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종규 중어중문학과4

조선시대의 왕인 성종은 세태의 안목과 기량이 탁월하였던 난세의 정치가인 한명회 가 임종에 직면하자, 사자를 보내어 그의 마 지막 유언을 적어오도록 하였다. 이에 병중 의 한명회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매우 의미 심장하였다.

“始勤終怠 人之常情 願 愼終如始(처음에 는 근면하나 끝에는 나태해지는 것이 인지 상정이니 원컨대 처음처럼 마지막까지 신중 을 기하소서)” 그의 유언은 현재까지도 수 많은 사람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나, 지키 기 어려운 삶의 자세를 한 마디로 요약한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삶에서 얼마나 많은 ‘처음’을 맞 이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우리에게 주어진 대부분의 ‘처음’의 경험은 우리가 동일하게 다시 맞이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시간’을 조종하지 않는 이상, 그 ‘처음’은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 의 마음은 사뭇 다르다. 마음은 사람이 좌 우할 수 있는 것이기에, 비록 같지는 않으나 ‘처음’과 같은 마음 상태를 이끌어낼 수 있 다.

하지만 실상 마음을 처음처럼 유지하는 것 또한, 무척이나 어렵다. 마음을 관장하는 사이역시 시간 속에 흘러가는 존재이기 때 문이다.

‘지식의 상아탑’이라 불리우는 대학의 문 을 처음 들어서던 그 순간, 우리는 누구보 다 보람차고 의미 있는 대학교 생활을 하리 라 다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호기롭게 맞 이한 대학생활의 ‘처음’은 시간의 흐름 속에 서, 이런저런 ‘의외의 상황’들에서 그 신선 함을 잃어가고, 결국 서서히 나태함이 그 자 리를 대신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마음의 끈 을 놓아 버린다면, 삶은 건조해지고 자신이 시작하고자 하였던 일들의 ‘처음’을 망각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기에 급급한 처지로 전 락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신선하기에 그 시작 은 성실하고 참신하다. 나태해지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연하다고하여 초심을 잃게 된다 면, 방향키를 잃은 배와 같은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방향키를 잃은 채 열심히 나아가 기만 하는 배는 제대로 된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없다. 최초 배가 출발할 때 설정해두었던 목적지와 항해노선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삶’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여러 가지 암초를 만나고, 노선을 다소 우회하더 라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학생활 시작의 의지를 잃 지 않아야 한다. 조금 힘들더라도 꿈을 이끌 어줄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하고 수시로 목표를 확인하며 자신이 어느 단계에 위치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러한 일들을 모두 가능케 하는 것은 바 로 ‘처음’이라는 단어에 있다.

한명회가 말했던 ‘愼終如始(처음과 끝 이 같도록 신중을 기하라)’라는 말은 <도덕 경>에서 나온 말이다. 이 말의 뒤에는 ‘則無敗事(그렇다면 일을 망치는 일이 없을 것이 다)’가 뒤따른다.

‘처음’이 나에게 상기시켰던 삶의 자세를 다시금 돌아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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