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은숙 문과대 윤리문화학과 교수

올해 초 나는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교수님, 저 00에요.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발표 날까지 1차 됐는데도 연락을 못드리겠더라구요. 바로 어제 임용 합격했습니다. 다 4년간 교수님께서 격려해주시고 잘 가르쳐주시고 이끌어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 사랑합니다.’ 졸업 후 한학기만에 치른 중등교원 임용고사에 합격한 제자의 카톡문자였다. 그 어려운 시험을 한 번에 합격하고서도 그동안 자신을 한없이 독촉했을 세월을 뒤로 하고 그 공을 나한테 돌리는 제자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난 그 문자 중에 ‘교수님 덕분에’라는 말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뭐가 나 때문이지? 본인이 열심히 한 덕분이지’하면서도 내심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지도한 학생 중 2번 만에 합격한 학생도, 5번 만에 합격한 학생 모두로부터 항상 ‘교수님 덕분에’라는 말을 들어왔다. ‘뭘, 자네들이 열심히 한 결과지, 내가 한 일이 뭐있나?’라고 하면서도 한없이 고마웠다.

이렇게 시험에 합격했다든지, 결혼을 한다든지, 명절을 잘 보내라든지, 스승의 날 감사하다는 전화 등에서 나는 선생이라는 이유로 학생들로부터 “교수님 덕분에” 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사제지간의 정은 뭐 특별난 것도 아니다. 이 세상을 먼저 산 사람으로써 이 험난한 세상에 조금이라도 비바람을 피해가라고 학생들에게 일러주고, 그것을 고맙게 받아들여 결국에는 그들이 행복을 얻는 것을 바라보면서 선생님들도 흐뭇해하는 뭐 그런 관계 속에서 우리들의 소위 사제지간의 정이라는 것이 쌓여가는 것 아닐까.

어떤 학생은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학교생활을 마친다. 또 졸업 후에도 그들이 학교 안에서 똑같은 생활을 하는 것을 마주치면서, “요즘 어떻게 지내?” “저 공무원 시험 준비해요.” “언제부터? 지난번엔 취직 준비한다고 하지 않았나?” “한 2,3년 하면 될 것 같아서요.” “아, 그래? 열심히 해. 또 보자.”  우리 관계는 그저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한마디씩 의례적으로 주고받을 뿐 돌아서는 나는 찜찜하기 그지없다. 그저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아마 “덕분에” 라는 말을 들을 수 없어서인지 내가 뭘 크게 잘못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던 그 학생을 다시 만났을 때 고시 준비를 포기하고 먼저 가던 길을 또 다시 간다고 했다. 역시 헤어지는 뒤 끝은 서로 쓸쓸했다. 한번 찾아오면 내 나름대로 얘기해 줄 것도 있는데 그 학생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역시 안타까운 마음이다. 아마 다른 어떤 선생을 찾아가겠지 생각한다. 또 어떤 학생은 시험지 끝에 “제가 요즘 감기 몸살로 시험 공부를 못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쓴 메시지든지, ‘오늘 제가 늦잠을 자서 시험을 못봤어요. 레포트로 대체하면 안 될까요?,’ ‘제가 오늘 병원에 예약을 해서 강의 결석해요.’라면서, 문자가 올 때는 ‘내가 선생인데, 이건 너무 하지 않나?’하면서도 이렇게 친근하게 문자 주고 받는 것이 요즘의 끈끈한 사제지간의 정인가? 하며 화가 나려는 나를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로 여기곤 잠을 설치기도 한다.

이렇게 여러 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 내가 걸어 온 학생 시절을 되돌아본다. 나도 수없이 “선생님 덕분에”라는 말을 했었다. 선생님은 내게 어느 분이든지 하늘이었고, 선생님들의 말씀은 곧 나의 길이 되었다. 지금 학생들은 취직과 성적이라는 장애 때문에 사제지간의 정도 그 벽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벽을 뛰어넘는 그 어떤 인간적인 것도 허락되지 않는 것 같다. 아무튼, 왠지 씁슬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것은 내가 ‘교수님 덕분에’라는 말을 꾀나 듣고 싶어 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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