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과 이별하고 새로움을 맞이하다

▲ '암만'구시가지의 상징인 헤라클레스 신전.
오늘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개강일이다. 재학생들에게는 익숙하면서도 기대되는 날이 될 것이고, 복학생들에게는 그리운 캠퍼스의 낭만이 다시 살아나는 날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새내기들은 이 날을 위해 견뎌왔던 인고의 시간을 떠올리며 그에 맞는 보상으로 행복한 캠퍼스 생활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각기 다른 생각으로 등교하겠지만 누구나 똑같이 느낄 감정은 바로 ‘설렘’일 것이다.

중동의 첫 여행지 ‘요르단’
그동안의 여행지들과는 다른 색깔을 가진 중동행 비행기에서 나 또한 많이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어릴 적, 중동하면 떠올랐던 그림은 모래 바람이 부는 사막 그리고 비밀스러운 유적지들이 숨겨져 있는, 그런 신비로운 대륙이라 생각했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설렘과 기대를 품고 가게 된 첫 나라는 ‘요르단’이었다. 얼마 전 드라마 ‘미생’의 촬영지로 나왔던 노란색 모래로 된 도시 전경과 유적지가 인상적인 나라이다. 수도 암만에 도착한 난 유적지가 많이 보존되어 있는 구시가지에 숙소를 잡았는데, 아침 동이 튼 뒤 숙소 창문 밖을 바라보면 거대한 로마 원형 극장을 바로 볼 수 있는, 위치가 참 좋은 곳이었다.
구시가지의 건물들은 모두 모래로 지어진 것처럼 노란색을 띠었다. 현대의 건물과 옛 건물들의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서로의 조화가 참 자연스러웠다. 구시가지 가운데 있는 동산 위에는 헤라클레스 신전과 옛 성터가 남아있어 옛 사람들의 손길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 물담배를 피는 사람. 담배는 그들의 삶이다.

요르단 천사와 악마
요르단에 입국했을 때가 2013년 3월 말이었는데, 요르단 vs 일본의 축구경기가 이 곳 암만에서 개최되었었다. 내가 머물렀던 때와 경기일이 겹쳐 직접 보러가기 위해 경기장 이름을 외워놓고 버스를 타러 갔는데, 중동에서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다보니 그저 경기장 이름을 외쳐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운이 좋게 한 청년이 자기가 안내를 해주겠다면서 이 버스를 타면 된다고 같이 가자고 했다. 아 이 너무 고마운 손길 아닌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청년과 난 버스에 탑승했다. 그렇게 20여분을 가다가 이 청년은 먼저 내리고 나 혼자 버스를 타고 가게 됐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해 주위 사람들에게 이 버스가 그 경기장을 가는 것이 맞는지 물어보니, 이 사람들이 손짓 발짓으로 알려주길, 완전히 반대로 방향으로 가는 버스란다. 이 자식이 내가 일본 사람인 줄 알고 경기장 반대로 가는 버스를 태운 것이다.
허겁지겁 다음 역에서 내렸지만 이미 너무 멀리 와 경기장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했고 구시가지로 돌아가는 버스도 없어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속에서는 온갖 육두문자가 끌어 올라왔고 그 요르단 녀석의 얼굴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날라 차기를 해버리겠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난리가 났다. 하지만 화풀이는 나중에 하고 당장 여기서 내 숙소까지 가는 방법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다. 히잡(아랍권의 이슬람 여성이 외출할 때 머리에 쓰는 두건)을 두른 여성분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한큭사람 이쉐요?” 눈이 휘둥그레진 난 “네?”, 그러니 이 분이 다시 “한쿡솨람 이셰여?”라며, 한국어로 묻는 것이 아닌가. 이 사막에 오아시스 같은, 지옥문 앞에서 천사가 나에게 손을 내민다면 이런 기분일까?
알고 보니 이 분은 대학생 시절 한국에 관심이 많아 한국어를 조금 배웠던 친구였다. 결국 이 친구 덕분에 ‘돌무쉬’라는 도시 내에서 정해진 길대로 운행하는 저렴한 택시를 탈 수 있었고 그렇게 내 숙소로 무사히 복귀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 천사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돌아왔을지 막막하다. 택시를 탄다고 해도 언어가 안 통할뿐더러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위험할 때가 많은데, 운이 좋게도 ‘돌무쉬’를 타게 되었고 또 그 안에 같이 탔던 다른 요르단 사람들이 택시비도 정확하게 알려주어 저렴한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루 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지금 생각해도 열 받는 그 경기장 사기꾼 청년, 솔직히 지금도 육두문자가 목구멍까지 끌어 오르지만 이후에 만났던 그 천사 같은 소녀를 생각한다면 다시 마음이 평온해진다. 마음이란 것이 이럴 땐 참 가벼운 것 같다.
중동에서의 여행은 이렇듯 현지인과의 만남에서 오는 추억들이 유난히 많아,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생긴다. 상인들은 여행자들에게서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같고, 일반인들은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해 그 표현에 더 적극적인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유로 다른 대륙들 보다 유난히 현지인들과의 거리가 가깝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낯선 곳, 왠지 모를 설렘
이렇듯 이색적인 여행지는 종종 여행자를 혼란 속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문제를 해결하다보면 이후에 더 인상적인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예측 불가한 내일이 있어 더 설레는 것이 아닐까?
내 기억 속에 인상적인 추억을 남겨준 요르단 청년에게 한 마디 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나 그 때 진짜 집 못 돌아가는 줄 알고 무서웠다. 임마.”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