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가닥 사연은 있을 성싶다”

김춘식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작년 10월에 걸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적었던 메모다. 애초에 종교적인 의미는 지니지 않은 채 무작정 아들과 함께 걸었던 800km의 길. 35일 동안 나는 아들과 함께 스페인의 길 위를 헤매고 다녔다. 때로는 비가 오고, 때로는 눈이 내렸다. 산맥을 넘고 고원을 터벅거리며 걷다 먼지 풀풀 날리는 땅바닥에 함께 주저앉기도 했다. 열여섯 살 아이에게 이 먼 길은 어쩌면 너무 멀고 힘든 길. 밤이 늦어지면 하늘 위로 낮은 별들이 떴다. 아들은 어둠이 내리는 초원 위에서도 마냥 즐거워하기만 했다.

반달이 떴다. 그 밑으로 오리온자리가 선명하다. 아이패드의 별자리 프로그램을 켜서 바로 대조해 본다. 오리온자리 왼쪽은 작은게자리 중에서 가장 밝은 별 시리우스. 바닥에 누워 달이 뜬 위쪽을 보니 쌍둥이자리의 발에 해당하는 별들이 보인다.

아들은 아빠가 함께 있어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한다. 무거운 책임감, 그리고 왠지 가슴이 따뜻하게 더워져 왔다. 이 고마운 느낌은 뭘까.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마을까지 가야 하는데, 전등을 비추며 마음이 조급해지는데, 아이는 마냥 즐겁다.

학원에, 공부에, 숙제에 시달리던 한국을 멀리 던져 버리고 오니 이렇게 좋은가. “사춘기 때문인지 공부에 너무 지쳐 있어서 큰마음 먹고 35일 동안 산티아고 길을 걷기로 했어요. 한국에서 하던 모든 일을 허겁지겁 마무리하고, 잘 안된 건 싸 들고 오고, 그래도 안 된 건 그냥 팽개치고 왔습니다. 저도 그러고 나니 속이 후련하네요.” 아는 지인들에게 이렇게 카톡으로 문자 한 번 날리고 바로 비행기를 탔다.

아무 대책 없이 무작정 떠난 그 길에서 오래 잊고 있었던 아들과 아버지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했다. 한 선배가 문자로 함께 걸으며 혹시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무의식중에 저지른 잘못은 없는지 잘 생각해 보라고 조언을 했다.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만든 책임과 굴레, 그리고 그 속에서 아이와 나를 모두 구속하고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없는지. 어쩌면 그동안 헛공부를 했던 건 아닌가. 인간이 인간에게, 세상에 대해, 떳떳하고 정의롭게 살고 싶어서 공부했던 것 아닌가. 그런데 그 길 위에서 나는 왜 그렇게 부끄러운 생각이 많이 들었던 걸까.

길 위에서 만난 독일인 볼프강은 80세 노인이다. 부인은 브라질인 마리아. 두 사람은 각각 이 길을 13번, 8번째 걷고 있다고 했다. 카미노 길에서 만나 결혼했다는 두 사람. 시골 마을 놀이터에서 볼프강과 부인은 함께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볼프강은 한참 동안 묵묵히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봤다. 인생의 허무, 아름다움, 환한 햇살 속의 한 때……. 아니면 눈앞의 장면을 넘어서 다 지나간 날을 떠올렸을까? 어쩌면 볼프강에게는 이 카미노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언제나 웃는 얼굴에 농담을 즐기고, 와인을 좋아하고, 내일은 독한 위스키를 마시자고 허풍을 치는 유쾌한 노인.

그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한 가닥 사연을 품고 있었다. 붉게 지는 태양 빛을 받으며 굽이 떨어진 등산화 속에 누군가 꽂아 놓은 꽃줄기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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