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아이아, 세상의 끝에서 여행을 졸업하다

▲ 아르헨티나의 엘 찰튼. 필자는 ‘돌기둥 산’이라고 이름 붙였다.

- 땅 끝, 우수아이아에서 졸업생을 위해 보내는 편지

어느새 졸업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마음 한 편에는 정든 모교를 떠나야 하는 것에 대한 섭섭함이, 또 한편으로는 지금부터 시작 될 바깥 세상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묘한 날이 될 것이다. 이렇듯 ‘졸업’이라는 단어는 우리 마음에 참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익숙함과 이별하고 새로움을 맞이하는 것, 당연하지만 역시 익숙해지지 않는다.

필름에 못 담을 벅찬 아름다움

여행을 하면서 졸업과 비슷한 감정을 느껴본 곳이 있다. 바로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 이곳은 ‘Fin del mundo’, 즉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세계 최남단 도시이다. 우수아이아에 도착했을 때는 집을 나온 지 약 10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여서 이제 여행의 끝을 생각해야하는 시점이었고 ‘세상의 끝’이라는 문장이 주는 묘한 감정에 어느새 나도 이 여행의 끝을 준비하게 된 곳이었다.

우수아이아라는 도시를 품고 있는 아르헨티나는 어떤 곳일까. 한 문장으로 표현해보자면 ‘세상의 파노라마를 품고 있는 곳’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거대한 땅덩이 안에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파노라마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절경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을 때 사람들은 그 모습을 다 담지 못한다며 아쉬워한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자연을 바라보면 그 놀라움의 절반도 담지 못해 오히려 사진기를 내려놓게 될 때도 많다. 적어도 난 그랬다. 그 놀라운 자연의 스케일로 인해 사진기로 담는 것보다 눈 안에 최대한 담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규모가 어마어마한 자연경관들을 품기 위해선 그 모체 또한 어마어마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는 땅이 참 넓다. 이동시간도 참 길다. 무슨 말이냐면 이곳은 도시간의 평균 이동시간이 10-20시간 정도 된다. 많게는 30시간이 넘기도 한다.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며 가장 오랜 시간 버스를 타본 것은 37시간이었다. 사실 젊은 혈기로 타본 것이었는데,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정말 몰라서 용감하게 탔던 것 같다

버스 속에서 멈춰버린 37시간

버스에 올라 외부 경관을 즐기며 가다보면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난다. 그럼 슬슬 바깥 풍경이 질리기 시작하고 여행에 지친 몸은 밀려드는 졸음에 굴복하기 마련이다. 그럼 그 졸음을 기쁘게 받아들여 잠을 청하면 어느새 5시간이나 훌쩍 지난다. 잠에서 깨보니 벌써 7시간이나 지난 것이다. 그런데 남은 시간은 30시간이다.

우리나라에서 7시간은 서울과 부산을 왕복할 수 있는 시간이다. 평소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멀다고 생각했던 내가 참 한심해지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직 시간은 30시간이나 남은 것을. 사실 이 시간 이후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냥 반쯤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이 버스를 타면 중간에 휴게소도 가지 않게 된다. 버스 내부에 화장실도 있고 식사도 때가 되면 가져다주고 하니 딱히 내릴 필요는 없다. 게다가 휴게소에 들렸을 때는 그저 잠에서 깨지 않길 꿈속에서 기도할 뿐이다. 잠에서 깨면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기 때문에...

오랜 이동시간을 인내하며 찾아다닌 아르헨티나의 파노라마들은 다행히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은 절경이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실망시키지 않았다. 바릴로체의 설산과 호수, 국경에 있는 이과수 폭포, 모레노의 빙하, 엘 찰튼의 신기한 돌기둥 산, 마지막으로는 세상의 끝인 우수아이아까지 어느 것 하나 날 만족시키지 못한 것이 없었다. 그저 이들을 바라보았을 땐 온 몸의 피곤함이 다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아마 이런 만족감이 없었다면 20시간에 가까운 이동시간을 참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물론 37시간의 버스는 이 만족감과는 별개이다).

세상의 끝에서 맞이한 새 길

아르헨티나 안에서도 오랜 시간을 걸려 세상의 끝에 있는 도시에 도착하니, 집을 떠나 달려온 지금까지의 오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아르헨티나의 여정이 내 세계여행과 맞물리면서 그 ‘끝’이라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어느새 여행의 ‘졸업’에 다다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음속에서 나온 복잡한 감정이 날 휘감았고 우수아이아 저 편으로 지는 해를 바라볼 땐 눈에서 알 수 없는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이 끝까지 오며 남겨두었던 발자국들을 한없이 바라보았던 것 같다. 무언가 많이 아쉬웠지만 그동안 걸어온 길이 끝나고 이제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가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은 새 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오랜 캠퍼스 생활을 잘 견뎌내고 이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우리 동국인들, 그동안 너무 수고 많으셨고 또 앞으로 하시는 일에 항상 행운과 행복이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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