 같은 행사에 사회로 불려 다니면서 서서히 재능을 알게 됐다고.
“그때는 그저 선배에 대한 충성심으로 했다. 까라면 까라는 말도 있지 않나. (웃음)” 덧붙여 그는 배우가 된 것에는 그런 학과 문화의 역할이 컸다고 설명했다. “선배들이 시켜서 중앙선 뛰며 노란 줄, 노란 줄을 외치기도 했다. 당연히 사람들은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봤었다. 그런데 그때 창피했던 경험이 배우로서 카메라 앞에서 창피함을 참는 것의 연습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어엿한 배우가 되기까지의 길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집안의 가장이 된 그는 학업과 생계를 병행해야 했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오죽하면 소원이 평안이었겠나.” 집안이 가난했기에 방세, 학비 등을 모두 감당해야 했다. 한번은 극단 선배의 부탁으로 대학로에 전단을 붙이다 경찰에게 붙들려 벌금을 물어야 했다. 돈이 없어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다행히 극단에서 내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힘든 경험들이 나중에는 그에게 크게 도움이 됐다고 이야기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 않나. 그런 것이 다 밑거름이 되고 씨앗이 되어 꽃을 피웠다.”

배우, 그리고 사람 김인권

배우가 된 후에도 연출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지만, 김인권 동문은 어느 순간부터 그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제대하고, 결혼하게 되니 현실이란 벽이랑 부딪혔다. 내가 가진 창의성이나 ‘똘끼’가 확 죽어버리더라”며 꿈을 접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덧붙여 그때 그 시절과 지금은 달라졌다고 언급했다. 그는 “20대에는 저돌적이고 독선적이었다. 졸업 작품 촬영을 디지털카메라로 했는데 필름 카메라로 찍던 시절에 그런 행동은 ‘똘끼 있는’ 짓이었다. 그만큼 옆이 안 보였다. 오죽하면 ‘경청’이란 책을 선물 받았겠나 (웃음)”며 그 시절을 회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게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됐다고 했다. “예전에는 왜 나는 장동건 같은 배역을 안 시켜주나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그런 ‘우아미’를 타고나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며 20대 때와의 차이를 설명했다.

현재 그는 메이저, 마이너를 따지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며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고 한다. “남들이 보면 시간적 여유만 생기면 하는 정도다. 대형 제작사의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상관하지 않는다. 액션 영화 ‘레전드’ 촬영을 위해 인도네시아에도 가야 한다. 또, ‘물괴’라는 제목의 영화도 준비 중이다. 김명민이 주연을 맡은 영화인데, 그 영화에도 역시 항상 맡아왔던 감초 역할로 출연할 예정이다.”

학교는 내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

“학교에는 고마운 마음이 크다”며 입을 뗀 김인권 동문. 우리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에 배우가 될 기회가 주어졌고, 사랑하는 아내까지 만났다고 한다. 학과 동기였던 아내 역시도 애교심이 누구보다 크다고 자부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우리대학에 올지도 모르는 세 명의 딸도 무럭무럭 크고 있다”며 유쾌한 농담도 던졌다. 이번 동국사랑 1.1.1 캠페인 명예 홍보 대사 위촉식에 흔쾌히 참가하게 된 이유 역시 그의 넘치는 애교심에서 비롯됐다.

또한 ‘같은 대학 출신 동문’이라는 것이 사회에서 더욱 열심히 일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이경규 동문과의 인연을 통해 설명했다. 그는 “이경규 선배가 동문이라고 ‘전국노래자랑’의 주인공을 시켜주셨다”며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승낙할 정도로 감사했다”고 밝혔다.

그는 연극영화과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연기란 시작이 반이지만, 시작하고 이어나가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씨앗을 뿌린 뒤에는 포기하지 않고 인내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도 전했다. 그는 “이제는 매체가 다양해져서 연기의 폭이 넓어졌다. 그래서 자기가 어떻게 창의적으로 길을 개척하느냐가 중요하게 되었다”고 조언했다. 덧붙여 “예전과는 달라졌다. 이제는 더 창의적인 스타가 탄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연기를 펼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동시에 연기뿐만 아니라 영화의 미래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어쩌면 영화도 발전해서 더 이상 우리가 영화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영화가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배우 대신 어떤 디지털적인 존재가 연기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라며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며 “다양한 연기를 해보면서 그 첨단에 발맞춰서 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엄재식 기자  ejaesik@dg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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