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9-4 승강장, 공기업 직원을 꿈꾸던 비정규직 청년은 가방에 넣어둔 컵라면을 뜯지도 못하고 스러졌다. 청년의 목숨을 앗아간 자리에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꼴사나운 어른들의 모습과 아들의 시신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의 절규, 시민들의 추모 물결만이 남았다.
구의역의 비극은 지난 성수역, 강남역 사고에 이어 세 번째다. 지하철 인부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정부는 안전점검, 재발방지를 촉구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습관처럼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사고는 되풀이된다.
관계당국이 숨진 이들에게 책임을 덮어씌우는 것은 이제 고질병이 됐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울메트로 측은 사고 직후 “고인에게 사고 책임이 있다”며 사고 원인을 작업자 부주의로 몰았다. 언론의 뭇매를 맞자 말을 바꿔 “고인의 잘못이 아닌 관리와 시스템 문제가 주 원인”이라며 사과했다.
사고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도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간 서울메트로의 행적을 봤을 때, 앞으로 비슷한 사고가 정말 근절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비용절감을 우선하는 수리작업의 구조적 문제와 형식적인 관리, 현장 여건을 반영하지 못하는 허울뿐인 매뉴얼로는 근본적인 사고를 방지할 수 없다. 실제로 작년 강남역 사고 이후 서울메트로가 마련한 2인 1조 관리감독 및 스크린도어 관제시스템 등의 안전대책은 작업 현장에서 지켜질 수 없었다.
사고 당시, 근무조 6명이 서울 강북 49개 역의 장애 처리를 맡아야 했기에 2인 1조 출동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문제는 매뉴얼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안전을 최우선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는다면, ‘여유롭지 못한’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극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안전은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비용절감을 외치며 사수하려는 효율과 이윤은 생명과 안전에 바탕을 둬야 하는 것이다.
지난 7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유족들에게 거듭 사과하고 시민의 생명이나 안전과 직결된 업무에 대해선 직영화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치권 역시 일제히 대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업무 노동자들이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아이러니는 사라져야 한다. 국민들이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치는’ 모습에 분노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추모가 일상이 되어버린 나라에서 살아가야 할 자식 잃은 어머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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