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건 / 신문방송학과 13졸 KBS 시사교양PD

 짙은 초록색으로 둘러싸인 두꺼운 표지, 사전과 유사한 외형에 그것 못지않은 딱딱한 글씨체, 대학교수도 언급한다는 완벽한 연습문제. 대한민국에서 성경보다 보급률이 높을 그 이름, 바로 ‘수학의 정석’이다. 수백페이지를 상회하는 분량에 수험생과 밀당하는 좁쌀 같은 글씨, 우등생들의 전유물이 된 고난도 문제는 ‘정석’을 뭇 고딩들의 경외의 대상으로 올려놓았다.
그러던 어느 해, 범접할 수 없었던 ‘정석’의 포스에 도전하는 이가 있었으니 ‘개념원리’가 바로 그것이다. 친절한 해설과 쉬운 난이도, 보기 편한 큼지막한 글씨로 무장한 이것은 수험생들의 밑바닥에서부터 그 세를 넓혀 나갔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정석’ 보다는 ‘개념’ 을 손에 쥐었다. 당장 대하기가 편했고 무엇보다 ‘정석’이란 무거움에서 해방되는 기분이 들어서다.
사회적 용어로 ‘개념’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응과 기지의 총체를 일컫는다. 가령 ‘저 사람 참 개념 없네’ 라는 말은 분위기를 무시하는 ‘저 사람’과 그로 인해 흐트러진 분위기를 묘사할 때 주로 쓴다. 반면 ‘정석’은 원리·원칙대로 일을 처리해 나가는 과정을 뜻한다. ‘정석대로 하겠습니다’란 말이 주는 단호함에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언제나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겠다는 소신이 담겨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개념’이 ‘정석’보다 선호되는 현상은 약육강식의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구성원의 불가피한 선택이다. 더디고 답답한 ‘정석’보다 ‘개념’이 가진 효율성을 사회가 요구한다는 게 그 논리다. 그러나 문제는 ‘개념’이 지나쳐 ‘꼼수’가 되고, ‘꼼수’가 커져 ‘범죄’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암묵적으로 강요받아 왔다는데 있다. 교수의 표절을 눈감은 조교는 개념 있는 직원으로 포장되고, 후배를 희롱하는 선배를 제지한 신입은 개념 없는 작자가 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정석’을 바탕으로 한 ‘개념’의 활용이 순리일진대 ‘정석’을 무시한 ‘개념’의 활개는 우리를 이것도 저것도 아닌, 타성에 젖은 인간으로 교육시켰다.
사회에 나와 ‘개념’으로 살아가는 부류와 ‘정석’으로 살아가는 부류 둘 다를 보았다. ‘개념’으로 살아가는 부류는 어딘지 모르게 항상 비굴해 보였다. 하지만 ‘정석’으로 살아가는 부류는 매사를 정면 돌파하며 당당하고 또 당당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누가 더 빛이 났는가 말할 필요도 없다.
개념이 추앙받는 이 시대, 5月의 동악은 ‘개념’보단 ‘정석’이 넘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조금 투박하고 답답해도 우직하게 걸어가는 자에게 찬사가 따르길 바란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우등생들은 ‘개념 원리’로의 외도 후 ‘수학의 정석’으로 돌아왔다. ‘정석’에 통달한 내 친구는 결국 나보다 훨씬 더 ‘개념’있어졌다. 일찍이 ‘개념’만 찾던 나는 아직도 ‘개념’이 뭔지도 모른 채 개념 없다는 소리를 여기저기서 들으며 살고 있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