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샤를리 엡도 테러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기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베가 우리나라에서 불러 일으키는 ‘표현의 자유 제한론’ 또는 ‘무용론’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샤를리 테러에 대한 현재의 어떤 담론도 샤를리 방식의 만화를 규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다. 단지 ‘나는 샤를리다’에 동참하기 어려운 이유들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일베 규제론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최소한 표현의 자유의 바탕을 이루는 다원주의 이념은 위기일수도 있다. 결국 이번 샤를리 사태는 샤를리와 같은 표현이나 생각들은 보호되는 것이 궁극적으로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주장이다. 이 질문은 조금 어렵지만 여기서 간단히 답해보겠다.
샤를리 엡도의 만평을 되도록 많이 구해서 보라. 절대로 인종차별적이지는 않다. 샤를리의 풍자와 조롱의 대상은 원래부터 교황, 랍비 등으로 모든 종교였으며 최근 덴마크 잡지와 관련된 이유로 마호메트를 다루는 빈도수가 높아졌을 뿐이다. 굳이 규정하자면 샤를리 엡도는 세속주의적이었으며 종교의 근본주의 성향에 적대적이었다. 변화를 위해서는 모든 권위에 도전하려는 ‘뼛속까지’ 좌파였으며 그러한 권위를 성역화하려는 모든 체제에 반대하다보니 모든 제도권종교가 대상이 되었고 이런 내용은 만화라는 장르와도 불가분의 관계였다. 샤를리가 행한, 권위에 대한 무책임하고 무차별적인 공격의 결은 미국에서 가장 추앙받던 목사가 어머니와의 성교를 고백하는 가상인터뷰를 게재한 래리 플린트의 그것과 닮아 있다. 물론 마호메트가 모든 무슬림들에 대해서 갖는 상징성이 있지만 마호메트를 조롱했다고 해서 무슬림에 대한 혐오라고 한다면 김일성 김정일에 대해 칭찬 한마디 했다고 해서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예술로써 권위를 공격하는 시도들은 무슬림들 스스로도 이슬람 율법이나 체제에 대해 많이 하고 있다. 샤를리 엡도는 자기 나라를 개혁하고자 하는 무슬림들을 위해서도 보호되어야 하는 표현이었고 이번 사태의 저변에는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종교가 더 인간중심이 되길 바라는 자들에 대해 성역을 지키려는 자들에 의한 응징이 있었을 뿐이다.
물론 더 큰 걱정은 “나는 샤를리다”라는 구호를 반대편의 폭력주의자들이 독점하고 보복의 근거로 남용할 가능성이다. 최대의 남용 사례가 바로 9.11을 빌미로 전쟁을 일으킨 부시나 가자를 맹폭하고도 샤를리시위에 참여한 네타냐후이다. 이들을 제어할 동력 역시 내부에서 올 수 밖에 없으며 그래서 권력에 대한 고발과 비판의 자유는 더욱 필요하다. 그 방식이 누군가에는 불쾌할지라도.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바로 이들을 비판하려는 것이다. 지난주 보코하람에 의해 2,000명이 죽은 상황에서 아무도 “나는 보코하람 피해자다”라고 나서지 않고 있는 미디어나 서구정부들의 편향된 관심에 대한 저항이다. “나는 샤를리다”,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모두 더 많은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한 목소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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