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흔우 철학과 교수

“강함이 겹쳐있으면서 중도를 얻지 못하며, 위로는 하늘에 있지 않고 아래로는 밭에 있지 않고 가운데로는 사람에 있지 않다”라는 말이 있다. 서로 옳음을 주장하지만 소통하여 중도를 얻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나치게 강하여 중도를 얻지 못하면 상체와 하체를 연결하는 등뼈를 갈라놓는 것과 같고, 자기의 주장만을 굳게 지키면서 화해하기를 바라는 것은 불을 안고 있으면서 서늘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사람의 몸 가운데 유일하게 그치고 움직이지 않으며 자신이 볼 수 없는 부위가 ‘등(背)’이다. 그래서 ‘등에 그치면 몸을 보지 못 한다’고 하는 것이다. 서로 등져서 보지 못하는 것이 심각하면 함께 있어 아주 가까이 있지만 각자 서로 함께하지 않는 것이 마치 사람들이 뜰 안에서 함께 가지만 누구도 누구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생각은 자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하고 생각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 생각도 합당한 장소와 때에 그쳐야 하고 지나치거나 모자라서도 안 된다. 생각은 실제에 적합해야 하니 지나치면 공상이 되고 모자라면 보수에 빠진다.
말해야 할 때 말하고 말하지 말아야 할 때에 말하지 않는 것도 그치는 도이다. 그치는 도는 때를 중시하니, 어떤 일을 견지하든 견지하여 하지 않든 반드시 시간의 변화에 근거하여 융통성 있게 파악하여 나아가거나 물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에 경중(輕重)·완급(緩急)의 순서가 없게 될 것이다. 올 여름은 정말 무지하게 더웠다. 이제 때가 되니 제법 선선한 것이 그렇게 무더웠던 것이 언제였든가 싶다. 극강한 더위도 때가 되면 선선해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일은 때가 된다고 저절로 ‘그침’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사(人事)의 그침은 두 가지 상황을 벗어나지 않으니, 가야 할 때에 그침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견지하여 하는 것이고, 그쳐야 할 때에 그침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견지하여 하지 않는 것이다. 그침은 나를 그치게 하는 것이지 남을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동태적으로 그치고 정태적으로 그쳐서 그침이 제자리를 얻는 것이 ‘소통’과 ‘중도’를 이루는 도이다. 발에 그쳐야 할 때가 있고, 장딴지에 그쳐야 할 때가 있으며, 허리에 그쳐야 할 때가 있고, 몸에 그쳐야 할 때가 있으며, 입에 그쳐야 할 때가 있다. 모두 돈후하게 그쳐야 한다. 
우리학교 교정에 돌로 된 기념물이 많다. 돌은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그대로를 나타내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공감하고 감동을 받는다. 그침의 도를 보여준다. 물은 어떤가? “기다리는 것, 인내하는 것, 귀를 기울이는 것을 나는 강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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