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대와 내전의 아픔 딛고 공업 생산도시로 성장하다

▲ 고군산군도. 이곳을 통해 중국과 일본이 연결됐으며 한때 조선시대 수군진영인 군산진이 존재했다.
 고려시대 군산의 임피현이 행정거점이 되면서 군산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가 됐다.
1143년(인종 21년) 당시 거란, 몽골 등의 국가들을 견제하기 위해 조세를 효과적으로 모으려 했고 임피현의 기능을 중요시하게 됐다.
1018년(현종 9)에는 북방산을 주산으로 취성산을 이용해 임피에 임피현령을 설치하여, 주변의 회미(회현), 부윤(김제 성덕), 옥구, 만경의 행정을 담당하게 했다. 그 주요 기능은 조선까지 이어졌다.

방어를 위한 읍성을 건조하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옥구의 금강과 만경강 방어기능을 위해 군산에 보다 적극적인 행정거점과 방어거점을 조성하고 주거지를 조성했다.
1403년(태조 4년) 임피현과 함께 옥구현을 이 지역의 행정거점으로 조성해 회미현을 병합시켰다. 1422년(세종 4)에는 옥구읍성을 신축했으며, 이후 1451년(문종 1)과 1524년(중종 19)에 증축됐다. 옥구읍성은 19세기 후반까지 그 기능을 유지했다.
옥구읍성은 광월산의 동쪽과 서쪽 구릉능선을 따라 돌과 흙으로 조성된 산성과 남쪽사면의 평지에 조성된 읍성이 합쳐진 평산성(平山城)이다. 옥구읍성은 행정적 기능과 군사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며 평상시에는 행정사무를, 유사시에는 전투와 방어기능인 군사행정의 기능을 함께 갖춘 성곽으로 서해와 남해에 많이 만들어진 읍성 중 하나다.
임피읍성 역시 규모와 형태가 옥구읍성과 유사하다. 임피읍성은 임피현, 만경현, 옥구현의 장정 16,900 명을 동원하여 46일 만에 완성한 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 함열, 용안 등과 함께 왜적으로부터 금강의 방어거점 기능을 했다. 읍성 내에는 객사, 관아, 이방청(현재 노성당으로 사용), 향교 등이 조성되기도 했다.

본격적인 도시의 모습으로

군산은 대한제국 말기부터 근대항구도시로 성장했다. 특히 일제 강점기 일본의 주도 하에 식민도시로 개발 됐다. 또한 이런 도시개발은 초대형 규모 습지 간척으로 진행돼, 지형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개항 당시의 군산은 5-6개의 언덕에 약 150여 채의 한옥이 산재하고 있었고, 낮은 곳에는 바닷물이 드나들고 갈대가 무성한 습지였다. 경장시장(현재의 팔마산 기슭)에서만 서천방면과 금강연안과 교역이 이뤄지고 있었다.
군산은 강화도조약(1876년) 이후 항구의 조성과 개항으로 본격적인 도시가 됐다. 대한제국은 1899년(고종 광무 3년) 5월 1일 발표한 구한국 정부의 칙령에 근거해 부산, 원산, 인천, 목포, 진남포, 마산, 성진, 평양, 그리고 군산을 개항했다. 이후 근대적인 도시항구의 기능을 위해 군산항은 1900년대 초부터 약 30년 동안 네 번의 항구 및 항구 관련 인프라 조성사업(1905년-1938년)을 통해서 형성됐다.
군산항의 항구조성은 군산내항이 가진 조수간만의 큰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에 군산항에는 부잔교(뜬다리부두)가 조성되었다. 부잔교는 밀물 때 다리가 수면에 떠오르며 썰물 때 수면만큼 내려가 수위에 따라 다리의 높이가 자동 조절되는 선박 접안시설물이다. 이런 부잔교는 일제강점기에 6개가 만들어졌다.
이후 군산항에는 1905년부터 1938년까지 4차례의 축항공사를 통해 고정잔교, 부잔교, 창고, 철도 등의 시설이 설치되었다. 이런 시설들은 광복 전까지 일제의 쌀 수탈 거점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한편 간척사업은 군산의 남쪽과 남동쪽에서 이뤄졌다. 이때 생성된 대형 농지들과 더불어 근대화 이후 동쪽부에 생긴 간척지에 일련의 공업단지들이 조성된다.

새만금사업으로 다시 성장하기까지

미곡수출과 식료품, 잡화 수입이 주 기능이었던 식민항구 군산은 해방 후 대일본 교역기능이 퇴화되면서 쇠퇴했다. 이어 한국전쟁(1950년-1953년)을 전후로 인민군 제4사단이 진주하여 군산 시내를 점령했고, 일본군의 공장시설과 항구기능이 연합군의 폭격을 받아 도시기능이 파괴됐다.
군산이 도시로서 다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당시 군산은 중앙정부가 주도한 군산산업단지와 군산외항, 그리고 이와 연계된 신주거지 개발로 빠르게 확장하였다. 이로 인해 군산은 과거 미곡생산의 항구도시에서 국제 항구를 갖춘 공업생산도시로 변화했다.
1991년에는 중앙정부의 주도로 새만금 간척사업이 착공됐으며, 이후 2006년 새만금 간척사업과 육로 연결사업이 완공됐다.
새만금사업이란 전라북도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 앞바다를 연결하는 방조제(33.9km)를 쌓아 그 안에 간척토지 283,000㎡, 호수 118,000 ㎡ 를 만드는 계획이다. 1987년 노태우정권이 저개발 상태인 전북지역에 대한 공약으로 이 계획을 제시했다.
새만금사업의 초반의 목표는 농지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는데 농업용지의 가치가 줄어들자 현재는 매립용지를 공업, 상업, 도시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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