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 세존께서는 식사시간이 되어, 옷 입고 바리때를 들고 사위성 안으로 들어가 걸식하셨다. 성안에서 한 집 한 집 빌어 드시고는 본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오셨다. 식사를 끝내고 옷과 바리때를 거두시고 발을 닦으신 후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금강경’ 제1품이다.

부처님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여기에 가르침이 들어있다.

손수 음식을 구걸함은 교만을 버림이요, 한 집 한 집 차례로 구걸함은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음이요, 본디 자리로 돌아옴은 제 자리를 찾아감이요, 발을 닦음은 몸으로 지은 업을 씻어냄이요, 자리를 펴고 앉음은 다시 깨달음의 세계인 공(空) 속으로 들어감이다. 부처님은 이렇듯 말없이 가르치셨다.

부처님처럼 살려면 이처럼 자신을 낮추고 제 자리에 있어야 한다. 머리에 빛이 난다거나, 신통력을 지녔다거나, 미래를 예측한다거나, 날마다 복을 퍼서 나른다거나 하는 것들은 모두 가짜다. 진정한 득도란 버림이지 얻음이 아니다.

도(道)란 일상 속에 있다. 제일 평범한 사람이 가장 위대하게 깨친 사람이다. 노자도 큰 지혜는 어리석은 듯하다(大智若愚)고 했다. 또 배움을 위해서는 날마다 더해야겠지만, 도를 위해서는 날마다 버려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 옷 입고, 밥 먹고, 발 씻고, 잠자는 것이 악을 멀리하고 선을 받드는 것이다. 고승들에게 하루 일과를 물으면 이렇게 답했다.

“배고프면 밥 한 술 뜨고, 곤하면 잔다.”

온갖 분별과 계교를 멸해야 다른 생각에 빠지지 않고 배고프면 먹고 곤하면 잠을 잘 수 있다. 그것이 진정 이웃과 중생을 위하는 행보이다. 부처님은 가장 높이 깨쳤어도 가장 낮은 자리에 계셨다. 그러니 가장 낮음이 가장 높음이다.

요즘 특별한 스님들이 많다. 세상에 나온 스님들 목소리가 크다. 자신에게 감탄하고, 자신을 숭배하고 있다. 잘 못 듣고 잘 못 본 것이면 좋으련만 ‘금강경’으로 눈과 귀를 씻어도 그리 들리고 그리 보인다. 세상을 구원한다며 먼지를 일으키고 있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성철스님)

부처님 오신 날이 오고 있다. 연등 없이도 돌아보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부디 그날이 잘남과 특별함을 멸하는, 그래서 제 자리를 찾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