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동기 사회학과 교수
 전국 대학생 대상 설문조사를 설계하면서 요즘 학생들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단어를 나열해 본 적이 있다. 물론 ‘취업’이나 ‘스펙’ 등과 같은 ‘현실적인’ 것들이 앞서 나열되었다. 상아탑이나 낭만은 아득한 옛날의 언어일 테고, 인권이나 민주화는 물론이고 진리나 인성마저도 고루하고 진부한 언어로 치부되는 것이 현실이다. 수행성 원리가 강조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이는 너무나 당연한 현실로 인식되고 있어서, 이런 분위기를 개탄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졌다거나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기에 십상이다. 오래전에 필자는 ‘남산은 동국인의 특권의 하나이니, 휴대폰을 끄고 남산길을 걷어보는 여유를 가지자’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이런 목소리는 전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이유에서 ‘스펙’이나 ‘실무’에 치중하는 학교생활은 현실적인 ‘취업의 질’은 물론이고 장기적인 삶의 질 모두를 저하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먼저 우리대학 출신자들이 목표로 삼는 일자리는, 단순 업무를 위한 것이나 단기적인 고용이 아니라, 고용안정성이 있으면서 일정한 승진단계에서 의사결정, 지도력, 고차원적 사고, 창의성 등이 요구되는 것들이다. 그런 일자리는 특정 용도의 숙련보다는 종합적 능력을 훨씬 더 많이 요구하기 마련이다.
또한 연령에 따른 교육, 일, 여가의 단계적 이행이라는 산업사회의 ‘표준적’ 생애주기가 붕괴되면서 청년기이후에는 세 가지가 혼재하는 양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더욱이 기대수명이 크게 늘어나면서 청년기 이후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급하게 등산했다가 급하게 하산해서 ‘악화된 여가’시간을 보내야 했던 부모세대와 달리, 지금의 대학생 세대에서는 천천히 오르고, 내려오는 삶의 양식이 일반화될 것이다. 따라서 취업에 조바심을 내거나 당장의 쓸모를 따지기보다 취업의 질을 고려하여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아가서 사회변동의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어서, 실무 중심의 ‘편식 투자’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정해진 등산로를 따라 걸어가면 되었던 이전 시대와는 달리, 앞으로는 다양한 경로를 거쳐야하거나 지도에 없는 산길을 개척해야 하는 상황도 흔히 발생할 것이다. 산행에 비유하자면, 지도나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능력, 생태에 대한 지식 등과 같이 정해진 규칙의 적용보다는 기본원리를 이해하고 응용하는 능력이 더 많이 요구될 것이다.
학생들과 노력과 별도로, 대학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은 대학과 교육당국, 나아가서 사회 전체의 몫이다. 너무나 자명한 것이지만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상기하고자 한다. 종합대학이 추구하는 고등교육의 목적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양성 뿐만 아니라, 지식전수나 연구, 잠재력 계발과 인격함양이라는 다른 중요한 가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전공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취업률이라는 잣대로만 학문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대학의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특히 학생들에게서 신자유주의적 피로를 덜어주는 것은 결국 불교이념을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면에서 우리 대학의 정책적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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