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춘익 동문으로부터 활발한 기부와 복지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 질문을 준비해갔다. 그러나 그는 기자들을 만나자마자 오히려 행복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려주었다. “요즘 젊은 학생들이 성공에 대해서는 고민하지만 행복에 대해선 고민하지 않는다. 사실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고 나서 그가 1시간가량 풀어낸 행복의 조건은 단순하고도 평범한 이야기였지만 그 속에는 지난 수십 년 동안의 그의 일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군 휴가를 군대에서 보냈던 시절
행복의 조건 중 황 동문이 가장 강조한 것은 ‘고통’이었다. “행복의 조건이 고통이라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러나 내 젊은 시절을 돌이켜보면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너무 재밌었다”고 그의 과거를 회상했다.
“얼마나 힘들었냐면 군대에서 휴가를 받아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군대에 있었다”며 “어린 시절 집을 나와 홀로 지내다 군대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났으니 얼마나 좋았겠나”고 군대를 다녀온 기자가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자신이 농사짓기를 원하는 아버지가 싫어 집을 뛰쳐나왔다고 한다. 그길로 부산으로 가 리어카 야채장사부터 고무신 가게 점원까지 해보지 않은 일이 없는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잘 곳이 없어 부산의 용두산 계단에서 잠을 잔 적도 있다”며 “리어카 야채장사를 열심히 하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고무신 가게 주인이었던 손님이 나를 ‘스카우트’해갔다”고 자신이 고무신 가게에서 일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고무신 가게에서 일하며 부산에서 신발을 가장 많이 팔았다. 지금으로 따지면 신발 판매왕이었다. (웃음) 그 집 사람들과는 아직도 연락하며 지낸다.”
일하던 고무신 가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내던 그는 서울로 올라와서 신발 장사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섬유회사를 시작해 30여 년간 운영해 돈을 벌고 관광호텔까지 시작하게 됐다.
그러다 그는 운영하던 사업을 모두 직원들에게 맡기고 공부를 시작했다.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처음 공부할 때는 점수가 너무 낮았다”며 “그래서 대학 들어오려고 술, 담배, 골프 다 끊었다. 당시 골프모임이 7개, 회원권이 4개였는데 모두 그만뒀다”고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스스로 뿌듯해하며 말했다.
황춘익 동문이 다시 공부를 시작해 불교학과에 입학한 것은 자신의 꿈이었던 불교요양원을 세우기 위해서다. “오갈 데 없는 어른들을 모시고 밥도 해드릴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것이 내 꿈이다. 어르신들이 함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시설 한 번 제대로 운영해보고 싶다.”
늦은 나이에 대학에 와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무엇일까? 황 동문은 ‘자아와 명상’ 수업을 꼽았다. 그는 자아와 명상을 배우 전지현과 함께 들었다. 그 당시 촬영으로 수업에 자주 오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교수님이 스님이다 보니 전지현이 얼마나 대스타인지 모르더라. 학생들이 얘기해줘야 아시더라.” 종강할 무렵, 배우 전지현이 직접 수강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나눠주기도 했다.
사진 관련 수업을 들은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황춘익 동문은 사진 수업 과제를 위해 대청호까지 직접 가서 사진 과제를 찍어왔다고 했다. 그 열정에 교수마저 놀랐다는 이야기를 할 때 황 동문은 무척 자랑스러워 했다. “나중에 한 식당에서 우연히 그 교수를 만났는데 아직도 날 기억하더라. 그래서 내가 밥값을 계산하고 나왔다. (웃음)”

 

행복은 나눔에서 나와
이렇듯 다양한 경험을 한 황춘익 동문. 요즘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그는 최근 있었던 한 일화를 얘기해줬다.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등반대회를 열었는데 470명이나 신청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돕기 위해 인근 군부대의 장병들을 일일 도우미로 부탁했다.
“몸이 불편해서 100m도 못가는 장애인이 오늘 꼭 정상을 가야겠다고 하더라. 그랬더니 자원봉사 나온 군인이 그 장애인을 직접 업고 정상까지 올라왔다”며 “그래서 마지막엔 군부대 군악병까지 와서 축하도 해주고 그 군인에게는 표창장도 만들어 줬다. (웃음)”
1949년생인 황춘익 동문은 결코 젊지 않다. 그럼에도 항상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자신의 것을 나누며 사는 것이 참 대단해 보였다.
나이에 대한 우려를 짐작했을까. 그는 최근 노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자살 예방 세미나 얘기를 해줬다.
“긴 시간의 세미나였지만 오히려 교수들 의견에는 해결책이 없다”며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기도 하더라.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노인이라 할지라도 건강하다”고 말하는 황 동문을 보며 오히려 그의 나이를 염려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행복의 조건으로 아낌없는 나눔을 제시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황춘익 동문. 사실 황 동문이 얘기한 행복이 지금의 시대와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단순한 의견이 가장 현명할 수도 있다. 많은 나이지만 새로운 삶에 도전하면서 나눔을 실천하는 그의 모습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우리대학 학생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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