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 철학과 교수

얼마 전 강남역에서 일어난 여성 살인 사건과 관련하여 혐오라는 말이 대중에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여성 혐오에서 비롯한 것인지 아니면 정신질환에서 비롯한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이 두 견해 중 어느 쪽을 지지하든, 이 사건이 혐오라는 감정이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심각한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데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 같다.
혐오 감정은 어떤 경우에 일어날까? 1)어떤 것(사람 포함)이 아주 싫을 때, 또는 2)잘 모르는 데서 오는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인 경우, 또는 3)자기보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모두는 편견에서 비롯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편견은 제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위 세 가지 중 세 번째 경우의 편견은 앞의 두 경우보다 제거하는 것이 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남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쉽게 생길 수 있는 편견이 이 세 번째 경우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들은 오늘날 우리사회는 남성과 여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평등해졌으며, 남녀 사이의 불평등이 원인이 되어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시적으로 보면 우리사회에서 남녀 사이의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것은 사회적 관계나 경제적 관계뿐 아니다. 더 ‘원시적인’ 요인은 남성이 여성보다 힘이 센 데서, 또는 여성이 남성보다 힘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기인한다. 남자들이 엘리베이터를 탈 때, 다른 사람은 없고 낯선 남자 한 사람만이 있는 경우에 두려움을 느끼는가? 남자들이 택시를 혼자 타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남자들이 인적이 드문 곳에서 혼자 걸어갈 때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끼는가?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예로 들지는 말고, 거칠게 일반적인 의미로 생각해보자.
자기보다 약자라고 생각하는 경우, 남을 쉽사리 무시하며 힘으로 행사하려는 경우를 우리는 보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일어날 때, 사태는 더 심각하다. 사실, 이러한 경우에 대해 혐오라는 말은 그리 정확한 어휘는 아닌 것 같다. 무시, 두려움, 자기비하, 소심함, 시기심 등 복합적으로 얽힌 마음이 남을 ‘혐오’하는 감정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혐오는 자기 자신이 불만족스러운 경우에 더 쉽게 일어난다. 자신에 대한 불만족을 다른 약자에게 공격적인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을 혐오의 감정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볼 때 여성 혐오는 정신질환(정신장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답을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강남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계기로 해서, 약자를 쉽사리 공격적으로 대하는 태도는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원시적인’ 힘을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해서는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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