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 (광고홍보16)

[클로이를 사랑하면서 생기는 불안은 부분적으로는 내 행복의 원인이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오는 불안이었다. 클로이는 갑자기 나에게 흥미를 잃을 수도 있었고, 죽을 수도 있었고,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사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관계를 일찌감치 끝내고 싶은 유혹이 생겼다.]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中>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데 있어 불행한 사실은 우리가 좋은 관계에서 기쁨만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에 대한 상대의 애정이 줄어들까, 이 관계가 어느 순간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의 연속이다. 이러한 관계불안은 관계의 절정에서 극대화된다. 정상에 오른 행복보다 그 이후의 내리막길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알랭 드 보통이 말하듯 가장 완벽한 순간에 관계를 종결짓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에게 그런 충동이 들었을 때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불안감을 상대와 극복하거나, 관계에서 도망치거나. 내가 선택한 것은 후자였다. 상대와의 연락을 줄였고 티가 나게 거리를 벌렸다. 더 이상 친하다고 말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도피함으로써 내가 얻은 것은 관계의 무너짐으로 상처받지 않았다는 안도감이었다.
그러나 그 안도감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전의 좋았던 사이가 그리워졌고 깊었던 관계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연락했으나 마주한 뒤에 깨달은 것은 둘 사이의 공백과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에게 남은 것은 만약에 우리의 사이가 지속되었다면, 하는 가정이었다. 상대의 마음이 변한다 하더라도 내가 적응하고 맞춰갈 수 있지 않았을까. 관계를 내 손으로 끝냄으로써 나는 상대방의 다른 면모를 보고 부딪히고 깨달을 기회를 놓쳐버렸다. 도피엔 성장이 없다. 만약 관계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것을 스스로 끝내고 싶은 충동이 든다면, 끝까지 간 사람과 중도에 그만둔 사람 중 누가 덜 후회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나와는 다른 결말을 맞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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