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과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갖고 있다.
그는 신입생 때 자신의 학과 집행부로부터 “과비를 내지 않으면 교내 장학금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과비를 내면 학과잠바를 구매할 때 2만원을 돌려준다는 약속도 있었다. 하지만 과비와 장학금은 어떠한 관계도 없었다. 학과잠바를 구매했지만 2만원 역시 아직까지 돌려받지 못했다. A씨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과비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과비 불신’에 학생회는 난감

지난달에는 우리대학 커뮤니티 사이트에 모 학과의 과비 비리를 고발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과비를 택시비 등의 사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학생들의 비난이 쇄도했다. 결국 해당 학과의 학생회장은 사과문과 함께 결산 내역을 학과 게시판에 올렸다. 해당 학과는 다가오는 학기부터 회계 보고 절차를 강화할 것을 약속했지만 학생들은 이미 적잖이 실망한 후였다.
이처럼 많은 학생들이 4년 치 과비로 10만원이 넘는 돈을 납부하지만 이 돈의 사용내역조차 제대로 알지 모르는 경우가 상당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11개 단과대학, 52개 학과의 과비 사용 내역 공개여부를 조사한 결과 약 65%의 과가 사용내역을 자발적으로 공개했다. 약 35%의 과는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않거나 ‘공개예정’, 혹은 ‘요구 시 공개’하고 있었다. 이처럼 투명하지 않은 과비 운용에 각종 사건들로 불거진 횡령 의혹까지 더해지며 학생들은 더 이상 과비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과비에 대한 불만이 거세지자 새 학기를 맞이하는 각 과별 학생회들도 난감한 입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보통신공학과 학생회의 일원인 이 모군은 이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요즘 과비에 대한 논란이 많아 신입생들과 학부모들에게 과비에 대한 필요성을 충분히 납득시키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익명을 요구한 전 모군은 “최근 과비가 대학가에서 논란이 많아 신입생들이 일단 안내고보면 어떡하나 걱정부터 든다”고 밝혔다. 더 이상 과비를 신뢰하지 않는 학생들에 학생회 역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과비 부족으로 재정 악화 겪기도

안드레 총학생회장(정치외교09)은 “학과를 운영하는데 있어 과비는 필수적인 것”이라며 학생들이 갖고 있는 오해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는 정치외교학과 학생회장으로 일했을 당시 고작 30만원으로 학과활동을 시작해야 해서 하는 수 없이 사비를 보태야만 했던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는 “졸업하는 선배들에게 꽃 한 송이씩 선물할 돈이 없어 집행부 친구들과 ‘20개만 사자’, ‘30개만 사자’ 논쟁이 붙었던 때가 기억난다” 며 씁쓸해했다.
학생회 활동에 필요한 사무용품 부터 학과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행사까지 학과 운영에 필요한 모든 것은 금전적 지출을 수반한다. 그런데 과비가 잘 걷히지 않다보니 학생회장의 사비를 사용하기도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모 학과의 학생회장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과비를 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낮은 납부율로 많은 학생회가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자신에게 주어진 장학금을 몽땅 학과 운영을 위해 내놓는 경우도 많다. 안드레 총학생회장(정치외교09)은 “금전적인 부분에서 여유롭다면 과 구성원들에게 여러모로 더 좋은 복지를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과비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학과 별 학생회비 금액‘천차만별’

각 학과의 학생회는 총학생회, 단과대 등과 같은 중앙 기구의 예산을 받지 못해 자체적으로 예산을 책정해야 한다. 학기 당 8,000원의 총학생회비로 이뤄지는 중앙 기구 이외의 각 학과의 재정까지 충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과 별로 진행하는 행사와 물품 구입까지 달라 과비는 과마다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동대신문이 11개 단과대를 대상으로 ‘2015년도 각 과별 과비’를 조사한 결과 우리대학의 1인당 평균 과비 납부 금액은 약 12만 3천원이었다. 하지만 과비로 1인당 32만원을 걷는 과가 있는가 하면, 과비를 학과 차원에서 아예 걷지 않는 과도 있었다. 단과대 별 1인당 평균 과비로는 예술대가 약 23만 3천원으로 가장 높았고 약학대가 19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한편 1인당 평균 과비가 가장 적은 단과대로는 법과대가 5만원, 사과대가 약 5만 5천원이었다. 과마다 예산이 달라 책정하는 과비도 천차만별인 것이다.
총학생회가 중앙 단위의 예산을 과 학생회에 분배해주지 못하는 점은 과학생회가 총학생회가 따라야 할 감사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든다. 총학생회회칙 제88조에는 총학생회가 매 학기별로 결산보고를 하는 것과, 총대의원회의 감사를 의무화하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과 학생회가 따라야 할 학칙, 과비 운영에 대한 감사체계는 제각각이라 논란을 더욱 키우고 있는 모양새다.

감사체계 강화로 투명 운용해야

총학생회 감사 및 선거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총대의원회 박문수 총대의원회장(철학11)은 과비 감사체계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는 “학생회 체계 속에서 대의원회가 견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과비를 둘러싼 문제가 불식될 수 있다”며 3월에 있을 대의원대회에서 세칙 제정 및 회칙 개정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비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사용 내역에 대한 정확한 공지가 이루어진다면 학생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신입생들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을 과비로 책정하고 투명하게 과비를 운용한다면 모두가 바라는 건강한 학생자치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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