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 위주의 감세정책, 소비진작 효과의문... 시기성, 효과, 원칙, 사회적 합의 모두 부족

임지순
경실련 정책실 부장
우리 경제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올해 초, 정부의 고환율 정책은 고유가 상황에 직면하면서 물가폭등을 불러일으키더니 하반기 들어 발생한 미국발 금융위기는 환율급등과 주가폭락·부동산 가격 하락 등 자산가치의 하락에서 이제 실물경제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다 1997년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던 그때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까지 생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정부는 대대적인 감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법인세, 소득세, 상속·증여세 인하, 종합부동산세에 걸쳐 사실상 폐지와 다름이 없는 세제 개편을 추진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대대적인 감세와 규제 완화가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 말하고 있지만 정작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논란거리들이 내포되어 있다. 이 글에선 정부의 감세정책의 내용과 그 문제점들에 대해 자세히 짚어보고자 한다.

감세의 시기성 문제

첫째로 정책의 시기성 문제가 있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이 현재의 경기불황이 단기간에 호전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IMF와 한국은행, 민간경제연구소 등에서 내년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3%대로 전망하고, 수출 역시 세계 경기 전망이 밝지 않아 올해보다 증가율이 둔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 경제는 기업의 투자부진, 부동산·주식 등 자산가치의 하락과 가계부채의 증가, 실업률 증가, 소비위축에 따른 중소 자영업자의 도산 등 한동안 경기불황의 여파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정부지출은 자연적으로 점차 증가하게 될 것이고, 또한 의도적으로라도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부양과 서민의 생활안정을 위한 직접지원에 나서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재정지출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시기에 재정건전성을 약화시킬 만큼 큰 폭의 감세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정부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감세와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부양을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이 실제로 가능할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하다. 정부가 발표한 ‘2009년 국세 세입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총 국세수입액은 179.6조원이다. 이는 올해의 국세 수입액보다 7.6%가 오른 금액이다.

그러면 경제가 어려워 예상한 만큼의 세수증가가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 어찌 되는 것인가? 여기에 정부가 발표한 감세 금액인 13조원의 세수가 내년에 줄어들게 되면 최소한 총 25.7조가 올해보다 부족하게 된다. 이를 감당할 재원은 어디서 충당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부유층중심의 감세 혜택

둘째, 감세 효과에 대한 의문이다. 정부의 이번 감세정책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종합부동산세,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등 주로 상위층에 부과되는 세금을 깎으면서, 진정으로 소비를 진작해 내수를 일으킬 수 있는 감세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감세내용은 중·저소득층의 민생안정과 소비 진작이나 투자촉진과는 거리가 멀다. 감세정책이란 것이 본래 담세능력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조세원칙인 이상 세금인하는 세금을 많이 납부하고 있는 부유층에게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 경기불황이 시작되는 시기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아 발생한 이익으로 투자촉진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면, 소득세의 경우 근로소득자 중 하위 47%가 면세점이하로 납부대상이 되지 않아 중·저소득층에게 이번 감세에 따른 효과가 없을뿐더러 부유층은 지금도 충분하게 소비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세금감면에 따른 소비 진작 효과가 있을지 의문시된다.

법인세의 경우에도 연간 순이익이 1억 원 미만인 17만여 기업이 낸 법인세는 세수의 1.8%를 차지하는 데 불과하기 때문에 법인세의 80.4%를 납부하는 대기업 2843곳에게 세액감소에 따른 효과가 귀결될 것이다. 또한 대기업들은 이미 각종 공제 제도를 활용해 실제론 대단히 낮은 ‘실효세율’을 적용받고 있기 때문에 추가 감세에 따른 투자 진작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 단순히 법인세 부담이 낮아졌다고 하여 무조건적으로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시장여건을 보아가면서 투자를 하는 것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정부는 단순히 법인세만 인하하면 투자촉진을 유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식 밖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 상속세의 경우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상속세 납부대상인 피상속인 수는 8,479명에 불과하였듯이, 상속·증여세는 전체 인구의 0.7%의 부유층에게만 해당하는 극히 제한적인 세목이기 때문에 이를 완화하면 그에 따른 인하 효과는 소수의 부유층에게만 한정될 것이다. 특히 상속세를 소득세율과 유사한 비율로 부과하고자 하는 정부안은 서민들의 근로에 대한 의욕을 상실시키고, 부의 세습을 국가가 용인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투기 조장하는 ‘종부세’ 완화

종부세는 사회적으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지만, 정부는 종부세를 비롯한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관련 세제완화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현행 종부세가 특정계층에 징벌적 성격이 강하고 헌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종부세 완화는 결과적으로 고가 주택이나 다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2%의 고액 부동산 자산가들에게 2조 8천억 원의 세금납부를 면제해 주는 것일 뿐이다. 이로 인해 당장 지방자치단체에 교부하고 있는 지방 부동산 교부금이 적어지고, 교부세 의존도가 높은 지역의 재정은 큰 타격을 받게 돼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서민들의 세후 소득은 줄어들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 역시 정부가 감세의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민생안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모든 제도가 완벽하지 않듯, 현행 종부세에 예를 들어 은퇴한 고령자나 현금유동성이 부족한 근로소득자가 일회에 납부하기에는 과한 측면이 있다면, 주택 매도나 상속 시에 납부하게 하거나 여러 차례 분납을 하게 하는 등 납부방식의 변경이나 금액 조정 등 여러 대안들이 존재하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종부세와 대출규제가 이제 어느 정도 그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대통령을 비롯하여 재정부 장관 등 정부 주요 인사들이 종부세를 약탁적 세제로 규정하고, 폐지에 가깝게 완화시키는 것은 투기적 성향이 강한 우리 부동산 시장에 다시 시한폭탄을 안긴 것과 같다.

원칙·합의 없는 조세 정책

셋째, 조세정책은 감세로 세제개편이 이루어지고 나면 증세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사회적 논란과 비용이 소요된다. 따라서 세제개편을 하기 위해서는 장기적 안목으로 조세원칙과 사회적 합의에 따라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감세정책은 이 원칙과 기준들이 전혀 고려되어있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대증적인 처방만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부가세를 통한 소비과세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현상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단지 낮은 법인세·재산과세 비중의 개선만을 주장하고 있으며, 국가재정운영을 위해 세원으로 소득과세, 소비과세, 재산과세 비중을 어떻게 유지해나가야 할 것인지를 종합적으로 제시하지도 않았으며 경제재도약을 위해 왜 감세까지 하면서 세제개편을 해야 되는지, 지금은 감세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효과가 일자리 창출이나 세수입을 늘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이 전혀 존재하고 있지 않다.

세수부족 문제만 키우는 감세정책

지난 10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상황과 관련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입구에 들어와 있다”고 했다. 대통령도 인식하고 있듯, 경기침체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이며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시기에 감세정책을 추진한다면, 이미 충분하게 소비를 유지하고 있는 부유층이 아니라 서민들의 소비를 유발할 수 있는 서민생활용품의 부가세 인하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거의 모든 감세정책의 효과는 부유층에게 돌아가고, 중·저소득층은 세수부족에 따른 세후 소득의 감소만이 예상될 뿐이다.

경제 불황에 곤궁한 서민들의 생활이 더욱 힘들어져 생계까지 위협받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따라서 정부는 이제라도 대다수 서민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고 소비도 진작할 있는 감세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과거 대선공약이 무엇이었든, 경제정책 노선이 무엇이었든 간에 지금은 앞으로 한동안 지속될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실탄을 준비하고 있을 때이다. 한가하게 감세정책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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