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용 기자

최근 서울시 강남구는 이번 광복절에 지역의 태극기 게양률이 90%에 육박했다고 알리며 전국에 그 사실을 홍보했다. 기념일에 전국 태극기 게양률이 보통 10%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였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비밀이 있었다.
휴일인 광복절 아침, '태극기 달기' 근무조로 편성된 120명이 넘는 강남구청 공무원들이 주택가를 돌며 태극기 꽂았다. 아파트는 집집마다 찾아가 태극기 달기를 독려했다. 그 결과 게양률이 90%를 넘겼던 것이다. 더불어 휴일에 쉬지 못한 주민들의 민원과 공무원을 동원한 행정력 낭비는 덤이었다.
강남구청의 얘기를 굳이 꺼낸 것은 개강 후 만난 강의실의 모습 때문이다. 이제 우리대학 모든 강의실에는 석굴암의 불상 사진이 부착되어 있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대학 홍보실의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건학이념을 확고히 상기시키고 전국에 몇 곳 되지 않는 불교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강의실에 부처님의 사진이 걸린다고 우리대학의 정체성이 분명해질까. 실제로 학생들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우리대학이 불교종립학교이긴 하지만 그것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에 오히려 없던 반감마저 생기는 모양새다.
정체성 제고의 핵심은 학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애교심을 키우고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다. 학교 측에서 이번에 한 방식으로는 학내 구성원들로 하여금 우리대학의 정체성을 보다 명확히 상기시키기 어렵다.
이 사업을 지금 시행해야 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현재 우리대학에서는 시급히 해야할 일들이 많다. 몇 해 전, 바뀐 복사기가 먹통이라 답답한 학생들도 많고, 시험기간에 부족한 열람실에 대한 문제해결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살펴보면 해야할 일이 많다.
시간과 예산, 관심이 필요한 곳들이 많이 있는데, 이 강의실 액자 사업이 그렇게나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이었을까. 더욱이 서울시내 종교재단 대학들에 확인해본 결과 강의실에 종교 상징물을 설치한 곳은 없었다.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강압적으로 주입한다고 강요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없던 반감만 만들 뿐이다. 초중고 시절, 교실 앞에 항상 학교의 급훈과 교육목표가 액자로 걸려있었지만 졸업한 지금, 그 어느 것도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강남구청 얘기로 돌아가서, 광복절에 공무원 근무조까지 두어 태극기 달기를 강요했던 강남구청에 대해 다수의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라서 국민들이 살기 좋다면, 태극기는 자발적으로 달 것이다’라고. 정답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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