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한 우리대학 박한이 동문.

아시아의 대축제, 인천아시안게임이 성대한 막을 올렸다.
19일 화려한 개막식과 함께 시작된 대장정에서 아시아 각국의 스포츠 스타들이 열전을 펼친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90개 이상, 종합 2위 수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각 종목들이 금빛사냥에 본격적으로 돌입한다. 특히 한국 야구는 삼미슈퍼스타즈의 추억을 담고 앞바다에 사이다가 뜬다는 인천에서 또 하나의 신화를 꿈꾸고 있다.
이번 인천 대회는 중요한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조기 탈락했던 한을 금메달로 만회하려는 각오가 대단하다.
그동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야구는 주옥 같은 드라마들을 낳았다. 영광과 절망이 오가는, 희비의 쌍곡선을 탔던 종목 중 하나였다.
특히 많은 야구팬들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야구드림팀이 목에 건 금메달을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고는 한다. 역사의 현장에는 우리 대학 동문 박한이가 있었다는 사실은 왠만한 야구팬이라면 모두 기억하고 있을 듯하다.
당시 박한이는 ‘대학생’이었다. 대학팀 감독으로 대표팀을 맡은 주성노 감독은 동국대의 간판타자 박한이를 전격 선발했다.
메이저리거 박찬호를 비롯해 프로와 야마가 잘 조합된 대표팀은 그야말로 ‘드림팀’이었다.
여기에서 신인이었던 박한이는 강봉규, 김병현 등 될 성 푸른 새내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아시안게임 무대를 밟았다. 당시의 방콕 금메달 신화는 박한이를 더욱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다. 간결한 타격과 탁월한 주력으로 2번타자로 활약했던 박한이는 대표팀 공격의 도화선이 됐다.
이병규, 박한이, 강혁으로 이뤄진 ‘테이블세터’는 매경기 위력을 발휘했다. 결국 대표팀은 6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야구 드림팀’이라는 새로운 용어도 탄생하게 된다. 박한이는 프로야구 전통의 강호, 삼성 라이온스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입문했다. 곧 삼성의 막강 타선에 포함됐다.
1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베테랑의 노련미도 겸비하게 됐다. 혹자들은 당시의 방콕아시안게임을 박한이를 알린 대회라고 평한다. 오랜 추억과 신화는 동문 박한이가 지금도 방망이를 휘두르는 큰 원동력이자 자부심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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