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재웅 국어교육과 교수

새 학기가 되었다. 캠퍼스가 활기차다. 올봄에 피는 꽃은 지난해 피는 꽃과 비슷하지만 캠퍼스의 주인공들은 해마다 다르다. 늘 풋풋한 청춘들이 새로 얼굴을 내밀고, 그들이 어떤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기대하면서 만나기도 한다. 무어니 해도 대학교육의 꽃은 강의다. 교수들은 개강 전부터 어떤 수업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면서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곤 한다.


‘문학교육론’ 시간에 판소리 ‘심청전’ 텍스트를 같이 읽었다. 어려운 옛말도 많고 특수한 표현, 관용어구도 많아서 학생들이 질리기 쉽다. 그래서 과제를 줬다. ‘한 대목을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고쳐 써라.’ 작가가 되어보라는 뜻이었다. 누가 어느 만큼의 창의적인 잠재력이 있는지 가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심청전’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고전 텍스트를 그냥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독자가 주체가 되어 능동적으로 재탄생시키자는 취지였다.


평소에 말 없고 얌전하기만 한 초롱이가 뜻밖의 과제를 제출했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져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 구조를 바꿔서 정승댁 양녀로 들어가 열심히 공부해서 의녀가 되어 심봉사 눈을 고친다는 내용이었다. 비현실적인 고전서사에 비하면 훨씬 현대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심청을 문제해결력이 뛰어난 적극적인 여성으로 바꿀 줄 알았다. 초롱이는 교수에게, 또는 동료 학생들을 향해 자신만의 ‘심청’을 소개한 것이다. 그것은 곧 그녀의 무의식이자 잠재력이기도 했다.


초롱이의 과제는 강의시간에 특별초대 된 판소리 명창이 그 바뀐 대목을 직접 불러줌으로써 실황으로 공연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여러 과제 중 초롱이 과제가 공연물로 선정된 것은 전적으로 명창의 몫이었다. 내용 변환도 좋고, 노랫말 구성도 판소리 형식에 잘 어울렸던 것. 학생들의 집중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문학을 책으로만 배우는 게 아니라 자기가 새롭게 써보기도 하고, 음악으로 변주하여 감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해보는 시간이 됐다.


초롱이는 대학생활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시간이라고 했다. 학생은 수업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쳤다고 했다. 초롱이는 국어교사의 꿈을 가지고 있다. ‘시험’을 위해 하는 공부가 아닌 즐거움으로 하는 공부가 교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게 된 초롱이. 자기에게 그런 신념과 재능이 있는 줄 이제야 발견하게 되었다며 고마워했다.


스페인 출신의 위대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저마다 자기와 똑같은 사람이 이 우주 안에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게 얼마나 경이로운가!”라고 했다. 창의적 개성에 대한 찬양이다. 모든 교육은 이런 경이로움을 자각하게 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은 오직 나만의 모습!
부처님이 일찍이 말씀하셨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이 세상에 오직 존귀한 것은 ‘나’라는 주인의식! 이 주인의식이 모든 창의적 개성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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